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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태원 Taewon Suh Sep 25. 2018

앨범이 죽다니!

팝 음악의 발매 단위에 대한 간단한 역사

이른바 LP 시대에 음악을 듣기 시작한 사람이나 최근 LP의 레트로붐에 편승하신 분은 다분히 제례적인 LP 앨범의 첫 청취 순간의 독특한 느낌을 이해하리라고 봅니다. 패널 판때기 크기의 음반을 사서 커버 디자인을 잘 확인하고 플라스틱 포장을 뜯습니다. 미국에서 제작된 이른바 원판의 경우에는, 음반을 싸고 있는 종이 속지, 즉 innter sleeve에 가사와 liner notes 혹은 album notes라고 부르는 설명이 있지요. (라이센스판은 대개 라이너 노츠가 따로 한 장 있고 속포장은 플라스틱이었습니다.) 한 손에 LP 음반을 꺼내 잡아들고 그 속지를 대충 혹은 꼼꼼히 읽습니다. 이어서 양 손으로 음반을 잡고 휘릭 돌려 양 사이드를 확인한 다음, 음반을 턴테이블에 조심스레 내려놓고 바늘을 첫 곡 전의 골이 없는 지점에 안착시키는 순간 들리는 [크륵]하는 잡음... 그것은 기대감에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소리였습니다.


대중음악에서 앨범이라는 포맷이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디지털 음악의 시대에는 싱글의 중요성이 앞섭니다. 사실 앨범이라는 포맷이 처음부터 주류였던 것은 아닙니다. 아티스트에 의한 앨범 단위의 음악의 발매는 Long Play (LP)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이 나오면서 기술적으로 가능해졌고, 이른바 Album Era는 1965년 The Beatles의 [Rubber Soul]에 의해 열렸다고 봅니다. 그 전에 LP는 주로 싱글 히트곡을 모은 컴필레이션을 의미했지요. 1966년 The Beach Boys의 [Pet Sounds]와 Frank Zappa & The Mother of Invetions의 [Freak Out!]도 앨범 단위로 음악을 듣는 행동을 보편화시켰고, 비틀스는 1966년 [Revolver]와 1967년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를 통해 그것을 하나의 정착된 유행으로 만듭니다.


이러한 추세는 더욱 강화되어 1970년대 미국 음악시장에는 Album-Oriented Rock (AOR)라는 앨범 위주의 음악 활동을 하는 아티스트들의 장르가 생겨났습니다. 급기야는 심포니급의  콘셉트 앨범을 내는 아트록 밴드도 많아집니다. 이것은 라디오 스테이션의 한 포맷이기도 했는데요,  싱글 차트와는 상관없이 앨범 트랙을 위주로 프로그래밍하는 라디오 스테이션이 꽤 많았다지요.


앨범이라는 포맷이 기술적인 이유로 가능해졌듯이 그 추세의 하락세도 기술적인 이유로 시작됩니다. 1980년대 중반에 Compact Disk(CD)라는 새로운 음반 미디어가 보급되기 시작합니다. 이 CD가 1990년대 들어서 LP와 Magnetic Tape를 밀어내고 주류 미디어가 되어 음반의 한 사이드에 담을 수 있는 시간이 약 22분대에서 72분까지 확장됩니다. 20분 정도를 한 숨으로 양 사이드로 음악을 들어오던 앨범 포맷의 팬들은 혼란에 빠지게 되지요. 음반을 처음부터 끝까지 듣는 집중력을 유지하기 어려웠고 forward & back의 조작이 하나의 버튼 조작으로 가능해지자 팬들은 곡을 스킵해가며 주로 곡 단위로 음악을 듣기 시작합니다.


