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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이킴 Mar 23. 2020

미국 통신 서비스

비싼데 잘 안 터지기까지

미국에 비해 대한민국의 통신 서비스가 훨씬 좋습니다. 흔히 말하는 IT 강국이라는 말이 외국 나와서 살다 보니 더욱 실감이 납니다. 무엇보다도 가격이 저렴하고, 넓지 않은 나라에 여러 통신회사가 경쟁을 하다 보니 상품의 종류도 다양합니다. 물론 한반도의 크기가 미국에 비해 훨씬 작으니, 통신 인프라를 구축하는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게 들겠지요. 그래서 건물 지하에서 지하철 혹은 도서 산간 지방까지 전화가 터지지 않는 지역이 거의 없고 속도도 매우 빠릅니다.


미국에 이민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가족들과 라스베이거스 여행을 가는 길에 매우 황량한 사막지역을 지나게 된 적이 있습니다. 근데 그 사막 지역을 지나는 동안 거의 내내 휴대폰의 신호가 잡히질 않더군요. 안 그래도 걱정이 팔자인 우리 집사람은 무섭다고 호들갑이 대단했습니다. 저도 괜찮다고는 했지만, 속으로는 은근히 걱정을 하긴 했고요. 이런 곳에서 차라도 고장 나거나 휘발유라도 떨어지면 큰일이겠다는 생각이 들긴 하더군요.


라스베이거스 가는 길의 사막에서 그런 것은, 낯설고 무섭기는 해도 이해는 갑니다. 구글 맵을 켜고 내비게이션을 시작하면, 운전하는 구간에 통신 장애지역이 있으니 오프라인 맵을 미리 다운로드 받으라고 친절하게 알려줍니다. 충분히 예상 가능한 상황이니, 물도 넉넉히 준비하고 차에 기름도 빵빵하게 채워 넣고 사막 지역을 통과했습니다. 하지만, 샌디에이고에서 그것도 집에서 그런 일을 가끔 겪으면 황당합니다.


지금은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모두들 집에서 근무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집니다만, 저는 원래도 재택근무를 자주 했습니다. 워낙 소프트웨어 비즈니스를 하다 보니 물건이 왔다 갔다 하는 일이 없고, 회사의 문화도 실리콘 밸리의 터줏대감답게 좀 자유분방한 면이 있기도 하고요. 게다가 제가 원래 하던 일이 글로벌 팀을 관리하던 것이니, 아시아와 유럽 쪽 사람들하고 일을 하려면,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근무시간이라고 할 것이 따로 없을 정도로 늘 전화로 회의를 하면서 지냅니다. 사무실에 일찍 가거나 늦게 남아서 회의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집에서 일을 할 때도 많았습니다.


집집마다 사정이 좀 다르긴 하겠습니다만, 저희 집은 그래도 꽤 사람들이 밀집한 주택가인데도 불구하고 가끔 휴대폰 신호가 안 잡힐 때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랑 통화하는 상대방이 잘 안 들린다고 할 때가 있거든요. 처음에 이민 와서 한국 마트에 갔다가, 그 마트 안에 있던 한국인이 하는 통신 가게가 버라이존이었습니다. 오자마자 휴대폰은 개통해야겠고, 아직 면허증/사회보장 번호 이런 것도 다 안 나와서 헤멜 때이니 당연히 한국분에게 개통을 맡길 수밖에 없었죠.


이렇게 해서 자연스럽게 버라이존을 개통했는데 가끔 휴대폰이 잘 안 터지는 것을 겪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버라이즌이 미국에서 가장 큰 CDMA 이동 통신 사업자이니, 우리나라로 따지면 LG 유플러스 같은 회사이고, 혹시 그것 때문에 잘 안 터지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죠. 아는 게 병이라고, 어설프게 기술을 알고, 자기가 보고 겪은 상황에 비추어 낯선 미국에서의 상황을 해석한 거죠. 미국 통신 시장의 신흥 강자인 버라이존은 LG 같은 통신사이고 전통의 AT&T는 SK나 KT 같은 통신사라고 지레짐작을 한 겁니다. 하지만 주변에 물어보고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까 그래도 버라이존이 커버리지도 좋고 속도도 가장 잘 나온다고 하더군요.


이건 제가 최근에 회사를 옮기면서 요새 직접 느끼고 있는 점이기도 합니다. 새로 옮긴 회사에서는 통신사를 선택하거나 휴대폰을 선택할 옵션을 주지 않더군요. 첫날 출근하니까 책상에 이미 AT&T로 개통된 아이폰 케이스가 떡하니 있어서 허걱 하고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생전 처음 써보는 아이폰도 낯설지만, 그 전에는 우리 가족 전부, 그리고 회사에서 제공된 휴대폰 모두 버라이존이라서 AT&T 서비스를 써 볼 일이 없었는데, 체감상 확실히 잘 안 터집니다. 집 거실에서 한국 식당에 저녁 예약하려고 전화를 했는데 그쪽에서 하도 잘 안 들린다고 해서 결국 바깥에 나가서 통화를 한 적도 있습니다.


회사 전화야 제가 돈을 내지 않습니다만, 집사람과 우리 아들 녀석 통신비는 항상 우리가 내 왔죠. 게다가 이번에 회사를 옮기면서 저도 휴대폰 번호가 하나 더 생기게 돼서 (https://brunch.co.kr/@tystory/18) 미국의 휴대폰 비용만 세 회선에 대해서 매달 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집사람과 아들 녀석 합해서 월 4GB짜리 플랜을 선택했는데 아들 넘이 워낙 데이터를 빨리 써대서 결국은 무제한 데이터 가운데 가장 저렴한 플랜으로 갈아탔지요. 


