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꽁스땅스 Dec 20. 2020

바리스타 자격증은 따야지

어설픈 라떼아트

남편이 등록해 준 과정은 3개월 바리스타 교육과정이었다. 커피의 역사부터 다양한 메뉴까지 일주일에 한 번 두 시간씩 진행되었다. 내가 속한 반은 80기였고 다양한 사연을 가진 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첫날부터 교육장을 찾느라 땀을 뻘뻘 흘렸고 수업에 지각했다. 교육장은 주택가에 아는 사람만 찾아갈 것 같은 곳에 위치해 었다. 처음에는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어색했는데 수업을 듣다 보니 편안하고 아늑한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첫 시간은  커피의 역사 수업이었다. 멋진 신부님이 들려준 이탈리아 양치기 소년 칼디와 커피 열매를 먹고 밤늦게까지 잠을 자지 못한 춤추는 염소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이슬람 순례객들에 의해 퍼져나간 커피는 점차 유럽의 여러 도시에서도 마시기 시작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커피 기원은 고종황제가 아관파천 때 러시아 공사관에서 커피를 대접받은 게 최초라고는 하는데 이견이 많다고 했다. 그전에 조미 수호 통상 사절단을 미국으로 안내하며 통역하던 Lowell 이 그의 노고를 치하하는 고종황제의 초청을 받아 커피를 마셨다는 기록도 있다고 했다. 광고에서만 보던 아라비카가 고급 커피의 대명사라는 것, 그 원산지가 에티오피아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커피 재배에 있어 고도 700~800 기준으로 아라비카와 로부스타를 구분한다는 것도 새로웠다. 생두 이름을 표시하는 방법도 생산 국가명과+산지명, + 항구명, +등급으로 다양하게 표기된다는 것도 배웠다. 나라별 커피 이름과 특성은 누가 만들었는지 알쏭달쏭 투성이었다. 귀부인같이 우아하며 고급스러운 커피, 숲의 향기가 느껴짐, 야채, 와인 맛, 중후한 바디감 등등. 과연 나의 혀는 그런 맛들을 감지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한때 향이 좋아 즐기던 헤이즐넛 커피는  수확한 지 오래되거나 질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커피로 만들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다. 커피 자체로는 향과 맛이 부족하기 때문에 향을 섞어서 상품화한단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 


3개월간의 교육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마지막 총정리 시간에 강사님은 곧 시험 공지가 나올 것이라며 미리미리 공부를 해두라고 하셨다. 바리스타 협회마다 시험이 다르다는 것, 바리스타 자격증이 국가 자격증이 아니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카페를 운영하는 사람들 중에는 자격증을 취득하지 않은 사람도 있. 굳이 자격증을 따야 하나 싶었지만 남편 은근히 바라는 눈치였다. 가톨릭 바리스타 협회에서 주관하는 필기시험은 주관식이었다. 총정리 시간에 문제를 알려주시고 새로운 문제가 한두 개 추가된다는 것이다. 점수는 80점 이상이면 합격이고 실기시험 자격이 주어졌다. 시험 두 주 전에 시험 일자가 발표되 매일 조금씩 준비를 했다. 



성당 안에서 시험을 보았다. 얼마나 긴장을 했던지 볼펜을 쥔 손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글씨는 요리조리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답을 준비하고 쓰는 연습까지 했건만. 한 시간 반 정도 적어 내려갔다. 다양한 메뉴 만들기 문제는 기억나는 대로 대충 적었다. 시험지를 내고 나오는데 반가운 봉사자분들과 강사님들을 보니 나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날 저녁 합격 통지를 받고 일주일 후 실기시험을 준비해야 했다. 라테아트를 두 잔에 그려야 했다. 다행히 교육장에서 연습할 시간을 할당해 주었다. 봉사를 이미 시작한 터라 에스프레소 기계를 만지는 데는 익숙해져 있었다. 문제는 고운 우유 거품과 결이 촘촘한 하트를 그려내는 것이었다. 고운 거품 내기가 그렇게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지 처음 알았다. 다른 분들은 처음인데도 찰랑찰랑 거품을 잘도 냈다. 강사님이 손을 잡아주셔서  그 느낌을 살려 물로 시뮬레이션하며 연습을 했다. 그리고 시험 당일 컵이 떨어질 듯 부들부들 떨며 어설픈 라테아트를 완성했다. 


신부님께서 한 사람씩 시험 응시자들의 라테아트를 평가해 주셨다. 


" 자매님은 우유 거품은 참 좋네요. 하트 결도 나쁘지 않아요. 조금 더 연습하시면 훌륭한 바리스타가 되시겠네요" 


조금 더 연습을 하라는 건 불합격!이라는 건가? 스스로에 대한 실망으로 집으로 온 나는 저녁 무렵 합격 통지를 받았다. 깍! 나도 이제 바리스타다.(비록 2급이긴 하지만) 한 번에 제빵사 자격증을 취득한 남편은 자기일 처럼 기뻐해 주었다. 







이전 12화 로스팅은 언제 배우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