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동료의 죽음과 아픔
처음부터 맹목적으로 회사를 불편하고 싫은 곳으로 생각했던건 아니다. 입사 후 얼마간은 즐거운 마음, 기쁘고 벅찬 마음으로 다니던 때도 있었다. 그랬던 곳이 완전히 싫은 곳으로 전락하게 된 데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직장이라는 삭막한 곳에서도 특별히 애정가는 사람이 생기게 마련이다. 주로 입사 동기 중에서 마음 맞는 몇이 생기기도 하고 가까운 입사 년도의 선후배 중에서도 있게 마련이다. 내게도 각별했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둘은 10년 전 세상을 떠났다.
입사한 지 17년이 되었으니, 처음 7년간은 그들과 서로를 다독이며 지냈고, 그후 10년은 나 홀로 이 외로운 곳에 던져진 기분이 들었다. 죽음은 먼저 병으로 다가왔다. 한 사람씩 차례로 병에 걸려 병가, 질병휴직에 이르게 되었고, 어느날 갑작스럽게 부고를 전해들었다.
가장 가깝게 지내던 동기 언니의 출산 후 아기 백일 무렵, 커다란 수박 한덩이와 코끼리 그림이 그려진 갓난 아기 옷을 사들고 집에 찾아가기도 했다. 돌 무렵에는 언니의 병세가 심해져서 항암치료를 받고 있었다. 모자를 쓴 언니와 만나서 수다를 떨기도 했다.
그땐 암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모를 때라서 언니를 만나서도 내 고민을 이야기하기 바빴고, 언니는 자신의 아픔은 제껴두고 나를 다독이기 바빴다. 그렇게 나는 어리고 철이 없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작별 인사도 못한채, 아픈 사람을 앞에 두고 내 고통이 더 크다고 하소연하던 모습으로 영영 이별을 한 것이다.
또 한 분은 1년 선배였는데 그녀는 둘째를 임신한 내 옆 자리에서 근무하셨다. 얼굴도 예뻐서 사내 잡지의 표지모델을 하고, 회사 대표로 티브이 프로그램에도 출연하던 멋진 분이었다. 업무는 또 얼마나 똑부러지게 해내는지 그녀는 내게 특별하고 위대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런 사람이 또 마음은 얼마나 따뜻한지 임신했다는 이유로 나를 친언니처럼 챙겨주곤 했다.
그렇게 정이 많고 유난히 닮고 싶던 사람 둘이 속절없이 세상을 떠나버렸다. 뇌종양이 완치된 줄 알고 가발을 쓰고도 멋지고 당차게 직장생활을 이어가던 그녀는 병이 재발하여 그렇게 영영 작별인사 없이 명을 달리하였다.
그 두 번의 가까운 죽음을 목격하고 나는 큰 충격에 빠졌었다. 그녀들과 같은 길을 걷던 중이었다. 같은 직렬, 같은 동료들과 일하던 나였기에 내가 있는 자리가 싫어졌다. 이전처럼 생활하기엔 그녀들의 공백이 너무나 컸다. 떠난 사람은 잘 보내주어야 하는데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았고 보내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나 혼자 소리없는 아픔을 꽉 움켜쥐고 10년을 보내왔다.
회사 곳곳에 추억이 서려있고, 나 혼자 덩그러니 그 큰 건물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배경일 뿐, 철저히 혼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로웠고, 고통스러웠다. 그것이 트라우마인 줄도 모르고 살았다. 결혼을 했고, 아이 둘을 차례로 낳는동안 내 몫의 아픔이 아직도 남아있는지도 모른채 세월을 보냈다.
그런데 복직을 해서 회사를 다녀도 그녀들을 아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내 마음은 편안하지 않았다. 나 혼자 슬픔을 꺼내보고 또 꺼내보는 것 같아 더욱 말을 아꼈다. 하지만 그럴수록 마음은 더 크게 아파왔다. 타인의 죽음과 나의 삶 사이엔 아무런 공통점이 없는 듯 보이지만 그런게 아니었다.
