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커피를 좋아하게 된 이유
커피를 배우고 봉사를 한 지 2년이 되어간다. 주 2회 봉사를 하다가 지난 11월에는 주 3회 좀 먼 거리를 다니기도 했다. 매일 하는 것이 아니라 실력이 출중하지는 않다. 하지만 집을 나설 때면 다시 회사원으로 돌아간 거 마냥 마음이 분주해진다. 예전의 분주함은 그날 밀린 업무들을 떠올리고 수치들을 생각하는 머리가 뻐근한 것이었다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커피 향을 맡을 생각에 기분 좋은 것이라 하겠다.
회사원일 때에는 일이 주는 즐거움보다는 경제적인 이유가 나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 게다가 회사의 환경이라는 것도 일을 놓지 못하게 하는 것 중 하나였다. 마음 맞는 동료들, 나만의 공간, 회사에서 만들어내는 제품들을 보는 즐거움. 가끔씩 주어지는 교육, 출장 등등. 회사의 일원으로서 누리는 여러 가지 혜택들. 사람의 마음이란 게 참 우습다. 몸이 아프니 나에게 소중하다고 느꼈던 것들이 한순간에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다가왔다. 그토록 애정 하던 나의 일도, 공간도. 내 삶의 우선순위였던 일이 나에게 "이렇게는 아니야! "라는 내면의 소리가 들렸다.
훌훌 다 털어버리듯 뒤도 안 돌아보고 회사를 나왔다. 정해진 도착지 없이 떠다니는 한량이 된 듯. 아무 계획 없이 커피를 배우고 봉사를 시작했다. 처음 남편이 커피를 배우라고 했을 때 봉사를 한다는 건 우리 둘 다 생각도 못 했다. 취미 중 하나로 오로지 나나 남편을 위해서 배워두면 좋겠다 싶었다. 함께 모인 교육생들도 배우는 목적이 노후에 카페를 차리고 싶어서, 워킹홀리데이로 외국 나가서 아르바이트라도 하려고, 커피를 좋아해서 등등.
남편은 오랜 전부터 유니세프에 기부를 하고 회사 활동으로 알게 된 할머니와 사는 자매들과 퇴사 후에도 꾸준히 연락을 한다. 난 마음만 있을 뿐 남편은 늘 먼저 행동하고 주위를 돌보는 사람이다. 매년 연말이 다가오면 자매들을 만나러 간다. 그럴 때 용돈이라도 주라고 봉투를 준비하라고 말만 거들뿐.
봉사를 하면서 이미 모든 게 다 갖추어진 회사와는 달리 손으로 하는 게 많았다. 대형 프랜차이즈가 아니기도 하고 비영리 목적의 법인이다 보니 웬만한 건 봉사자가 스스로 알아서 눈치껏 해야 했다. 매일 에스프레소 머신을 만질 수 있다는 것 외에 잡다한 일들이 많았다. 봉사 매뉴얼 같은 건 없고 봉사자들끼리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행주를 삶는 것부터 머신 청소하는 것까지 누구한테 배우냐에 따라 방식이 달랐다. 일률적이지 않아 서로 툴툴거리기도 하지만 꾸준히 지속할 수 있는 힘은 무엇인지 의아했다.
책 <초집중>에서 재미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나온다.
재미란 무언가에서 남들이 못 보는 가변성을 찾는 것이다. 따분함과 단조로움을 돌파해 숨어있는 아름다움을 찾는 것이다 <초집중>
재미란 익숙한 상황을 의도적으로 새로운 방식으로 처리했을 때 생기는 결과라는 것이다. 힘들어서 달아나려고 하거나 보상을 이용해 동기를 유발할 게 아니라 익숙한 일에서 이전에 보지 못했던 도전과제가 있을 때 일에서 색다른 맛, 즉 재미를 느낀다는 것이다. 커피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내가 아무런 호기심 없이 시작해서 봉사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책을 읽으며 좋은 문장을 만난 것이 기쁘듯 커피를 배우며 새로운 분야를 알아가는 재미를 느꼈고 무엇보다 봉사라는 Why 가 있었기에 2년 가까이 지속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내가 만난 봉사자들의 공통점은 손으로 이루어지는 원두 택배 작업, 드립 백 작업등의 단조로움과 따분함을 넘어 그곳에 숨어있는 재미를 찾는다는 것이다. 전적으로 자기의 시간을 할애해서 반나절이든 하루를 일한다. 어떤 분은 이틀이나 삼일 봉사를 하기도 한다. 회사를 고를 때 출퇴근 거리를 고려하는 게 당연하지만 이분들은 두 시간이 걸려 새벽부터 집을 나서더라고 매주 무료 봉사하러 오는 일이 즐겁다고 하신다. 그분들의 넉넉한 여유로움, 몸을 아끼지 않고 닦아도 태도 안 나는 카페를 걸레를 들고 오가는 엄마 같은 푸근함! 재지 않고 계산하지 않고 아낌없이 나누는 마음! 누가 시키지 않아도 보이지 않는 곳까지 정리하는 세심함! 숨어있는 아름다움을 찾는 탁월함!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시간과 부족하지만 진심 어린 마음을 담아 커피를 내리는 즐거움이 그 원동력인 것 같다. 그런 마음들이 나에게도 전해져 매주 동동거리며 출근 준비를 하게 한다.
어느 날 함께 하는 오후 봉사자가 손님이 없어 한적할 때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
" 손님도 없는데 우리 유리창이나 닦을까요?"
" 유리창이오? 하긴 좀 먼지랑 얼룩이 보이긴 하네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모아둔 신문이랑 양동이 가득 물을 받는다.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집에서도 안 하던 유리창 닦기를 오후 내내 했다. 카페 유리문부터 내부 벽까지 의자에 올라가서 고개가 꺾이고 먼지를 마시면서. 청소를 마칠 무렵 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 아! 대청소 날이신가 보네요. 아메리카노 한잔 주세요. 테이크아웃이오!"
봉사자는 명랑한 얼굴로 손님을 맞으며 손을 씻고 포스 앞으로 갔다. 뒷정리를 하며 얼룩과 먼지를 제거해서인지 다른 사람 눈에는 안 보이는 산뜻해진 카페를 보니 괜히 마음까지 상쾌하고 뿌듯해졌다.
이제는 커피를 조금 좋아하게 되었다. 무언가를 좋아하려면 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에 올 한 해 한발 더 나아가 보려 한다. 그리고 잠시 커피에 담긴 봉사자들의 아름다운 마음을 상상해본다.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마음을 보듬고
다시 힘을 내어 살아갈 수 있는 따뜻함이길
외로운 사람에게는
멀리 있어도 서로의 진심을 느끼며
함께 있는 포근함이길
낯선 이와 함께라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서로의 서먹함을 녹일 수 있길
사랑하는 이와 함께라면
말이 없어도
서로의 편이 되어주는 든든함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