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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이킴 Mar 07. 2021

너 잘났다 임마

져주는 게 이기는 거라는 클리셰

(사진 출처: Photo by The Humantra on Unsplash)


요즘 코로나 사태로 재택근무를 오래 하게 되면서 누구와 얼굴 붉히고 다투는 일이 없어졌습니다. 예전에 제 다른 글(https://brunch.co.kr/@tystory/14)에서도 밝혔지만, 사무실에서 서로 얼굴 보고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목소리가 커지면서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런데 이메일로 주로 일을 하는 환경에서는 그런 경우가 좀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좀 메마른 통신 수단이다 보니 따사로운 감정이 꽃피울 겨를이 없죠. 물론 그래서 오해가 쌓이는 경우도 왕왕 있지만, 아무래도 사실 위주의 업무 이메일로 감정이 격해지기는 쉽지 않죠.


하지만 매우 오랜만에 아주 격하게 화를 낸 경우가 이번 주에 있었네요. 제안서 작업 관련해서 고객에게 이메일을 하나 보내게 되었는데, 같이 일하는 친구가, 그 일을 가지고 내용에 문제가 있다고 시비를 걸면서 앞으로 기술적인 내용에 대해서 고객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는 자기한테 확인을 받고 하라는 짧은 이메일을 보내 더군요. 그 이메일을 보는 순간 뚜껑이 확 열리면서 바로 전체 회신 버튼을 누르고 분노의 답장을 한 10분 정도 노트북 키보드가 부러지게 쳐 대다가 퍼뜩 정신이 들었습니다. 제가 직장생활 초창기에, 화를 못 참고 감정적으로 행동을 해서 좀 문제가 되었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해주면서 보스에게 들은 조언이, ‘절대 화가 났을 때는 이메일을 쓰지 말아라. 혹시 쓰더라도 보내지 말고 잠깐이라도 뜸을 들이고, 다시 읽어본 후에 보낼지 말지를 결정해라’였습니다.


이렇게 화가 난 생태에서 이메일을 보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쓰던 이메일을 중단하고, 마음을 좀 가라앉힌 다음에 다시 꼼꼼하게 제가 고객에게 보냈던 이메일을 읽어봤지요. 그런데 몇 번을 읽어봐도 제 생각에는 문제가 될만한 내용이 없더군요. 그 친구도 딱히 어떤 부분을 지적해서 문제제기를 한 것도 아니었고요. 그래서 그나마 생각을 고쳐먹은 것이, 이메일은 아무래도 내용이 건조해서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으니 전화가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생각을 정리하고 바로 전화기를 들었죠. 뭐 실제로 전화기를 든 것은 아니고, 저희가 쓰는 사내 메신저의 통화 버튼을 눌렀습니다. 바로 받더군요. 그래서 그 이야기를 꺼냈더니 여전히 단답형으로 구체적인 내용 없이, 니가 보낸 것은 우리 내부에서의 의논이지 밖으로 나가면 안 되는 내용이라고 하는데, 저는 그 부분에 전혀 동의를 못하겠다고 하면서 다시 언성이 높아져버렸고, 내가 이렇게 나오면 자기 쪽 부사장에게 문제제기를 하겠다고 하는 이야기까지 나오더군요.


그거야 자기가 알아서 하면 되지만, 이메일로 말다툼을 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을 것 같아서 제대로 대화를 하려고 전화 통화를 한 것인데 오히려 상황이 더 악화되어버려서 좀 거시기하더군요. 다행히 서로 더 열 받기 전에, 그 친구가 다음 회의 들어가야 한다고 해서 통화는 거기서 중단이 되었습니다. 저도 바빠서 일 좀 보다가, 그 친구랑 일을 해본 다른 동료와 통화를 해서 그 친구 일하는 성향에 대해서 조언을 구했습니다. 몇 시간 지나고 나니 진정이 좀 되기도 했고요.

