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열렬히 사랑한 것들이 남긴 자국
인생을 되짚어보는 순간이 있습니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그런 사람은 만나지 말아야지’ 혹은 ‘그 사람을 놓치는 게 아니었어. 그 사람을 선택했어야 했는데….’ 지나간 연애를 되돌아보면 예전의 선택을 후회하거나 택하지 못했던 선택을 아쉬워하기도 합니다. 돌아가고 싶은 과거의 시절이 있나요?
케케묵은 이야기지만 시청률 50% 이상이 가능했던 어린 시절, 일요일 저녁 안방을 장악했던 <일요일 일요일 밤에>라는 프로그램에서 이휘재의 인생극장이 유행시켰던 명대사가 있습니다.
“그래. 결심했어!”
그 순간으로 돌아가 선택을 바꾼다면 지금의 인생은 달라졌을까요? 어쩌면 인생을 달라지게 했을 여러분의 변곡점이 궁금해집니다.
추억의 이름인 인생극장까지 소환하며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최근에 받은 질문 때문입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대학원에 갈 거야?”라는 질문을 받고 내 인생에서 대학원은 뭐였는지 다시 생각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학부를 다닐 때만큼의 오랜 시간을 보낸 곳. 살면서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웠던 시기.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다는 벽의 실체를 선명하게 확인하는 바람에 앞으로의 인생에 대해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 없었던 시간. 그래서 ‘인생의 암흑기’로 명명해버리고 마음속 지하 창고에 처박아둔, 열고 싶지 않은 상자 더미. 졸업의 의미를 찾을 수 없어 졸업장을 포기하려고 했던 마음과 쓸모가 없어도 마침표는 제대로 찍자 했던 마음 사이를 오가던 숱한 갈등. 남들이 보통 석사를 따는 2년이라는 시간을 쏟아부어 어렵게 완성한 논문을 발표하고 승인받던 날, 억울함과 좌절감에 휩싸여 집에 와서 꺼이꺼이 울었던 기억. 그렇게 5년이라는 시간을 버티어 가까스로 마침표를 찍었지만 자랑스럽고 홀가분한 마음은 들지 않았습니다. 겪지 않았으면 좋았을 무엇이라고 단정 지었고 탈출하는 자의 마음으로 그곳을 벗어났습니다.
대학원 시절이 내게 이렇게까지 참담한 기억의 표식인지 인지하는 사람은 나 이외에 없을 겁니다. 가족들도 그 시절 숭아가 힘들었지 정도로만 알고 있을 거예요. 고생했지만 어쨌든 졸업을 했고 이후 현재까지 어떤 효용도 발휘하지는 않았지만, 가방끈은 길어졌습니다. 내가 예술 공부를 하겠다며 멀쩡한 직장을 관두고 대학원 진학 의사를 밝혔을 때 집에서는 어이없어했고 소심하게 반대의견을 표명했습니다. 등록금이며 생활비며 알아서 해결하겠다는 단호한 딸의 한마디에 반대해봐야 저 하고 싶은 대로 할 성정임을 잘 알고 있는 부모님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졸업할 때 의미 없는 졸업장을 딴 나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이 졸업장을 유용하거나 의미 있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가족들은 모를 겁니다. 모르는 게 약일 때가 있으니까요.
질문으로 돌아와서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대학원에 갈 거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노’입니다. 학위가 필요하다면 가는 게 맞지만, 공부를 하고 싶어서 대학원에 들어가지는 않을 것 같아요. 미술판에서 일할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 예술학 학위는 별 소용이 없습니다. 게다가 대학원을 다니면서 공부는 어디서든 할 수 있는 거지, 공부를 하기 위해 꼭 학교에 올 필요는 없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물론 아주 잠깐 경험했지만 강렬하게 유학 욕구를 일게 했던 외국의 어떤 수업을 상정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도 있을 겁니다. 나이, 재정 상황, 추후 진로 등 여건에 따라서요.
“노”라는 답으로 끝낼 수 있다면 간단한 질문이었을 텐데 암흑기라고 이름 붙인 대학원 시절이 내게 남긴 영향이 적지 않아 결국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내게는 인생의 변곡점이 두 번 있습니다. 첫 번째는 스페인에서 연수했던 시절, 두 번째는 대학원 시절인데요. 두 번의 변곡점에서 내 인생 경로가 알 수 없게 휘어졌습니다.
스페인으로 가기 전에 고민했어요. 영어를 공부하러 갈지, 스페인어를 공부하러 갈지에 대해서요. 외국어를 전공한 사람인데 외국어에 젬병이었거든요. 대학에 와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외국어에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요. 앞서 언급한 ‘인생극장’에서처럼 그 순간으로 돌아가서 결심을 바꿔 영어를 공부하러 미국에 갔더라면 내 인생이 지금과 달라졌을 거라 생각합니다. 영어를 못 하면서도 영어가 아닌 스페인어 연수를 택한 걸 보면 예술을 공부하겠다는 비이성적인 선택의 전조가 엿보이는군요. 나를 움직이는 동력에 효용 가치의 비중은 작은가 봅니다. 고달픈 인생으로의 귀결이 당연한 수순이었겠어요.
