매거진 성장서사

지지하는 달리기

06.27

by 치슬로

달리기만큼 숫자에 민감하게 되는 운동이 또 있을까. 체육에서 아무리 잘해봤자 1등급이나 '수'를 맞아본 적 없었던 나에겐 달리기란 체육대회나 수행평가 때나 하는 운동이었다. 거기서는 항상 기록이 중요했다. 손등에 눌려 찍히는 보라색 등수가 그랬고, 초 단위로 갈리는 점수를 보며 친구와 비교하는 마음이 그랬고, 고등학교 시절 자주 듣던 SES의 '달리기' 의 가사, "1등 아닌 보통들에겐 박수조차 남의 일" 이 그랬다.


20대가 되어 주변 사람들이 나이키 런이며 마라톤 대회며 온갖 달리기 활동을 시작할 때에도 나는 굳건했다. 헬스장에서도 러닝머신보다는 엘립티컬이었고, 운동을 해야 한다면 요가나 줄넘기를 선택했다. 달리기는 내 영역이 아니었다. 왜냐? 내가 잘 하지 못하는 것이고, 그러니 조금 뛰다 보면 부족한 내 체력에 속상할 것이 너무나 자명했으며, 무엇보다 어쩔 수 없이 뛰어야 하는 상황에서 목구멍과 폐가 온통 조여드는 느낌이 싫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29살이 된 이제는 매주 적어도 2-3회는 달리러 나가니, 인생은 길게 살고 볼 일이란 말을 이 때 쓰나 싶다. 많은 것들에 날카로웠던 예전과 달리 "그럴 수 있다" 를 입에 달고 사는 지금이라 그럴 수 있는 일인가 싶다가도 마치 교회에서 간증을 하는 새신자의 마음처럼, 나를 달리기로 이끈 '계시들' 을 되돌아보기로 했다.


계시들


첫 계시는 호치민에서였다.


한국의 7월만큼이나 무더운 호치민의 12월 어느 밤, 그랩에서는 베트남에 와서 실컷 먹기만 한 동료와 나의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다음주부터 새해인데, 무슨 운동을 해볼까요?" 란 약간의 찔림과 작심삼일 마인드가 뻔히 보이는 질문에 동료가 답했다. "러닝을 하세요." "러닝이요?" "네. 저는 1km도 못 뛰다가 이제는 한강에서 연속으로 20km를 뛰게 됐는데, 실력이 느는 기분이 꽤 좋다니까요?" 흠, 그거 참 흥미롭군. 나도 그럴 수 있을까? 란 생각만 하고 결국 뛰진 않았다.


두 번째 계시는 한라산에서였다.


1월, 아무 생각 없이 남한 최고봉을 등반한다는 생각에 신이 났던 나는 눈 쌓인 성판악 코스를 등반하며 그만 잔뜩 기가 질리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같이 갔던 4명의 친구들은 모두 러닝, 헬스, 요가로 탄탄히 다져진 체력을 갖고 있었고 나는 별 생각 없던 저질 체력이었던 것이다. 친구들을 저만치 앞서 보내면서 (친구 하나가 내 페이스메이커가 되어주긴 했지만) '앞으로는 운동을 꼭 한다!' 를 몇 번이나 되뇌었는지.


그리고 마지막 계시.


지난 4월, 1달간 매일 글 쓰는 습관 들이기에 재미가 들렸던 나는 뭐라도 더 해서 인정받는 알찬 사람이 되어야겠단 생각에 가득 부풀어 있었다. 그러다 당시 내 습관을 매주 체크해주시던 업계 멘토님이 권한 것이 미군에서 체력 훈련용으로 쓴다는 '인터벌 러닝' 이었다. 전력질주와 휴식을 반복해서 뛰어도 10-15분이면 된다는 말에 나는 냉큼 그날부로 아디다스에 달려가 트레이닝복 상/하의를 모두 샀다. 신발장에서 묵혀뒀던 러닝화도 꺼냈다.


기록에서 벗어나


하지만 인터벌 러닝을 한 첫날에 내 입에선 피맛이 나고 발 아치 부분이 아파왔다. 격한 운동을 하면 당연히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라곤 했지만 이렇게까지 해야 할 일인가 싶었다. 인터벌 러닝을 그만두고 '그냥 러닝'을 했지만 역시나 매번 지치기 일쑤였고, 기록은 누가 봐도 달리기 못하는 사람의 그것이었다. 매번 인스타그램에 그날의 러닝을 인증하는 친구들의 기록엔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나는 또 비교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나이키 런 클럽의 가이드를 들으며 달리기를 해 봤고, 나는 처음으로 달리기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기록을 자랑하고 평가받으러 달리는 것이 아닌, 나에게 집중하고 내 몸을 회복시키려고 달리는 것. 가이드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느려도 괜찮으니 힘들지 않을 것' 을 강조했고 뭐 하나만 해도 너무 자랑스럽다, 뿌듯하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페이스는 8분을 넘어 9분으로 가고 있었지만 이상하게 기분은 괜찮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한 번도 안 쉬고 2.5km를 달리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람!


그렇게 하루, 이틀, 며칠을 반복하다 보니 달리기가 전처럼 무섭지 않았다. 이게 경보인지 달리기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나는 멈추지 않았으니까. 가이드 속의 코치님에게 내가 지지를 받고 있단 것도 재밌었지만 이상하게도 친구들의 응원이 여기저기서 답지했다. 그들은 기록을 보고 응원하는게 아니었다. 친구들 역시 기록에 상관 없이 멀리서라도 같이 뛰어줄 누군가가 필요했던 것이다. 오랫동안 못 만났던 친구가 내 러닝 기록 인스타그램을 우연히 보고 동네 러닝 친구가 되어주겠다고 연락이 오기도 했다.


롱런이란 무엇인가. (기록을) 길게 뛰는 것, 뛰는 것을 오랫동안 하는 것, 뛰는 것과 상관없이 무언가를 장기적으로 바라보는 것 모두를 포괄한다. 난 그동안 항상 무언갈 하는데 있어 좋은 모습만 보이려고 했고 계속 비교를 했다. 그러니 일찍 지쳐서 단타에 그치곤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멈추지 않기만 해도 나는 충분히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설령 멈추면 어떤가! 다시 정신차리고 달리면 된다. 영어의 'in the long run' 이란 표현처럼, 세상엔 길게 (뛰어)봐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은 인터벌 러닝을 했는데 처음으로 피 맛이 안 났기 때문이다.


성과에 얽매이지 않고 나를 지지하고, 서로를 지지하는 것. 이것이 롱런의 본질 아닐까.





(이 글은 잡지 <whistle>에 기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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