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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 번 산 고양이> 삶에 대한 진정한 성찰

『100만 번 산 고양이』사노 요코 글. 그림 / 김난주 옮김 / 비룡소

『100만 번 산 고양이』사노 요코 글. 그림 / 김난주 옮김 / 비룡소 출판

   

     여기 100만 번 산 얼룩 고양이가 있다. 그는 때로는 임금님의 고양이였고, 뱃사공, 서커스 마술사, 어느 할머니, 소녀, 도둑 등등의 고양이였다. 그의 주인들은 그가 죽을 때마다 매우 슬퍼했지만 얼룩 고양이는 슬픔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던 그가 100만 번째는 어느 누구의 고양이도 아닌 자유로운 도둑고양이가 되었다. 얼룩 고양이는 인기가 많았지만 다른 고양이는 거들떠보지 않았다. 오로지 하얀 고양이만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100만 번 산 얼룩 고양이의 자랑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고양이였다. 얼룩 고양이는 고백을 하고 둘은 결혼해서 새끼 고양이도 많이 낳고 행복하게 살다 하얀 고양이가 먼저 죽었다. 얼룩 고양이는 몇 날 며칠을 슬퍼하다 죽었다. 그리고 다시는 태어나지 않았다.     


  얼룩 고양이가 하얀 고양이를 안고 울 때 나도 눈물이 왈칵 차올랐다. 얼마나 다행인가. 슬픔을 느낄 수 있어서 말이다. 또한 얼룩 고양이가 다시 태어나지 않아도 되었으니 말이다. 사랑도 슬픔도 인생의 희로애락을 알았으니 다행이었다.     


  얼룩 고양이가 누군가의 고양이일 때는 삶의 의미도 몰랐고 인생을 몰랐다. 그가 주체적이지 않고 누군가에 의해 길들여지고 키워졌기 때문일까? 100만 번이나 살아보니 삶이 우스웠을까? 누구의 고양이도 아닐 때 얼룩 고양이는 자유로웠고 자기다웠다. 그때야 비로소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고 진정으로 사랑한 하얀 고양이가 죽자 목 놓아 우는 장면은 독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더구나 그의 품에 평온이도 잠들어 있는 하얀 고양이를 보면 더욱 대비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렇게 자신보다 더 하얀 고양이를 사랑했던 얼룩 고양이는 100만 번이나 서럽게 울다가 죽음을 맞이한다. 그가 목 놓아 울었던 자리에는 들꽃이 피어 있을 뿐이다.     


  자기 정체성, 삶과 죽음, 타인과 관계 맺기와 진정한 사랑을 이야기하며 100만 번째 삶은 진정한 사랑으로 삶의 가치와 의미를 깨닫고 떠난 얼룩 고양이다.    


  사노 요코 특유의 생각이 묻어나는 그림책이다. 그림을 감상하는 것도 좋다. 수채화 같으면서도 굵은 붓 터치로 판화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고양이 털을 먹으로 쓰윽 무성의하게 그릿 것 같으면서 번지게 한 느낌 좋다. 등장인물의 감정 표현에 중점을 두어서 그런가? 날카로운 선은 찾아볼 수 없고, 둥글둥글한 듯 연한 수채화로 담묵 느낌이 물씬 풍긴다. 앞표지의 얼룩 고양이 모습과 뒤표지의 하얀 고양이와 어깨에 손을 올린 얼룩 고양이 모습이 대조적이기도 하다. 사노 요코의 다른 그림책 <태어난 아이>도 함께 보면 더 깊은 울림이 있을 것이다.  


* 누구의 무엇이 되어 산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 얼룩 고양이는 백만 번 살며 희로애락을 진정 몰랐을까?

*  이 책에서 내 마음을 후련하게 한 장면은?

* 얼룩 고양이가 하얀 고양이를 만나지 못했다면?

* 얼룩 고양이가 백만 번 살게 된 이유는?

* 얼룩 고양이가 두 번 다시 살아나지 않게 된 이유는?

* 나는 뜨거운 눈물을 흘린 적이 있는가?

* 소유의 의미는?

* 백만 번이나 죽고 살아야 자신을 아는 걸까?

* 일방적으로 주는 것이 사랑일까?

* 누군가를 사랑해야만 행복한 것일까?

* 다시 태어난다면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 어떤 삶이 의미 있는 가치 있는 삶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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