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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유미 Oct 13. 2019

아껴두면 똥 되는 거예요

글쓰기에 '다음'을 기약하기 어려운 이유

회사생활을 하면서 들인 좋은 습관 중 하나는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일단 폴더를 만들고 틈틈이 파일을 정리하는 것이다. 어느 회사나 다 그렇겠지만 특히 동시 다발적으로 여러 업무를 처리해야 할 상황이 많았기 때문에 파일을 받자마자 제대로 된 위치에 넣어두지 않으면 사나흘만 지나도 뒤죽박죽 엉켜서 아무것도 찾지 못하는 카오스 상태를 겪곤 했다. (그렇게 겪고도 바빠지면 제때 정리를 안 해서 나중에 후회도 많이 했었지...) 일이 없고 한가한 때에는 아예 폴더 정리만 했던 날도 있었는데, 그런 날이면 내가 했던 일이지만 한 발 떨어져서 생각해보는 ‘낯설게 보기’를 했다. 당장 처리해야 할 것들을 쳐내느라 급급하던 시간이 지나가고 “아, 이건 다음에는 이렇게 해도 좋겠다.”라고 생각을 하는 시간을 갖거나 일을 진행하다가 중간에 취소되거나 내, 외부적인 피드백을 받아 버려진 시안과 아이디어는 “이건 아깝다. 다음에 써먹고 싶다.”라는 생각도 꽤 많이 했는데, 이상한 건 그런 성찰이 정작 실제로 다음번 기회에 적용된 적은 거의, 단 한 번도 없다는 점이다. 


막상 바빠지면 그런 다짐은 까맣게 잊은 채 일전에 했던 결과물을 거의 그대로 답습하는 데에서 출발했다. 그건 여태껏 계속 해오던 방식이 가장 안전하기 때문이었다. 여러 사람을 설득하며 새로운 시도를 할 정도로 주인의식이 생기는 일이 아니었고, 무엇보다 그다지 중요하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중요하다, 아니다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 안의 중요도는 당시 보상에 비례했다. 그러므로 연초 계약한 연봉을 정직하게 13으로 나누어 받았던 직장인이 프로젝트 하나하나마다 매번 중요하다 생각하기는 어렵다는 게 항변이라면 항변!)


조직이 없어진 뒤 느낀 가장 큰 변화는 일 하나하나가 다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건당 얼마를 받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기회와 입지의 문제다. 한번 잘하면 다음이 오지만, 한번 삐끗하면 다음을 기대하기 힘들다. 매번 결과물로 증명해 보이지 않으면 미래를 도모하기 어렵다. 당장 이번 달, 몇 개월 후 프리랜서로서 입지가 흔들린다. 기본적으로 이런 위기의식에는 프리랜서나 외주를 써서 많은 일을 해결하던 업계에 몸 담고 있을 때의 경험이 깔려있다. 나만해도 당장 여러 실장님, 부장님, 작가님, 감독님을 찾을 때면 기준은 오로지 직전 프로젝트에서 얼마나 피드백을 빠르고 정확하게 이해해서 좋은 결과물이 나왔는가 하는 ‘능력’이 첫 번째 기준이었으므로. (물론 단가나 오랜 관계도 무시하지 못하지만.)


등단 작가들도 자신의 글을 실을 수 있는 매체를 찾지 못해 반강제적으로 활동 중단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소리를 들은 적 있다. 최근 독립출판은 물론 SNS로 작가가 직접 온라인 구독 서비스를 운영해서 스스로 매체를 만들어 글에 값을 매겨 파는 움직임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도 기회를 기다리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니 돌파구를 찾으려는 움직임이라 할 수 있겠다. 누구나 소비자이자 창작자가 될 수 있다는 건 개인적으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리 좋아서 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어쨌거나 원고도 쓰고 편집 디자인도 하고, 심지어 인쇄비를 내고 홍보, 마케팅은 물론 유통까지 혼자 다 하는 일에는 그만큼 피로가 따른다. 피로함을 무릅쓰고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야 할 정도로 내 글을 보여주기가 힘든데, 외부에서 제안이 와서 진행하게 된 단행본 작업이 얼마나 중요한 기회인지는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건 마치 회사에서 예산을 주고 너 이번에 이 사업 성공 못 시키면 아웃이야, 라는 은근한 협박을 받는 것 같달까. 


본격적으로 글을 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만 해도 감히 그런 생각을 했었다. 이 에피소드는 여기에 쓰기엔 좀 아까운데? 아껴두자. 이런 생각이 얼마나 한가한 여유였는지 초고를 완성한 뒤 시간이 지나서 ‘낯설게 보기’ 모드로 글을 검토하면 금방 깨닫는다. 작업 기간에 보고, 읽고, 듣고, 관찰하고, 생각한 모든 것을 쏟아내지 않으면 하품이 나올 정도로 지루하고 평면적인 캐릭터가 똑같은 이야기 근처만 맴돈다. 내 안에 있는 가장 좋은 것을 다 털어 넣어야 조금씩 캐릭터도 생생하게 변하고, 이야기에도 생기가 돈다. 최근 탈고를 끝낸 두 번째 책을 여러 번 수정하며 이런 사실을 깨달은 뒤에야 예전에 회사에서 “나중에 이렇게 해야지.” 백날 말해봐야 딱히 그렇게 되지는 않았던 것처럼 글쓰기에도 ‘나중에’라는 말은 유효하지 않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필요할 때 간단히 펼쳐보면 알 수 있는 오답노트란 글쓰기에는 없고, 사실은 작업 기간 동안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둘러싼 내 모든 경험이나 기억을 다 때려 넣어야 해결이 되는 영역이 바로 캐릭터, 플롯, 에피소드 같이 이야기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아닐까.


잘 풀리지 않던 장편소설 작업에 쓰려고 아껴두고 아껴두던 소재는 어쩌다 보니 단편집의 이야기를 뜯어고치면서 그쪽에 다 갈아 넣었다. 다 때려 넣어서 두 번째 단편집은 썼으니 어쨌든 다행인 걸까? 아니면 다 때려 넣는 바람에 첫 번째 장편소설은 또 정체불명의 무생물체가 되어 내가 이름을 불러주기를 기다리고 있으니 큰일인 걸까? 변영주 감독의 책에서 이런 문장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창작자가 하는 일은 호수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기다리는 것이라고. 그러니까 이 말을 정확히 내 상황에 적용하자면 이제 호수에서 낚은 물고기를 다 단편집에 쏟아버린 바람에 다시 낚싯대를 드리우고 조용히 기다려야 하는 때인데, 급한 성격 때문에 기다리는 기간이 물고기를 낚아 올린 뒤 요리하는 기간보다 훨씬 더 힘들 것 같아 어떻게 기다려야 할지 고민 중이다. 그런데 생각이 나지 않는 데에는 답도 없으니까. 오늘도 낚싯대를 호수에 넣고 기다립니다. 무언가 낚이기 전까지 또 아무 일도 하기 힘들 것 같아요. (제너럴리스트의 시대에 이렇게 멀티가 안 되어서야, 원.)


+위 언급한 변영주 감독의 책 제목은 <영화로 더 나은 삶을 꿈꾸다>입니다.

+커버이미지 출처는 https://iisd.org/ela/blog/commentary/lakes-stratify-turn-explain-science-behind-phenomena/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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