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한 건 나인데, 위로받은 것도 나였다.

엄마보다 깊은 생각을 하던 순간들 (2)

by 김소연 트윈클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던 무렵, 나는 아버지를 잃었다.
죽음의 의미를 모르는 아이도, 가족 안에 흐르는 깊은 슬픔을 고스란히 느꼈다.

처음 본 엄마의 눈물, 분주한 어른들, 낯선 사람들.
모든 것이 낯설고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아이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불편한 감정을 풀어가려 했다.
엄마를 웃게 하려고 장난을 치고,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춤을 추고,
죽음에 대해 묻고, 엄마의 눈치를 살폈다.

아마도, 처음 겪는 슬픔이라는 감정이 아이에게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아이는 외할아버지 산소에 가는 걸 걱정한다.

"엄마, 산에 가면 또 울 거야?"

그 말 속에는
내 눈물을 보고 싶지 않은 마음,
그리고 엄마가 다시 슬퍼할까 봐 걱정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첫 번째 산소 방문이 아이에게도 선명한 기억으로 남았을까.
그날, 나는 울음을 참지 못했고
아이는 내 곁에서 조용히 서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때 아이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엄마의 눈물을 보면서,
그 어린 마음에도 슬픔의 무게를 느꼈을까?


그 후로, 산에 가는 길마다
아이는 나를 바라보았다.


"엄마, 이번에는 괜찮겠어?"

내가 눈물을 참아내면, 아이는 안심한 듯 웃었다.

나는 너무 깊은 슬픔 속에 있어서,
아이의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다.

그제야 아이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슬픔은 자연스러운 감정이고,
엄마가 우는 것도 그 슬픔을 흘려보내는 과정이라고.

그 후로 아이는 내 눈물을 닦아주고 나를 꼭 안아주었다.


"엄마, 외할아버지 많이 보고 싶어?"


그 작은 질문 속에,
내가 미처 헤아리지 못한 아이의 따뜻한 위로가 있었다.

아이는 점점 더 깊이 느끼고, 배우고 있었다.


슬픔을 피하는 대신, 함께하는 법을.


어느 날, 산소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이가 내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엄마, 나도 외할아버지가 보고 싶어."


순간, 가슴이 저렸다.
아이는 나만 바라보고 있던 게 아니었다.
자신도 외할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있었고,
그 마음을 조심스레 내게 내보인 것이었다.

이제, 아이는 슬픔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 감정을 내 곁에서 함께 느끼고 있다.


어쩌면, 내가 미처 가르치지 못한 위로의 방법을
아이는 나를 보며 배우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함께 나누는 슬픔은 더 이상 무겁지 않다.
그날, 나는 아이에게서 따뜻한 위로를 배웠다.

슬픔은 함께할 때 가벼워진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