앨범을 사용한 싱글 위주의 감상이 늘어나자 비의도적인 효과가 발생하게 됩니다. 싱글 레코드의 판매고가 낮아지게 된 것이지요. 이것에는 CD 앨범을 통한 자연스러운 가격 인상도 한 몫했다고 봅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라이선스 앨범 기준 약 3000원대에서 약 7, 8000원으로, 2배 이상의 가격 인상이 이루어집니다. 이 급작스런 가격 인상은 이른바 해적판이 판을 치며 길보드 현상을 일으킨 이유이기도 합니다.)


싱글의 판매고가 낮아지고 오히려 앨범 판매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현상이 나타나자 몇몇 음반사들은 싱글을 발매하지 않는 전략을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결정적인 모멘텀은 1996년 No Doubt의 [Don't Speak]이었는데요, 이 곡은 빌보드의 에어플레이 차트에서 16주간 1위를 지켰으나 Hot 100 차트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합니다. 싱글을 발매하지 않은, 앨범 컷이었기 때문이지요. 급기야 Billboard Hot 100은 1998년 airplay-only song도 차트에 올리기로 결정합니다. 싱글 음반의 종말에 대한 시그널이었습니다.


하드 미디어로서 싱글 음반은 종말을 고했지만, 음악팬들은 싱글에 더욱 초점을 두게 되는 패러독스가 생겨나게 됩니다. 이 패러독스는, 1990년대 중반 디지털 음원이 보급되기 시작하고 1990년대 말 디지털 싱글이 공식 발매되며 Recording Industry Association of America (RIAA)가 2004년 이것을 공인하게 되자, 자연스럽게 해소됩니다. 바야흐로 싱글 포맷의 디지털 음원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앞 서 밝혔듯이, 이것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 오리지널 현상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대중음악의 미디어는 싱글 포맷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창작 단위로서 앨범의 포맷은 LP로 시작되어 CD로 정점을 찍은 다음, 디지털 음원의 강세로 하락세로 접어든 것이지요. 원래 LP도 대개는 compilation 혹은 greatest hits 개념의 모음집을 위한 포맷이었습니다.  


앨범이 아직 의미를 가지는가 하는 질문은 참으로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앨범 추종자인 저도 앨범 단위로 음악을 듣는 것은 대개 20세기의 음반의 경우입니다. 21세기의 음악을 앨범 단위로 듣게 되는 것은 몇몇 선호하는 밴드의 경우로 제한됩니다. 이제 플레이리스트(playlist)가 앨범의 의미를 담당합니다. 뭐,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는 것은 어렵지요.


또한 이 변화가 객관적으로 나쁜 것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완성도에 덜 신경 쓰는 아티스트들이 몇 개의 좋은 곡에 대충 음악을 만들어 끼어넣어 앨범을 완성하는 경우가 적어졌습니다. 이른바 필러가 많이 사라졌지요. 특히 팝 계열에서 각각의 곡에 대한 완성도가 평균적으로 상승하게 되었다고 봅니다.


특히 밴드에 대한 선호가 그리 높지 않은 한국 시장에서는 위와 같은 추세가 더욱 빠르게 나타났습니다. 현재 시점에서 앨범의 콘셉트와 완성도에 신경을 쓰는 아티스트가 몇 명이나 되는지 궁금합니다.  고 신해철은 앨범 위주의 음악이 사라지게 되는 현상을 안타까워한 바 있습니다만, 안타깝다고 대세를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한국에서는 [월간 윤종신]이 역사에 기록될만합니다. 싱글 포맷에서도 아티스트의 콘셉트를 담을 수 있다는 예가 됩니다. 혁신은 변화에 저항하는 태도보다는 변화에 적응하려는 태도에서 발생합니다.
팬과의 교감과 소통을 중시하는 밴드에게 앨범은 아직 유용합니다. BTS가 한 예이겠지요. 그들은 팬들에게 그들의 스토리를 말하고 싶어합니다. 3분 짜리가 아니라 한 시간 짜리 수다를 말이지요. 


*Title Image: The Beatles, the cover image of [Rubber Soul] in 1965


[Rubber Soul]의 수록곡, [Gi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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