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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유미 Mar 18. 2019

멍청한 하루, 막아야 할까?


회사를 다니지 않으면, 멍을 때립니다.


회사를 다니지 않으면 가장 먼저 생기는 변화는 월요병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월요병이 사라지는 것으로 시작되어 시간 개념이 없어지고, 어느새 현실감각이 슬슬 없어지기 시작한다. 이 현실감각이라는 단어에는 우리 일상을 둘러싼 물질적인 지표는 물론 주위 상황에 대해 날을 세우는 것까지 포함되어 있다. 긴장을 유지하지 않고 살짝 풀어진 상태로 살더라도 폐 끼칠 상황이 없으니 자연스레 멍 때리는 시간이 많아진다. 사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있는 그런 멍청한 상태를 사랑하다 못해 아주 동경할 정도인데, 그러다 보니 긴장을 풀고 살아도 남에게 피해를 줄 일은 없는 지금과 같은 상태에서는 자연스레 멍 때리기가 고정값이 되곤 한다. 이 멍 때리는 상태는 대개 축적되어있다가 글을 쓸 때 마치 에너지원처럼 추진력으로 변모한다. 멍청한 상태로 넋을 놓고 있는 그런 비효율적인 시간이 적어도 글을 쓰는 일에서 만큼은 나를 돕는다. 


멍해지면 멍청한 하루를 보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시간은 실생활에서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지하철을 반대 방향으로 타거나, 그래서 다시 반대로 탔는데 이번엔 한 정거장 더 가거나, 잔뜩 기대하고 찾아간 어떤 곳이 휴관일이거나, 휴식시간이거나, 혹은 자동 결제일 전에 취소를 안 해서 구독료가 자동으로 빠져나가거나 하는 소소하지만 반복되면 자괴감이 드는 그런 실수들이 꼭 생긴다. 오늘도 며칠 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들을 꼭 읽으려고 서울에 오자마자 도서관에 그 책들이 있는지부터 검색했다. 이때 도서관 휴관일이 언제인지도 검색했어야 했는데. 읽고 싶던 책들이 모두 대출 가능 상태라는 것에만 흥분하여 당장 도서관으로 달려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머릿속에는 온통 그 대출 가능이 대출 중으로 바뀌기 전에 얼른 가서 책을 낚아채야 한다는 목표만 있었다. 그렇게 조금은 피곤해진 몸을 이끌고 간 도서관은 굳게 닫혀있었다. 월요일은 휴관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도서관 앞에서 허탈해하며 또 무조건적인 목적 지향주의가 어떤 멍청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깨닫는다.



그래도 팬케이크와 글이 남는다


애초에 책들을 빌리겠다는 생각에만 잔뜩 빠져있지 않았어도 인천에서 서울까지 오느라 지친 몸을 이끌고 바로 다시 도서관으로 달려가서 체력을 떨어뜨리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을 텐데. 그런데 또 그 멍청한 짓을 했기 때문에 잔뜩 당이 떨어져서 돌아오는 길에 집 앞 카페에서 팬케이크를 먹고 기분이 좋아졌다. 기분이 좋아지면 글이 잘 써진다. 단순하다고? 다행히 글과 나 사이에는 이렇게나 단순한 법칙이 아직까지는 통한다. 맛있는 걸 배부르게 먹으면 글이 쓰고 싶다. 그러니 오늘 멍청한 하루를 보낸 보람이 있다. 이 글을 올리고 또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을 더 쓰러 갈 기운이 있으니. 이 정도면 멍청한 하루를, 멍청한 짓을 어떻게든 필사적으로 막아야 할 필요성은 없는 것 같은데. 일단 서울도서관 휴관일이 월요일이라는 건 잊지 말야지. 나오자마자 십여 분만에 먹어치운 팬케이크는 천상의 맛, 미미 그 자체다. 팬케이크가 맛있으니 남는 게 있다. 멍청한 하루를 막는 건 일단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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