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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태원 Taewon Suh Dec 18. 2021

일몰낙과[日沒落果]

소니뮤직 케이스

음반 업계의 성쇠

음악 산업의 규모가 정점에 있었던 1990년대와 급속하기 축소되기 시작한 2000년 이후에 음악 산업에는 수많은 M&A가 있었습니다. 산업화된 비즈니스의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경쟁사가 하나가 되고 거인들이 힘이 합치고... 모노폴리를 향한, 정리하기도 힘들 만큼 수많은 시도들이 있었습니다.


1980년대 후반에는 Big 6가 있었습니다: CBS, EMI, BMG, Polygram, WEA, and MCA. 1990년을 전후하여 산업의 규모가 급속하게 커지자 모노폴리를 향한 움직임이 시작되었습니다. 1990년 Sony의 CBS/Columbia 매입이 그 시작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독일의 미디어 기업인 Bertelsmann은 RCA의 매입을 통해 BMG란 이름으로 1987년 음반 업에 진입한 바 있었습니다. 1998년 Polygram과 MCA를 합친 Universal Music Group이 탄생한 것은 그 정점에 해당합니다. 이후 불황 시기에 산업 관여도가 낮은 투자 세력은 빠져버리고 산업의 집중도는 더 증가하게 됩니다. 현재 시점에서는 Sony  Music, Universal Music Group, 그리고 Warner Music Group의 Big 3가 존재합니다.


소니뮤직

현재 업계의 탑 3의 하나인 소니뮤직에 대한 사례입니다. 1990년대는 이른바 글로벌라이제이션의 시대였습니다. 소니뮤직은 1990년대 글로벌 경영의 이점을 최대한으로 얻은 회사입니다. 로컬 시장의 자율권이 강할 수밖에 없는 산업의 특징으로 인해 음반사들은 대개 중요한 지역에 독립적인 법인을 두고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그에 비해 소니 뮤직은 기획 업무를 중앙화해 가고 글로벌 마케팅에 힘쓰면서 당대의 조류에 편승했습니다. 글로벌 브랜드를 구축해서 얻게 되는 협응 효과는 컸습니다.  


머라이어 캐리를 발굴하고 결혼까지 했었던 토미 모톨라가 1990년 소니 뮤직의 대표로 취임하고 2003년 물러날 때까지의 시기는 음반 산업이 최정점에 이르고 미끄럼을 타기 시작하는 시기와 겹칩니다. 토미 모톨라는 모든 성과를 자신의 업적으로 돌리지만, 매크로한 시각에서 보면 이 시기 소니 뮤직의 성공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급속하게 팽창되고 불법복제 디지털 음악이 성행했던 1990년대 말 이후 급속하게 수축되었던 음반 산업의 흐름의 일부일 뿐입니다. 토미 모톨라는 다만 제 때의 파도에 올라탄 능숙한 서퍼였습니다. 물론 모든 서퍼가 모든 기회에서 항상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소니와 소니뮤직

소니뮤직의 역사는 모기업인 소니의 역사와 하나입니다. 1990년을 전후하여 창립자인 Morita Akio와 그로부터 소니의 수장직을 이어받은 Ohga Norio에게는 명확한 비전이 있었습니다. 하드웨어 제작사인 소니에게 컨텐트의 중요성을 설파한 사람이 바로 오가 노리오입니다. 흥미롭게도 그는 원래 음악 전공자입니다. 회사 초기의 테이프 레코더 제품 품질에 대한 항의 편지를 보냈다가 그의 날카로운 인사이트가 경영진의 눈에 띄어 소니에 합류하게 된 특이한 이력의 경영자이지요. 오가 노리오는 Compact Disc를 개발하고 보급했으며 CBS/Columbia를 사고 Playstation을 개발하는 등 소니의 전성기를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오가 노리오는 건강 문제로 1995년 Idei Nobuyuki를 후계자로 선언하고 1999년 대표 자리를 그에게 물려줍니다. 이데이 노부유키는 그 당시 소니 내에서 서열 10위권 밖의 위치였지만 경쟁후보 중 유일하게 글로벌한 이력과 마케팅 전문성으로 인해 오가 노리오에게 선택됩니다. 이 선택은 얼마 안돼 큰 후회를 가져오게 되지요.


그러나 이데이 노부유키에게는 하드웨어와 컨텐트를 연결하는 비전과 전략이 부재하였고 미래 비전의 부재는 조직 내의 정치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엔지니어 마인드셋과 아티스트 마인드셋은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았고 각 사업 유닛은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서로 경쟁하였습니다. 소비자가 보는 소니의 제품 전략은 [복잡하게 구성된 엔지니어의 프레젠테이션 슬라이드] 같았지요. 명확한 조직의 실패였습니다. 소니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모두 소유한 엄청난 전략적 이점을 전혀 실현해내지 못하고 하락의 슬라이드를 타기 시작합니다.


1990년대 영화 사업의 계속된 부진과 2000년 이후 미끄럼틀을 탔던 음반 업계의 수익률은 이에 부정적이었던 전통적인 엔지니어 당파에게는 좋은 꼬투리가 되었습니다. 오가 노리오와 모리타 아키오가 생각했던 음악 컨텐트와 음향기기의 결합은 끝내 성공하지 못한 채 소니의 사업전략에서 탈락합니다. 이데이 노부유키는 토미 모톨라를 소니뮤직의 권좌에서 내리고 재정적 지원을 크게 삭감합니다.


소니가 가졌던 비전의 과실은 제대로 맺히기도 전에 떨어져 버렸습니다. 이 비전의 과실을 얻게 된 것은 iPod의 Neptune으로 21세기의 첫 decade에 시장을 휘저은 Apple이었습니다.


소니와 소니뮤직의 쇠락을 한 가지 이유에 귀인 한다면 그것은 지나친 환원주의일 것입니다. 일본 경제의 긴 불황과 엔화의 강세도 있었고 음반 시장의 붕괴와 급격한 변화도 있었습니다. 미스 매치된 경영 전략도 중요한 이유입니다. 많은 요인들이 맞아 들어가며 성공이 만들어지듯이 많은 요인들이 합작해 실패와 쇠락을 불가피하게 만듭니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습니다. 해는 지고 열매는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해가 또 뜨지 말란 법도 없습니다. 단 7백만 불과 5%의 매출 로열티로 사들인 스파이더맨의 영화 판권이 소니를 먹여 살리고 있습니다. 오가 노리오와 모리타 아키오가 꿈꿨던 [소프트]가 지배하는 세상이 이미 와있습니다. 컨텐트가 하드웨어를 부흥시키는 일이 없으리란 법도 없겠습니다. 물론 다른 많은 요인의 상합이 필요하겠지요.   


*Title Image: Sony Music Headquarter in Culver City, CA


[Damn right] by Audrey Nuna (in the roster of Sony Music),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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