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ype n 단상 02
아래 이미지는 지금까지 설명했던 복스 분류법의 대표 글꼴들입니다. 각 글꼴들을 보고 무슨 유형에 들어가는지 알 수 있다면 복스 분류법을 잘 이해하고 있는 분입니다. 정답은 복스 분류법과 휴머니스트-Humanist 글에 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디자이너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뛰어난 감각과 비주얼 요소로 설득할 수도 있고, 눈길을 사로잡는 퍼포먼스를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화려한 언변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감각적으로 뛰어난 디자이너가 아니기에, 어떻게 하면 클라이언트를 잘 설득할 수 있을지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초반에는 '이 중 하나는 걸리겠지' 라는 생각으로 남들보다 많은 시안을 뽑아내어 물량으로 밀어붙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맡게 된 프로젝트에서 다양한 라틴 글꼴의 유형 중, 자신들의 브랜드와 어울리는 유형을 찾아 라틴 글꼴을 먼저 만들고 그에 맞게 한글을 디자인해 달라는 클라이언트의 요청이 있었습니다. 글로벌 기업이고, 전 세계에 사용될 글꼴이었기 때문에 공통으로 사용할 라틴 글꼴의 중요성을 생각하여 이러한 제작방식을 택한 것 같았습니다.(이전까지는 전용 글꼴 제작 시, 라틴 글꼴을 처음부터 제공하는 경우 외에 한글의 이미지를 먼저 잡고 라틴을 제작하는 방법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프로젝트 진행을 위해 라틴 글꼴 유형에 대해 먼저 찾아보게 되었고, 오랜만에 '좋은 디자인을 만드는 33가지 서체 이야기(김현미 저)'와 각종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라틴 글꼴 분류법에 대해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동료들과 복스 분류법을 기준으로 다양한 라틴 글꼴 유형을 공부하고, 브랜드와 접목할 만한 유형을 몇 가지 선정하여 시안을 디자인하고 업체 피티를 진행했었습니다. 복스 분류법이 공식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분류법이기도 했고, 유형별 속성이 뚜렷했기 때문에 클라이언트의 질문에 쉽게 대답하고, 더 자세히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이전까지 시안 피티를 진행할 때 '바람의 느낌을 형상화 한 세리프의 형태를 디자인한 글꼴'이라 설명했었다면, 그때는 '펜으로 쓴 손글씨의 형태가 남아있어, 인간적인 면모가 보이는 휴머니스트 계열의 세리프 글꼴'로 시안을 설명했고, 추상적이지 않고 시안의 정확한 방향성을 이야기하여 클라이언트를 설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럴듯한 추상적인 말보다 이런 디자인이 왜 나왔는지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 상대방도 이해하기 좋다는 것을 알게 된 후 프로젝트에 사용한 자료를 바탕으로 라틴 분류법에 대한 공부와 정리를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한글 글꼴에 대해서도 자세히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전까지 비주얼 요소로만 봐 왔던 수많은 글꼴들이 어떤 이유를 담고 만들어졌는지 보이기 시작했을 때, 저같이 설득에 어려움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자료를 정리하여 공유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좋은 자료는 너무 많은데 한 곳에 정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 검색해도 통일성 있게 묶여있는 곳이 없다는 것, 분명 저처럼 정보가 필요한 분이 있을 거라 생각되어 이전의 자료들과 새로운 자료를 더하여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5월 초 따뜻했던 봄날에 정리하기 시작한 복스 분류법에 대한 이야기가 이제는 제법 쌀쌀해진 10월 가을날 마무리 짓게 되었습니다. 다음 이야기는 한글 글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