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학에서 감정을 발견한 것은 채 몇십 년도 되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감정이 중요한 마케팅을 제외하고, 예를 들면 조직과 전략의 분야에서 본격적으로 감정을 고려한 것은 30년 정도밖에 되지 않으며 아직도 충분한 연구가 되어 있다고 보기도 힘듭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감정이 이성의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사소하며 주관적이라는 근대적 관념 때문일 것입니다. 마케팅에 있어서 21세기의 초반은 뜨거운 감정의 시대입니다. 충성심, 애착, 참여 그리고 헌신과 같은 개념이 주관적인 경험과 활동에 대한 강조와 함께 "뜨겁게" 연구되고 있습니다.
뜨거운 감정과는 다르게 뚜렷하게 감지되지 않는 감정이 있습니다. 구별해서 느낌이라고 표현되기도 하지요. 모호하고 불확실한 종류의 감정입니다. 예를 들면, 삐지는 것과 같은 종류의 상태이지요. 찝찝함이란 상태도 불확실성을 갖는 감정의 종류입니다.
마음이 새로워질 때는 이러한 불확실한 종류의 감정 과정의 기능이 필요합니다. 일반 사람의 대부분은 본능적 관념 혹은 제도 기반의 개념에 종속됩니다. 그것은 다분히 도덕적이고 윤리적입니다. 사회의 평판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도 도구적입니다.
새로운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일상적으로는 벗어날 수 없는,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기존의 관념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새로운 이상이 우리 안의 근원적인 에너지 안으로 섞여 들어가야 가능한 일입니다. 또한 이러한 초기적 과정은 자동적으로 지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같은 지향성으로 우리의 마음을 거듭 새롭게 해야 겨우 가능한 일이 됩니다.
이미 본질을 잃고 제도 방어의 원리가 된 이른바 사회적 기준은 쉽게 합리화의 도구가 됩니다. 누구는 이렇게 한다더라 혹은 이렇게 해서 성공했다더라 하는 사회적 스토리가 우리를 사회 체계에 단단하게 연결합니다. 이러한 공유된 스토리의 힘은 대단합니다. 우리는 대개 이것에 의문을 품거나 비판하려 하지 않습니다. 사회 유지의 근간이 되는 무의식적인 힘인 것입니다.
가끔은 혹은 흔하게, 마음 한 구석이 찝찝함에도 불구하고 어떤 일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태까지 그래 왔기 때문이고 남들도 다 그러하기에 그렇게 하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무의식을 잡고 있는 많은 근거 없는 신화들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은 채 그냥 주어진대로 살아가기 쉽습니다. 자기의 삶을 살지 못하고, 근원도 알지 못하는 사회적 억압과 콤플렉스의 구렁텅이가 곧 삶의 터전이라고 오해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마음 한 구석이 찝찝할 때는 되도록 그 일을 하게 되지 않길 바랍니다. 누가 뭐라든 자신의 느낌을 믿게 될 때가 오길 바랍니다. 이러한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특히 많은 사회적 압력은 우리로 하여금 마음을 따라 행동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 미묘하지만 근본적인 느낌을 중요시하는, 성숙된 사람들은 사회적 압력을 사회적인 관계에서 사용하지 않습니다!
[권력에 의한 위계]란 개념이 최근 미디어에 많이 보입니다. "네가 뭔데" 혹은 "너 네가 누군 줄 알아?"란 문장이 의식 혹은 무의식 속에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당당하다면 자신의 존엄을 믿으십시오. 자신의 존엄이 지켜지는 곳에 자신을 위치시키는 데 최선을 다하십시오. 혹시 돈 몇 푼 더 주는 곳에서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그렇지만, 무모하게도 자신을 고립시키지 마십시오. 우리 중 누구도 혼자 사회적 압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우리는 적어도 둘셋의 동료가 "반드시" 필요할 것입니다. 더 많으면 좋겠지만 그것은 과한 욕심입니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습니다.
자신의 존엄을 찾는 모든 여정은 찝찝함이란 사소하지만 위대한 느낌에서 시작됩니다. 당연하게 여겼던 것이 찝찝해질 때 기뻐하십시오. 당신은 지혜를 얻은 것입니다. 찝찝함은 당신의 양심에 먼지가 앉았을 때 갖게 되는 미묘한 느낌입니다. 그 느낌을 간과한다면 언젠가 당신의 내면은 온통 먼지에 뒤덮이고 양심에 철판을 깔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이 증오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마음의 먼지를 털고 항상 새로워지시기를 바랍니다. 그 먼지를 털어줄 동료를 얻게 된다면 정말이지 기쁜 일이 됩니다!
[It's a feeling] by Toto (1982)
*Title Image: [Indeliable Landscape III] by Ken Eli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