집사람과 아들 통신 비용만 140불 정도 나오는데, 한국 돈으로 15만 원이 넘는 거죠. 거기에, 제가 회사 옮기면서 받은 제 개인 미국 휴대폰 번호는 AT&T 라인이라서 그것도 90불 좀 안되게 들어갑니다. 한 달에 휴대폰 통신비만 25만 원 정도씩 내고 있는 셈이죠. 미국이 땅덩어리가 커서 그럴 거라고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한국에 비해서 과하게 비싸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네요. 서비스가 빵빵하게 잘 터지지도 않으니 더 비싸게 느껴지죠. 휴대폰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인터넷은 스펙트럼이라는 회사의 서비스를 쓰는데, 이것도 한국과 좀 다릅니다. 한국은 왜 장기간 충성 고객이면 뭐라도 혜택을 더 줄려고 하잖아요? 미국 이민 와서, 인터넷 서비스 처음 할 때 한국에서는 언제 들었는지 기억도 잘 안나는 ADSL 서비스랑 케이블 이거 딱 두 개의 옵션이더군요. 그래서 그나마 속도가 빠른 케이블 인터넷 서비스를 스펙트럼을 통해서 들었는데, 12개월 약정으로 사십몇 불인가 냈습니다. 5만 원 정도 하는 거죠. 역시 비싸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러려니 했습니다. 근데 12개월이 지나니까 바로 육십몇 불로 월 서비스료를 올리더군요. 일 년 만에 2만 원 가까이 월 사용료를 올린 겁니다.


그때 어이가 없어서 다른 곳을 찾아보려고 검색을 해 봤는데, 우리 집에 서비스가 가능한 인터넷 회사가 느린 ADSL 말고는 대안이 없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3년 이상 쓰고 있었습니다. 근데 얼마 전부터 스펙트럼에서 자꾸 프로모션 메일이 와서 처음에는 무시하고 있다가, 드디어 이번 주에 전화를 했습니다. 귀찮은 것은 귀찮은 거고, 이렇게 해서 월 2만 원 정도 절약할 수 있으면 그게 어디냐 싶었죠. 하도 끈질기게 계속 광고를 해대서 저를 전화까지 하게 만들었던 그 문제의 프로모션 편지 (이메일 아닙니다. 진짜 편지...  ;)의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지금 제가 육십몇 불을 이미 내고 있는데, TV와 인터넷까지 포함해서 예전에 첫 12개월에 냈던 사십몇 불에 해 주겠다고 하니 좀 귀찮더라도 전화를 하기로 했습니다. 근데 막상 전화를 해서 상담원과 이야기를 해 봤는데 이런 상품은 없다는 겁니다. 제가 목소리를 높이면서, '무슨 소리냐, 내가 이 광고를 한두 번 본 게 아니고, 편지에 내 이름과 고객 번호까지 나와서 기존 고객한테만 특별 프로모션 하는 상품이라고 쓰여 있다'라고 우겼습니다. 그랬더니 이 친구가, 자기가 사실은 신입이라 내용을 잘 모르니 매니저를 바꿔주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 매니저와 통화를 하고 1분 만에 꼬리를 내리고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이 편지를 매우 주의 깊게 잘 읽어보신 분은 혹시 눈치채셨을지 모르겠습니다. 분명 TV + 인터넷이 번들된 통합 상품은 맞습니다. 월 44.99불에 준다는 것도 맞고요. 근데 이게 TV 따로 인터넷 따로입니다. 즉 각각 44.99불이고, 합치면 90불이 되는 거죠. 44.99불의 설명에 이렇게 쓰여 있죠?


"From $44.99 /mo each for 12 mos when bundled"


사실 제가 여러 차례 이 프로모션 메일을 받고도 망설였던 것은 맨 앞의 "From"이라는 말 때문이었어요. 44.99불에 시작한다고 꼬셔놓고 막상 가입하려고 하면 이것저것 덕지덕지 서비스를 붙여서 끼워 팔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죠. 하지만 막상 제가 놓친 정말 중요한 것은 "each"라는 요 한 단어였습니다. 매니저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왜 이게 사실은 90불짜리 상품인지 이해가 갔는데요, 그전에 같은 내용의 편지나 이메일을 정말 많이 받았는데도 이 "each"라는 단어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었거든요. 


이런 식으로 얄팍하게 사람을 현혹하냐라는 화도 났지만, 반면에 미국에 3년 살았는데 아직 멀었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고객을 가입시키려고 첫 일 년 프로모션 했던 월 사용료를 바로 다음 해부터 가차 없이 올리는 인간들이, 무슨 박애정신으로 이미 육십몇 불씩 꼬박꼬박 몇 년째 내고 있는 기존 고객에게, 그냥 할인도 아니고 TV까지 넣어서 가격을 깎아주겠습니까?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가는 비즈니스 모델인데 제가 그 생각을 못한 것은, 아마도 둘째 해부터 오른 가격을 2년 넘게 내면서 스트레스가 쌓인 상황에서 이런 프로모션을 보고서 좀 감정적으로 받아들인 게 아닌가 합니다. '아, 이 인간들이 기존의 충성 고객을 계속 잡아두고자 이런 마케팅을 하나보다. 이제야 정신 차렸네 짜식들. 근데 혹시 이렇게 해서 전화하게 만들어놓고 다른 서비스 뒤집어 씌우는 거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고 망설였던 거거든요.


그러다가 용기를 내서 전화를 하고 바로 깨갱하고 말았다는 웃픈 이야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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