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고 그런 사이라고요. 저랑-
여자는 휴게실 앞에서 동료들의 말소리를 들었다. 사실 우연히 휴게실을 지나던 것은 아니었고 커피를 마시려 텀블러를 들고 휴게실에 들어가려던 찰나, 한 뼘쯤 열린 유리문 사이로 동료들의 높은 톤의 웃음소리와 다소 경박스런 말투에 주춤해버렸다. 그들이 나누고 있는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여자였다. 여자는 텀블러를 손에 꽉 쥐고 뒤돌아서 아무렇지 않은 척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려고 했으나 그 다음에 무슨 말이 이어질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 그러니까 그 콧대 높은 황을 꼬신 거죠. 회식 때 여자가 옆에만 앉아도 정색하고 화장실 가는 척하면서 슬쩍 자리 옮기는 사람이잖아요.
여기에서 콧대 높은 황은 여자의 옆 부서인 홍보마케팅 2팀의 황 과장을 말하는 거다.
- 강 주임님은 어쩜 그렇게 잘 아세요? 아니 윤 주임님은 완전 쑥맥 같던데 어떻게 꼬셨을까요?
여기에서 완전 쑥맥 같은 윤은 여자를 가리킨다.
- 아이고, 민지씨. 윤 주임가 그렇게 쑥맥 같은 얼굴로 접근하니까 황 과장님이 경계 풀어버린 거겠죠. 사실 홍보 2팀이랑 전략기획팀이랑 부딪힐 일이 얼마나 있겠어? 홍보팀이 조직 개편하면서 자리 없어서 전략기획팀 옆으로 옮긴 게 화근이겠죠. 뭐.
홍보마케팅 2팀과 전략기획팀은 파티션을 사이에 두고 한 사무실을 사용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지금 대화를 주도하고 있는 홍보마케팅 1팀의 강 주임, 그 옆에서 강 주임의 흥을 돋구고 있는 경영지원팀 민지씨, 그리고 조용히 커피를 홀짝이며 듣고 있는 해외사업팀 선 과장까ᆞ지 모두 홍보마케팅 2팀과 전략기획팀과 한 사무실에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 그러면 강 주임이랑 황 과장이랑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건가요?
선 과장이 강 주임에게 물었다.
여자는 지금 당장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서 자신은 쑥맥도 아니고, 황 과장에게 사적으로 먼저 연락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다. 헛소문이니 오해니 아무리 설명해도, 지금 들어가서 말하는 순간- 자신이 모든 이야기를 엿들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고, 그건 다시 말하면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에 불을 붙이는 것과 같았다. 여자는 입술을 잘근 씹었다.
1층 카페에 내려가서 아메리카노가 아니라 휘핑을 잔뜩 얹은 아이스초콜릿을 마셔야할 것 같은 기분에 조용히 발을 옮기는 순간, 누가 여자의 발목을 콱 움켜준 것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다.
- 에이, 윤 주임, 황 과장이랑 그렇고 그런 사이 아니에요. 나랑 그렇고 그런 사이인데?
선 과장이었다.
- 네?!
강 주임과 민지씨의 목소리가 한 톤 더 높아졌다.
- 그렇고 그런 사이라고요. 저랑 윤 주임이요. 왜 그런 이상한 소문이 났을까? 우리 매일 야근도 같이하고, 팀도 다른데 점심도 같이 먹고, 여름휴가 일정도 맞췄는데. 신경 좀 써주는 게 어때요, 나한테도?
그는 문 앞에 여자가 이미 문 앞에 서있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처럼, 여자의 손을 잡고 1층으로 내려갔다. 두 사람은 아주 달콤하고 시원한 아이스초콜릿을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