 

그날 업무를 종료하기 전에 다시 통화를 했습니다. 너랑 나랑은 처음으로 같이 일을 하다 보니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 문제에 대해서는 좀 더 시간을 두고 방법을 고민해보자. 뭐 이러면서 좋게 마무리를 하긴 했습니다. 물론 그 이메일의 내용이 고객에게 가기에 적절했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서로 동의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고객이 그날 저녁에 그 내용에 대해서 답장을 하는 덕분에 우리가 모르던 부분을 알게 되어서 제안서 작업에도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근거로 저는 여전히 제가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제가 예전의 보스에게 들은 조언이 생각나서 영 찜찜하더군요. 몇 년 전에 다른 회사에서 개발팀을 맡고 있을 때, 제품 개발의 전략과 방향에 대해서 마케팅 쪽의 파트너와 의견 조율이 되지 않아서 한참을 고생한 적이 있습니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 보면 항상 의견이 같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도 안되고요. 그런데, 그 대립이 생산적인 아이디어 개진과 토론의 선을 넘어서 오래 가게 되면, 서로의 부서 사람들도 양쪽 책임자가 다른 목소리를 내니 같이 협력해서 일하기 부담스럽고 다른 부서의 동료들도 헷갈려하고 그러는 거죠. 그때 제 보스가 저에게 물어본 질문이 이거였습니다: “Do you want to be right? Or do you want to be successful?”


그 질문에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죠. 누가 더 똑똑하고 누가 더 옳은지 증명하려고 회사 생활을 하고, 모두들 열심히 일해서 제품을 만드는 것은 아니잖아요? 성공적인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서 하는 일인데, 자존심을 내세우며 내가 옳으니 니가 옳으니 그러면서 무엇보다도 소중한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고 있던 저를 뜨끔하게 만드는 화두였던 셈이죠.


그 후로 몇 년이 지났는데, 이번 주의 일을 보면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뭐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 친구는 자기의 입장에서 볼 때 제가 일을 진행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고,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이번 제안 작업에서 가장 밀접하게 호흡을 맞춰서 일을 해야 할 두 사람이 서로 누가 더 잘났는지 자존심 싸움을 하고 있으면 일이 제대로 될 일이 없을 거고요.

 

제가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업무 진행에 대해서 이렇게 바로 뚜껑 열리면서 증기 기관차처럼 칙칙폭폭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면서 폭주를 해서, 그 친구가 틀렸고 내가 옳았다는 것을 기를 쓰고 증명해서 제 자존심을 살리고 그 친구를 망신 준다고 한들, 우리 둘의 대립으로 업무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그야말로 상처뿐인 영광 아니겠습니까? 사실 영광이라고 할 만큼 자랑스럽지도 않지요, 무슨 나라를 구하거나 회사에서 큰 업적을 이루거나 한 것이 아니라, 동료와의 자존심 싸움에 목숨 걸고 달려들어서 이긴 거라면요.


오히려 쓸데없는 자존심과 감정은 접어두고, 그 친구의 입장을 최대한 존중해주고, 정말로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그 친구가 원하는 방식으로 일을 진행해서 성공적으로 업무를 마무리하는 것이 진정으로 크게 이기는 일이고 스스로를 토닥거리면서 축하할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사실 이런 이메일을 보낼 때 그 친구한테 미리 한번 보여주면서, 혹시 뭔가 우려되는 부분 없냐고 물어보는 것이 대단히 큰 일도 아닌데, 그놈의 자존심이 뭐라고 이렇게 열 받아할 이유도 없고요. 제 경험상, 어떤 일을 하는 방식에 있어서 큰 그림이 제대로 그려져 있다면, 그걸 수행하는 방법은 그렇게 별 차이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더군요. 반면에,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팀워크와 방향성은, 아주 조금만 금이 가도 전체 팀의 사기와 업무 진행에 영향을 줄 정도로 중요하고요. 결국은 사람이 사람과 일을 해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대소와 경중을 잘 가려서 쓸데없는 일에 귀한 감정과 에너지 낭비를 하지 않아야 할 텐데요... 근데 그게 머리로 아는 거랑 행동으로 보여주는 거랑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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