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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니찌니 May 19. 2020

불러도 대답 없는 너

호명 반응과 눈 맞춤의 중요성


"통통아, 진통통, 정한, 진정한"



우리는 아이를 다양한 이름으로 불렀다 어쩌면 그것이 아이한테 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이름이 아니라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렸으니 자기도 헷갈릴만하다 싶었다.

거기다 미국 생활까지 더해지면서 영어 이름까지 불러댔으니 얼마나 정신이 없었을까 싶다.


통통이는 태명이었다. 신통방통하게 우리에게 와줘서 신통방통 통통이였다.


그리고 아이의 이름은 남편의 성인 '진', 나의 성인 '정'

 진과 정의 하나뿐이 아이. 진정한.

 

정한 이의 미국식 이름은 제레미. 아주 가끔 제레미라고 부르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쳐다보던 아이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18개월 정기 check-up(영유아 검진)을 가서야 아이의 호명 반응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의 주치의 선생님께서 아이가 불러도 대답하지 않는다며 일단 청각 검사를 의뢰해주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아이를 쳐다보는데  정말 아이는 의사 선생님이 하는 말엔 아무 관심이 없었다.

그냥 진료실에 놓여있는 장난감과 신기한 물건들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집에서 불러도 반응이 없는 경우가 있기는 했는데,

뭔가 열심히 놀 때 나는 아이가 집중력이 높아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지

우리가 부르는 소리에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지도 못했다.

엄밀히 말하면 몰랐다.

그리고 호명에 반응하지 않으니 상대방을 쳐다보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딸기밭에 주저앉아 불러도 대답 없던 18개월 아들


나는 집중력이 좋은 편이라 뭔가 하나에 빠지면 옆에서 난리가 나도 모른다.

차가 다니는 길가의 소란스러운, 가게에 딸린 단칸방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지만,

공부하는데 별 문제가 없었다.

집중하면 들리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내 아이도 집중력이 좋은가보다 했지 호명에 반응하지 않는다는 걸 생각도 못했다.

그리고 18개월 이전에는 아이는 특이사항이 없이 그냥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평범하게 크고 있었고,

남자 아이라 말이 조금 느린가 보다,

집에서는 한국어, 밖에서는 영어가 들리니 다른 교포 아이들처럼 말이 조금 늦는 건가 보다 했다.

하지만 그 호명 반응이 이렇게나 중요하고 큰 문제였다니...

사실 아기였을 때는 옹알이도 잘하고 통통아 하고 부르면 뭐라 웅얼웅얼 소리도 내고

할머니가 퇴근해서 오면 자기 안아달라고 특유의 소리를 막 내기도 했다.

당연히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눈을 맞추고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 아이는 대답도, 반응도, 눈 맞춤도 점점 잃어가고 있었다.




영구 귀국하던 비행기 안에서. 이륙 직후.


참, 힘들었었다. 그런 상황이.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아이는 얼마나 갑갑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호명 반응이 안 되는 건 언어를 소리로 인지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말이 의미 있는 소리로 전달이 안되기 때문에

불러도 반응도 없고 눈을 맞추기도 힘들었다.

미국이라는 곳에 와서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완벽한  대화가 되지 못해 답답한 나의 마음이

딱 아이의 마음일 거라 생각하니

말로 표현을 못해, 짜증내고 드러눕고 하는 아이가 안쓰러워졌다.

 그리고는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카운티 복지 담당에게 연락을 해서 미팅을 잡고

테라피스트를 배정받았다.

미국은 행정 절차가 아주 여유로워서 미팅하는데 한 달, 배정받는데 또 한 달,

방문해서 면담하는데 또 한 달이 걸렸다.  

인터넷으로 관련 자료를 모으고 아이에게 지금 이 시기에 개입이 중요하다는 것을 판단하게 되었고,

남편과 나는 미국의 생활이 나은지 한국의 생활이 나은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미국에 올 때는 사실 그냥 여기서 살자라는 마음으로 왔는데

아이를 위해서는 귀국하는 것이 최선임을 결정하고

우리는 아이가 24개월, 두 돌이 되는 그 달에 서둘러 입국했다.

그리고 바로 특수 센터를 다니며 아이의 치료를 시작했고

65개월 7살인 아이는 여전히 자폐 성향은 가지고 있고 자발어는 하고 있지 않지만,

다정하게 이름을 부르면 달려와 엄마의 반응을 살피고 눈을 맞추며 뽀뽀를 하는 애교쟁이로 크고 있다.



호명 반응은 10번 정도 불렀을 때 한 두 번 밖에 돌아보지 않고 눈을 잘 마주 치치 않고

그 소리에 반응하지 않으면 호명 반응에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작은 아이는 돌 무렵 자기를 부르는 소리에 반응을 즉각적으로 해주었고

24개월이 되었을 때에는 누구야 하고 불렀을 때 바로 대답하거나 반응을 보이지 않더라도

자기의 일이 다 끝나고 나면 꼭 나에게 와서 뭔가 반응을 살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옹알이의 횟수, 강도가 달랐던 것 같다.

단순히 여자 아기 남자 아기의 차이로만 보기에는 확연히 다른 언어의 발화가 있었던 것이다.


아마 아이가 둘째였다면 우리도 조금은 더 일찍 알았을 텐데

우리도 부모가 처음이라 잘 몰랐다.

그래서인가 나도 모르게 아기들을 만나면 호명 반응과 눈맞춤을

조금 더 유심히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아이를 키우는데 제일 중요한 것은

아이를 늘 관찰하고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냥 낳으면 알아서 크는 줄 알았다.

 하지만 세상에 태어나 아이에게 부모가 해야 할 일은 아주 고차원적인 것이었다.

그만큼 부모가 되는 것은 위대한 일이고 지금 우리는 그것을 하고 있다.

가끔은 실수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것은

아주 복잡하면서도 단순해야 하고,

세세하면서도 두루뭉술해야 하고,

아주 무던하면서도 가끔은 유난스러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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