이렇게 10년이나 지나서야 그것이 트라우마로 영영 남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제는 한번쯤 이렇게 글로 써서 내 마음이 이렇다는 것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모른체 했더니 그 크기는 더 커져만갔기에 이제는 열어놓고 살펴봐주면서 어루만지며 살아가려고 한다.
유난히 고통스러운 지점을 누구나 가지고 살아간다. 내 삶만 이런 것이 아니다. 모두 가지고 있다. 그것을 저마다의 방법으로 달래면서 산다. 잘 되는 때도 있지만 대부분 괴롭고 아찔한 날이 더 많을 것이다. 마음에 응어리 하나씩 안고 살아가는 나와 우리다.
그런 나에겐 새로운 친구가 생겼다. 바로 '글쓰기'이다.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모르겠다. 우선 사정없이 쓰면서 사는 중이다. 퇴사라는 과녁에 화살을 쏘기 위해서 그토록 울면서 보내온 지난 몇 개월간에도 글쓰기만은 놓지 않았다. 어느덧 30개의 글이 차곡차곡 쌓여서, 3년간의 육아휴직과 3개월간의 복직 후 퇴사 이야기가 책 한 권으로도 나올 수 있을 분량으로 준비되었다. 이런 일이!
책은 어떻게 출간되는 것인지, 작가라는 직업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하는 건지 무척이나 궁금했었다. 그런데 서서히 그런 세계로 진입해보면서 느끼는 점은 '글쓰기'가 꼭 '신내림'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나는 이제 쓰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신내림을 받으면 꼭 무당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기쁜 날에도, 벅찬 날에도, 슬픈 날에도, 보통 날에도, 나는 글로 쓰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리는 사람이 되었다. 처음엔 이 따위 부끄러운 글을 써내려가는 내가 또 부끄러워지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점점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이런 글을 쓰는 것이 딱 내 모습이라는 것도, 이렇게 쓰면서 매일 매일 어제보다 오늘이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중이라는 사실도 퍽 마음에 든다.
트라우마는 여전히 내 가슴을 뻐근하게 만들지만 이상하게도 그 먹먹함이 싫지 않다. 어떤 것을 완전하게 가지려면 그것을 마음에 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배운다. 나는 그녀들을 무척 좋아했었고, 닮고 싶은 점, 본받고 싶은 점이 많았다. 그녀들은 내 삶을 따뜻하게 품어주고 있다. 나는 그녀들을 마음에 품고 살아간다.
그렇게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지만 한 사람의 마음에는 확실하게 자리잡고 있으니 이것 또한 나쁘지 않은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계속 쓰면서 살아갈 것이다. 깊은 글은 때론 깊은 아픔에서 나온다. 나이가 들수록 벅찬 기쁨보다 가슴 아린 일이 조금씩 더 많이 생긴다. 그래도 괜찮다. 가끔 느끼는 즐거움이 그래서 더 소중해졌고, 내 삶의 무게가 갈수록 무거워질수록, 우리 아이들은 어찌된 것이 더 밝고 씩씩하게 자라가는 것 같아서 그 대조도 싫지만은 않다.
쓰고, 느끼고, 깨닫고, 감사해하며 나는 조금씩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고 있다. 이것이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산 사람은 또 제 살길을 찾아가고, 자신의 발자국에 책임을 지고, 그 발자국을 만들어가는데에서 자유와 쾌감을 느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오늘도 나는 걷는만큼 발자국이 남는다는 사실이 무척 마음에 든다. 또박또박 만들어나가는 나의 길, 꿋꿋하게 개척해나가는 나의 삶이 좋다. 이런 생각을 가지며 마음에 드리웠던 그림자도 걷어내고, 얼굴에 드리웠던 어두운 기색도 보내준다.
글을 쓰며 트라우마와는 이별, 꼭 기억하고 싶은 추억과는 다시 만난다. 카페에 앉아 글을 쓰는 지금, 나는 무던히도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시간 여행을 한다. 그렇게 아픔은 흐려지고, 행복은 번진다. 커피 향기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