스페인에서 경험한 그들이 사는 방식은 내가 경험해 온 세상의 방식과 사뭇 달랐습니다. 그 다름에 빠졌고 탐닉했습니다. 비록 언어에 재능은 별로 없으나 스페인 문화는 딱 내 스타일이었거든요. 그들도 내게 “넌 절반은 스페인 사람(media-española)”이라고 칭했으니 우리의 궁합이 나만의 착각은 아니었을 겁니다. 스페인 문화는 다양한 방식으로 나를 건드렸고 그 건드림이 내 안에 일으킨 화학 작용은 거셌습니다. 나에게 존재하는지 몰랐던 새로운 나를 자꾸 발견하게 했고 그 새로움에 온몸이 다 젖도록 겁 없이 밀어붙였습니다. 다시 태어난 것 같았어요. 무엇이든 스펀지처럼 빨아들였습니다. 한국에 있는 내 사람들이, 떡볶이와 튀김, 김밥 세트가 한없이 그리웠지만, 그 외에는 스페인이 편안했습니다. 스페인에서 달라진 내 모습이 자연스러웠어요.
분홍색 고무장갑 알죠? 평생 분홍색인 줄 알았는데 누군가 갑자기 내 안에 쑥 들어와서 순식간에 나를 뒤집었는데 아이보리 색인 겁니다. 낯설게 느낄 법할 그 아이보리색이 내 정체성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든 거죠. 일 년이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나의 토대를 통째로 갈아엎었습니다. 그 시절에 형성된 삶의 기조가 이후의 내 삶을 관통했고요. 첫 번째 회사를 관둔 것도, 예술학으로 전공을 바꿔 대학원에 진학한 것도 이 토대 위에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예술 이론을 전공한 두 번째 변곡점부터는 생각이 많아지네요. 지금 봐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 궤적이고 다시 돌아가면 선택하지 않을 것 같은 길입니다. 어떻게 보면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 첫 단추이기도 하고요. 외국어를 공부하면서 외국어에 재능이 없는 걸 알아차렸듯이 예술이론을 공부하면서 깨달았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건 이론이 아니고 예술 그 자체임을. 깨닫지 않았으면 좋았을 깨달음이 존재한다면 이것이 아닐까란 생각을 가끔 합니다.
예술에 조금씩 눈뜨면서 내가 좋아하는 예술의 공통점을 발견하기 시작했습니다. 미술관에 박제된 작품에 갈수록 흥미를 잃었고 사람들이 발 디디고 있는 현실의 어떤 문제 인식에서 출발한 질문 같은 예술 행위들, 거기에서 파생된 작품들, 하나의 형태로 고정되어 있기보다는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해가는 과정이 곧 예술인 그런 예술을 마음에 품었습니다. 그 예술이 고민하는 지점을 같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좋아하는 예술을 좇아가다 보니 그 예술이 걸쳐 있던 사회, 정치, 생태 카테고리로 관심이 넓어졌습니다. 신기한 일이죠. 예술을 공부하기 이전에 나는 나의 삶 그리고 내 반경에 있는 사람들의 삶 너머의 일에 심드렁한 사람이었거든요.
효용의 차원을 벗어나 세상을 해석하는 코드에 접속했고 매료되었습니다. 이 코드는 아름다움의 기준, 아름다움을 지각하는 감각에서부터 알고 싶은 것, 해보고 싶은 일, 나아가고자 하는 삶의 지향점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나를 흔들어 놓았습니다(이 죽일 놈의 사랑일까요?). 이후 달라진 나의 삶에 대해서는 좋다/나쁘다로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을 느낍니다.
이전과 다를 게 없는 일상을 다채롭게 누리며 삽니다. 놀이 천재가 아닐까 하는 자뻑이 들 만큼 참 시시한 것으로 즐겁게 놀아요. 어릴 적엔 애어른이었는데 정작 어른이 되어 유아기로 퇴행한 듯합니다. 요새는 하루에 하나씩 하드를 까먹는 데 재미를 들렸는데요. 하드도 맛있지만 하드를 다 먹고 나면 남는 나무 막대기를 모으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나무 막대기에 표정을 그려 넣어 원하는 표정 막대기를 다 갖추게 되면 표정극 놀이를 하려고 꾸준히 모으고 있어요.
놀이 천재가 된 게 전부라면 좋기만 할 텐데 실상은 그렇지 않아요. 사회, 정치, 환경을 비롯해 살면서 겪는 온갖 문제에 대한 지각과 열린 감각의 상호작용은 감당하기 벅찰 때가 많습니다. 알아지는 게, 느껴지는 게 많을수록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고,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나를 조여옵니다. 용기를 내어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미미한 개인의 행위가 나를 죄책감으로부터 건져 올리는 것 외에 실제로 어떤 역할을 일으킬까 생각하면 이내 작아지고 무력해지고 가슴만 답답해집니다.
지나간 사랑은 흔적을 남겼습니다. 내 몸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그 사랑에 대한 감정이 후회 일지, 그리움 일지, 그 사이의 어떤 것일지 혹은 그 너머의 어떤 것일지 하나의 형상으로 갈음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제는 내가 되어버린 그 흔적에 익숙해갈 뿐입니다. 한때 열렬히 사랑한 것들이 남긴 자국. 그 자국을 껴안고 오늘을 살아갑니다.
이번 질문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나요?입니다.
어느 때로 돌아가고 싶은가요? 그 이유는요?
돌아간다면 무얼 하고 싶나요?
인생의 변곡점에 대한 이야기도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