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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유미 Oct 21. 2019

'멀티'란 무엇인가

여러 개의 일을 굴리는 기술에 대한 고찰

최근 직장인들 사이에서 낮에는 회사 일을 하고 퇴근 후와 주말에 틈틈이 시간을 내서 따로 프로젝트를 하는 ‘사이드 프로젝트’가 유행인 것 같다. (사실 내 주위만 본다면 유행을 넘어, 하지 않으면 뒤쳐진다는 위기의식을 느낄 정도로 ‘투잡’은 이미 트렌드가 되었다.) 매달 고정급여를 받는 직장인도 일을 늘려서 투잡, 쓰리잡을 뛰는 세상에 하물며 프리랜서는 어떨까. 


아마 창작 노동을 하는 프리랜서가 일정 기간 동안 단 하나의 창작물을 생산하는 데에 집중해도 먹고사는 데에 문제가 없을 정도가 되려면 소위 ‘대박’이 나도 제대로 나야 가능하지 않을까. (책으로 치자면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의 반열에 오른 콘텐츠는 있어야 생계 걱정을 덜고 한 번에 한 가지의 일만 할 수 있겠지?) 그러니까 절대다수의 창작자들은 창작하는 일을 하면서도 생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항시 여러 개의 일을 손에 쥐고 저글링을 하듯 굴린다. 그러니까 오히려 지속 가능한 창작을 하기 위해 생계만큼은 걱정할 일이 없도록 안정적인 직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분야마다 다르겠지만 창작자들은 확실히 먹고살려고 하는 ‘생업’과 내 것을 만들어내기 위한 ‘작업’을 구분 짓는 편이다. 동시에 여러 개의 창작을 해서 생계를 해결하더라도 확실히 중심이 되는 ‘내 작업’이 있고 부수적인 프로젝트를 굴리는 편인데, 이렇게 동시에 여러 개를 하지 않고 생업에만 집중하는 기간, 오로지 작업만 하는 기간으로 분리를 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방식을 취할지는 개인의 선택인데, 사실 그것도 정말 선택이라기보다는 여러 기회가 몰리는 기간에는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여러 개의 일을 받아서 ‘멀티’를 하는 건 분야를 막론한 프리랜서들의 숙명이지 않을까.


나 역시 일이 들어올 때 꼬박꼬박 YES를 외치고 한 푼 두 푼 모으는 것 외에는 뾰족한 답을 찾지 못한 초보 프리랜서이다 보니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다면 다가오는 모든 기회를 마다하지 않고 흔쾌히 “넵”을 외쳤고, 정신을 차려보니 동시에 몇 가지의 창작을 해야만 하는 ‘지옥의 저글링’에 뛰어들게 되는데……(끝났다 생각하면 시작이고 헛손질을 하는 순간 손에 쥔 공이 와장창 떨어질 것 같으니 그만둘 수도 없는 지옥의 저글링!) 다행히 아직까지 큰 사건사고(?) 없이 마감을 쳐내며 현재까지 나름대로 발견한 멀티플레이의 기술을 기록해두려 한다.


무엇을 안 할 것인지 빠르게 정하기. 수면, 가사노동, 음식 섭취, 운동과 같은 모든 일상적인 행위를 포괄해서 시간이 투입되는 일 중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것과 가장 먼저 포기할 수 있는 것을 정하고 포기할 건 빠르게 포기한다. (생각보다 의식주를 해결하는 데에 들어가는 노동력과 시간이 상당하다구요!!) 프로젝트 간의 우선순위 정하기. 내가 투입할 시간을 인위적이더라도 숫자로 구체적으로 설정하면 대충 그 비슷하게라도 지키는 데에 도움이 되는 편이다. 예컨대 단행본 작업에 투입하는 시간은 매일 최소 4시간은 지키기, 청탁 원고는 아이디어 정리가 끝나면 초고 작성까지 하루 넘기지 않기 등등. 마감일은 무조건 서로 엇나가게, 하나를 해결한 뒤 다음 징검다리로 뛰어갈 수 있을 정도로 틈을 둔 채 일정을 잡는다. 단 너무 심하게 띄엄띄엄 잡으면 그것 또한 별로 좋지는 않았다.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정리하는 기획 단계는 사실 하루 이틀 정도 고민해봤는데 “좋다!”는 직감이 오지 않으면 미련을 버리고 새 것을 생각하는 편이 낫다. 그러니 생각할 기간이 너무 많으면 오히려 처음 생각이 옅어지고 그냥 하지 말까, 아닌 것 같아, 라고 망설이다 일이 흐지부지 끝난다.


쓰다 보니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일 벌이기 전에 생각하는 게 아닐까 싶다. “넵”하기 전에, 기준에 맞는 일인지 한번 더 생각할 것. 눈 뒤집어져서 좋다고 이것저것 다 잡으려는 순간 지옥의 저글링에 뛰어들게 되니까. 다 큰 성인의 책임감은 생각보다 단단해서 어쨌든 타인과 약속을 하게 되면 어떻게든 지켜야 한다는 압박을 받게 되고, 그러다 보면 처음의 가벼운 마음은 정말 가벼운 깃털처럼 훨훨 날아가버린 채 울면서 뒷 일을 수습하는 자기 자신을 만날지도 모른다. ‘번아웃’이라는 최악의 상태로 나를 몰아넣지 않기 위해 틈을 만들어 두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쩌면 저글링을 시작하지 않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일 수도 있겠지만 프리랜서의 생존을 위해 멀티는 어쩔 수가 없는 일인 것을.


요즘에는 나름대로 틈을 만들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 때면 그 마음을 외면하지 않고 단 30분이라도 바깥에 나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걷거나, 침대 위에서 뒹굴대기. 그리고 시작하기는 싫은데 어차피 꼭 해야 하는 일이라면 앉은자리에서 딱 40분만 해보기. 40분 동안 실마리가 보이면 점점 시간을 늘려 흐름을 이어 작업하기. 만약 앉아서 두 시간 이상 진도가 나가지 않는 날에는 과감하게 접고 다른 일상적인 일에 몰두해보기. 이런 식으로 틈을 만들어두고 고삐를 쥐었다 풀었다 나름대로 조절을 해보려고 하는데 아직은 ‘나 조련하기’도 초보여서 쉽지는 않다. 어쨌든 멀티를 시작한 이상 어쩔 수는 없겠지. 애초에 안전한 저글링이란 불가능하다. 어느 한 개의 공도 떨어트리고 싶지 않다면 그저 저글링을 시작하지 않고 손에 쥔 단 하나의 공을 잘 쥐고 있는 편이 낫겠다. 안전한 저글링이라는 말만큼이나 ‘완벽한 멀티’라는 말은 말이 안 되는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럼에도 어떻게든 지금은 공을 쥐고 굴리는 중이네요. 아, 이렇게 또 한 주가 왔는데 이번 주에는 또 어떻게 시간을 굴려야 할까. 초보 딱지 뗄 때까지는 "멀티란 무엇인가"를 계속 고민할 것 같아요. :)


*제목은 김영민 작가님의 칼럼 '추석이란 무엇인가'에서 따왔습니다.

*이미지는 https://doist.com/blog/9-ways-to-create-more-time/ 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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