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쉰다.' 또는 '눈을 깜박인다.' 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해왔던 행동들을 의식하게 되는 경험을 한 번쯤 겪어보았을 것입니다.
저는 비슷한 경험으로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함께 하고 있던 한글을 의식하기 시작하면서 지하철 광고에 쓰인 글꼴은 어떤 글꼴인지, 사용하고 있는 휴대폰 속의 글꼴은 또 어디서 온 것인지, 일상생활에 녹아있던 글자들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한글을 쓰는 사람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한글을 잘 사용하고 있었을 뿐 잘 아는 것은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오늘부터 한글을 잘 알아가기 위해 공부했던 것들을 차근차근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바탕체 또는 명조체
한글 글꼴 이야기의 첫 번째는 바탕체 또는 명조체로 불리는 글꼴 유형입니다.
바탕체(명조체)는 세리프(serif), 즉 돌기가 있는 글꼴의 형태를 이야기합니다. 흔히 '본문용'으로 많이 사용되는 글꼴 유형으로 돋움체(고딕체) 글꼴에 비해 글자의 공간이 여유롭고, 세리프가 있어 형태적 구분이 쉽기 때문에 책이나 신문 등의 본문 속, 즉 긴 글줄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글꼴 유형입니다.
바탕체(명조체)의 형태적 특징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1. 돌기(=세리프/serif)를 가지고 있음
2. 붓글씨, 손글씨의 흔적이 남아 있음
> 세로획의 시작과 맺음의 마무리 모양, 이음 줄기의 자연스러운 굵기 변화 등
3. 글자의 외곽 모양이 다양함
> 형태적 특성으로 인해 다른 유형의 글꼴보다 크기가 작아 보임
4. 글자의 공간이 여유로워 긴 글줄로 사용하기 좋음
바탕체(명조체)를 대표하는 서체로는 sm중명조(직지소프트), 윤명조(윤디자인그룹), 정체(산돌), 본명조(어도비), 나눔명조(네이버)등이 있습니다.
바탕체(명조체)를 대표하는 글꼴들의 명칭만 보아도, 세리프가 있는 형태의 한글 글꼴은 '명조체'로 불려 왔고, 지금도 많이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바탕체라는 이름이 나왔을까요? 이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명조체가 왜 명조체로 불렸는지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해서 저도 무엇이 정답이라고 말하기 어려워 여러 책에서 이야기한 것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명조체는 중국 송나라 때 만들어진 한자의 형태가(중국에서는 송체라고 불립니다.) 명나라 때 많이 사용되어 명조체(明朝體)라 불리는데, 이 글자의 형태를 바탕으로 서구 선교사들이 종교 전파를 위해 '활자'로 만들었고, 중국은 아편 전쟁으로 문호를 개방당하면서 근대 활자의 중심이 된 명조체를 껄끄러워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이 글자체를 적극적으로 발전시켜 역수출하였고, 이때 일본에서 사용하던 일본식 명칭이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끼쳐 명조체 형태의 한자와 같이 사용되던 근대식 한글 글꼴을 명조체라 부른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이 있습니다.
후에 90년대 초, 문화부에서 한자 명조체와 형태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관련이 없는 한글 글자 형태를 순화하여 이름을 바탕체로 정했다고 합니다.(발표 시기에 대해서 책에서는 92년으로, 일부 신문기사에서는 93년으로 표기되어 있어 90년대 초로 표기했습니다.)
한글 글꼴에 대해서는 할 이야기가 너무 많고, 저도 배운 것을 다시 공부하며 글을 정리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 포스팅에 어느 정도의 이야기를 담을지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고민 끝에 처음 글을 쓰고자 했던 취지대로 폰트에 관심 있는 누구나 편하게 글을 볼 수 있도록, 최대한 쉽게 큰 범위에서 시작하여 아주 작고 자세한 이야기까지 나누어 설명하려 합니다. 라틴 글꼴 이야기처럼 긴 이야기가 되겠지만,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이야기를 정리해 나가 보겠습니다.
참고
한글의 글자표현(미진사/김진평),
타이포그래피 사전(안그라픽스/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
활자흔적(물고기/이용제, 박지훈)
인용 문구 - [Walter Whitman - O Me! O Life!]
다음 이야기는 한글 글꼴 이야기 -돋움체 또는 고딕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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