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심을 넘어 협력으로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by 건강한 오후

1부. 낯선 친절과 불편한 질문

은퇴 후, 자전거에 마음을 붙였다. 40대 후반에 찾아온 당뇨와 고혈압은 약만 늘렸지만, 페달을 밟으며 스쳐 가는 풍경 속에서 나는 비로소 멈춰 있던 시간의 바깥을 보았다.

어느 날, 남강변을 달리다 작은 사고를 당했다. 모퉁이에서 미처 피하지 못하고 넘어지는 순간, 욱신거리는 손목을 붙잡을 겨를도 없이 낯선 젊은이가 달려왔다. 그는 자전거를 일으켜 세우고, 내게 괜찮냐고 물으며 다친 팔을 살폈다. 그의 얼굴에는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는 순수한 걱정만이 서려 있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면서도, 나는 나도 모르게 지갑을 더듬고 있었다. 젊은이는 웃으며 손사래를 쳤지만, 그가 떠난 후에도 마음 한구석이 찝찝했다. 순수한 친절 앞에서, 왜 나는 대가를 계산했을까? 언제부터 모든 도움에 값을 매기기 시작했을까.

계산에 익숙한 25년의 회사 생활은 세상 모든 관계를 이익과 손해의 저울질로 보게 만들었다. 곤경에 처한 타인을 돕는 저 순수한 행동 이면에 숨겨진 동기가 무엇일지, 내 안의 오래된 계산기가 멈추지 않고 돌아갔다. 그 불편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다. 지역 도서관에서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빌렸다. '모든 생명은 이기적 유전자 프로그램의 결과'라는 주장에 끌려 책장을 넘겼다.

2부. 유전자의 냉철한 논리

도킨스는 단호했다. 그는 "우리는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해 프로그램된 생존 기계"라고 선언한다. 그의 논리는 설득력이 있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형제자매를 도우며, 친구와 호혜적인 관계를 맺는 이 모든 이타적 행동은 결국 '나와 유전자를 공유하는 개체를 돕는 것이 생존 확률을 높인다'는 지극히 이기적인 전략의 결과였다.

자식은 내 유전자의 절반을 가졌으니, 내가 죽어도 자식이 살면 내 유전자는 계속된다. 형제자매도 마찬가지다. 친구를 도우면, 언젠가 내가 어려울 때 도움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이렇게 보면 모든 '선한' 행동이 사실은 냉정한 계산의 결과물이다.

25년의 회사 생활이 이 논리의 완벽한 증명이었다. 상사에게 잘 보이고, 동료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모든 행위는 결국 '나의 생존'과 '나의 번영'을 위한 계산된 전략이었다. 그렇다면 나를 도운 그 젊은이의 친절은 어땠을까. 순수해 보였지만, 실은 그의 유전자가 명령한 호혜성 전략의 일부였을까. 도킨스의 논리대로라면 그렇다. 씁쓸하지만, 부정하기 어려웠다.

3부. 프로그램이 설명하지 못하는 것들

하지만 책을 덮고 남강변을 걸으며, 나는 도킨스의 논리가 설명하지 못하는 영역에 의문을 던졌다. 정말 모든 것이 이기적 계산의 결과일까.

작년 겨울 뉴스에서 본 익명의 기부자가 떠올랐다. 10년간 매년 고아원에 백만 원을 보낸 사람. 그는 누구인지 밝히지도, 감사 인사를 받지도 않았다. 이것이 어떤 유전적 이익을 가져다주는가. 낯선 타인에게 신장을 기증하는 사람들은 또 어떤가. 유전자의 관점에서 보면 완전한 손해다.

더 나아가, 얼마 전 조카와 나눈 대화가 스쳐 갔다. 기후 위기가 너무 심각해 아이에게 이런 세상을 물려줄 수 없다며 비출산을 이야기하던 조카의 단호한 눈빛. 그것은 유전자의 유일한 목적인 '번식'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배신이 아닌가. 멸종 위기 동물을 위해 불편을 감수하는 사람들. 그들의 동기는 이기적 유전자의 회로도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들은 말한다. "그것이 옳기 때문에."

다시 남강 다리 위에 섰다. 강물은 이기적 생존의 법칙을 따르듯 여전히 흘렀다. 하지만 나는 깨달았다. 인간에게는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을. 유전자가 우리의 출발점을 만들었지만, 인간은 그것을 인식하고, 질문하고, 때로는 거스를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4부. 조건을 넘어선 선택

오늘도 자전거를 타고 남강변을 달린다. 5편에서 86학번이라는 우연 속에서도 나의 선택이 유효했음을 배웠다. 6편에서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숙명 속에서도 우리의 선택이 역사를 밀고 나갔음을 깨달았다. 이제 7편에서, 나는 인간이 유전자라는 가장 근원적인 생명의 조건 속에 던져졌지만, 그 조건을 알기에 거스를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임을 확인한다.

다이어트를 위해 식욕을 억제하고, 소방관이 공포를 억누르듯, 우리는 유전자의 명령을 거부할 수 있다. 물론 그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배고프면 음식을 찾고, 위험하면 도망간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것을 '안다'는 점이다. 그리고 때로는 다른 가치를 위해 그것을 넘어설 수 있다는 점이다. 유전자는 "살아남아라, 번식하라"라고 명령하지만, 우리는 "그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다"라고 대답할 수 있다.

자전거 사고 현장에서 만났던 그 젊은이의 친절이 다시 떠오른다. 그의 행동은 유전자가 설계한 호혜성의 발현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제 믿는다. 인간은 유전자의 프로그램을 의심하고 넘어설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 것을. 도킨스 또한 희망을 남겼다. 우리는 유전자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을 가졌다고. 그날 젊은이가 내민 손은, 어쩌면 유전자의 오랜 속삭임을 넘어선 인간의 가장 위대한 대답이었을 것이다.

진주에서 왔고, 한반도에 살며, 유전자 안에 있다. 이것은 내가 선택하지 않은 조건이다. 하지만 이 조건을 어떻게 살아갈지는 여전히 나의 선택이다. 그리고 그 선택 속에서, 나는 자유롭다.

35억 년 전, 유전자는 생명의 코드를 썼다. 7만 년 전, 사피엔스는 그 코드를 질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 나는 그 코드를 넘어서는 선택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