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변화시킨 글쓰기의 시작
"결국 이 시국에 나가게 되었구나."
코로나로 모두가 공포에 떨고 있던 시절이었다. 툭하면 학교가, 유치원이 문을 닫았고 사람에 대한 마음의 문 마저 닫혀가고 있던 그 시절에 나는 남편을 따라 아랍에미레이트 연합(UAE)으로 가게 되었다.
가뜩이나 낯선 곳에서 팬데믹까지 겹치니 삶은 갑갑하기 그지없었다. 며칠에 한 번 코로나 음성이라는 것을 확인받기 위해 병원을 나서는 일 혹은 마트에 장을 보러 가는 일을 제외하고는 누군가를 만날 일도, 그럴 여유도 없었다. 확진을 받으면 주변의 모든 사람들까지 격리를 해야 하므로 폐 끼치지 않기 위해 최대한 몸을 사렸다.
나의 일과는 단순했다. 새벽에 눈을 떠 등교하는 아이들과 남편의 도시락을 싸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사이 밀린 집안일을 끝내면 어느새 하교 시간이 된다. 돌아온 아이들을 씻기고 숙제를 봐주고 같이 영어 공부를 하고 저녁을 먹이면 어느새 나의 하루도 끝이 났다. 쳇바퀴 도는 삶이었다.
남편은 "이곳은 이슬람 국가이고 왕권국가여서 법이 굉장히 엄해. 특히 다른 사람 사진을 찍어서 SNS에 올리다가 적발되면 큰 벌금을 물고 최악의 경우 추방되기도 하니 조심해야 해"라며 엄포를 놓았다. 취미로 들고 다녔던 나의 벽돌만 한 카메라는 그렇게 장롱 속으로 들어갔다.
속풀이 할 사람조차 하나 없는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친구들에게 미주알고주알 이야기 하듯이 있었던 일들을 쓰고 그렸다. 웃겼던 일, 신기했던 일, 황당했던 일 등 그냥 그런 일상의 사소한 것들을 쏟아내었다. 그 단순한 작업이 내 글의 시작이었다.
20대 초반 유럽에 있었을 때, 유난히도 다이어리를 열심히 적는 한 친구가 있었다. 모두가 피곤에 곯아떨어진 늦은 시간에도 그는 작은 스탠드를 켜고 무언가를 적었다. 그 모습이 인상 깊어 나도 그를 따라 적기 시작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당시에 찍었던 사진 외장하드가 날아가고 나니 남은 건 그 다이어리 한 권뿐이었다. 내용으로 따지자면 유치하기 이를 데 없지만 읽다 보면 어느새 젊고 활기찼던 20대의 나로 되돌아간다. 그때 들인 기록 습관은 나를 어느덧 추억부자로 만들어 주었다.
지난해 가족들의 죽음에도 고국에 돌아갈 수 없던 서글픈 마음을 하소연할 곳이 없어 글로 털어놓기 시작했다. 물론 손가락으로 스마트폰을 몇 번 누르면 따스한 위로를 건네 줄 사람들이 있지만 나이가 들어가며 왜인지 나의 힘든 일을 털어놓는 것을 주저하게 되었다. 각자 자기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는데 나의 힘듦을 그네들에게 함께 져달라고 하는 것 같아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이미 마음 쓸 곳이 많을 텐데.. 괜히 걱정 끼치고 싶지 않아.' 하며 스마트폰을 내려놓는다.
글의 주제도, 읽는 사람도 마음에 두지 않았고 그저 써 내려갔더니 어느새 마음이 진정되어 갔다. 그리하여 이제는 슬픈 일이 있어도 글을 쓰게 되었다. 마지막에는 항상 이 일을 극복할 다짐 한마디를 달아놓는다. 그리곤 그 일이 떠오를 때마다 그때의 감정선을 따라가며 다시 극복한다.
그렇게 삶의 다음 챕터로 넘어간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