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두 글자 사전”의 프롤로그 by 딸
나는 미국에서 중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인이 되었다. 엄마 아빠는 계속 한국에 있었으니 떨어져 산 지 벌써 이십 년이 다 되어 간다. 그 사이 우리가 연락하는 방법은 국제 전화에서 스카이프로, 스카이프에서 페이스톡으로 바뀌었다.
무료로 영상 통화를 할 수 있게 되면서 엄마와 나는 자주, 오래 떠들었다. 거의 매일 통화하는데도 이야깃거리가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자러 가야 하거나, 엄마가 나가봐야 할 때가 되어야 통화가 끝났다. 아빠는 왜인지 우리 이야기에 잘 끼지 않았다. 쉬는 날에나 겨우 보는데도 “영현이 안녕~”과 같은 인사 정도만 하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작년 말 한국에 갔을 때 엄마를 따라 청강대학교 도서관에 간 적이 있다. 만화 도서관이 있다고 해서 구경 간 건데 공사 중이라고 했다. 아쉬운 김에 일반 도서관이라도 둘러보기로 했다. 눈높이에 있는 책을 쭉 훑어보면서 책장 사이를 걷다 ‘한 글자 사전’이라는 제목에서 발길이 멈췄다. 사전 중에 한 글자만 추린 책인 것 같았다. 내 생각이 맞는지 궁금해서 책을 꺼냈다.
휘리릭 페이지를 넘겨 보니 한 글자만 있고, 가나다 순으로 정렬되어 있는 게 내가 생각했던 거랑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몇몇 페이지를 읽어 보니 사전적 정의보다는 작가의 경험과 생각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설마 똥도 있는 거 아니야? 똥도 한 글자잖아’ 하면서 ㄷ 챕터로 갔다. 똥이 있었다.
장난스럽게 찾은 것뿐이었는데 진짜 있어서, 그리고 그 내용이 심오해서 반성의 마음까지 들었다. 나는 무슨 일이 생기면 꼭 누구한테 털어놔야 했는데, 그게 마치 배설하는 행위라고 콕 찝어 말하는 것 같아서 뜨끔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엄마한테 똥 이야기를 했다. 얼마나 인상적이었는지 잠깐 본 건데도 줄줄 외웠다.
미국으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서 매일 글쓰기 챌린지를 시작했다. 지속 가능한 취미 생활을 만들어봐야겠단 생각이었다. 글을 쓰다 보니 생각이 정리되고, 말수가 많이 줄었다는 걸 알게 됐다. 내가 배설하듯 말하는 습관을 가졌다는 것, 글쓰기가 도움이 되었다는 글을 쓰고 싶었다. 말하기와 배설을 연결 지어 준, 나에게 큰 깨우침을 준 글의 원문이 필요했다.
안에 갖고 있기도 싫고 밖에 두고 보기도 싫지만 내보내는 순간 쾌락이 있다는 의미에서, 우리가 쓰는 말과 닮았다.
<한 글자 사전(김소연 지음, 마음산책 펴냄, 2018)> 중 '똥'에서
주말 아침, 나는 스마트폰 화면에 담겨 크리넥스 통에 기대진 채로 엄마 아빠가 아침 식사하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아빠 손에 <한 글자 사전(김소연 지음, 마음산책 펴냄, 2018)>이 들려 있었다. 엄마가 '똥' 사진 찍으려고 책을 빌려 왔다고 한다. 우리 집 소파 팔걸이에 방치되어 있었던 걸 아빠가 보기 시작한 것이다. 아빠는 감명 깊게 읽은 단어들을 소리 내어 읽어주었다. 그 뒤로 거의 한 달 동안 <한 글자 사전>은 우리에게 놀잇거리가 되었다.
‘갑’ 있어? ‘혼’은? 하면서 내가 아는 한 글자를 외치면 아빠는 책에서 찾아 읽어줬다. 우리가 찾는 단어가 있으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다음은 아빠가 뜻을 읽어주고 내가 단어를 맞히는 수수께끼를 했다. 아빠가 안 되는 발음이 많다는 것, 내가 생각보다는 똑똑하다는 걸 알았다.
한동안 놀고 나니까 아빠가 "이거 우리 버전으로 만들어 보는 것도 좋겠다~"라고 했다. 그리고 실제로 핸드폰 메모장에 뭘 쓰기 시작했다. 내가 만든 워드 파일에 아빠가 나름의 엄격한 수정 작업을 거친 단어들을 더했다. 이렇게 우리의 "한두 글자 사전"은 시작됐다.
"한두 글자 사전"을 책으로 만들어 보기로 마음먹고 주말마다 편집 회의를 가졌다. 엄마의 평생소원이던 가족 북클럽이 탄생한 것이다. 아빠는 이제 페이스톡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똥 덕분에 우리 가족이 똘똘 뭉쳤다.
"한두 글자 사전"의 서문 엄마 편이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