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주고도못 배우는것도 많은데 돈 들여서 많이 배웠으니...
미국에 와서 산지 5년 차에 처음으로 차가 견인당하는 신선한 경험을 했습니다. 어제 아침에 8시 좀 안 돼서 오랜만에 사무실 출근하려고 집을 나섰습니다. 제가 사는 곳은 주차가 한 대밖에 되지 않아서, 콘도 단지 바깥의 길에 차를 주차해놓거든요. 코로나 백신 덕에 예전보다는 자주 사무실로 출근을 하는 편이지만, 이번 주에는 첫 출근이라서 설레는 마음으로 커피를 한 손에 들고 백팩을 메고 제 차가 있는 곳으로 갔는데... 허걱, 경찰차와 견인차가 와서 제 눈앞에서 차를 견인하는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교훈 1) 미국 경찰 하고는 말이 잘 통하지 않는다 – 이건 약간 중의적인 표현입니다. 아침에 콧노래를 부르면서 커피를 들고 출근하려고 하다가 난데없이 견인 장면을 보고 헐레벌떡 뛰어가서, 뭔가를 열심히 적고 있는 경찰관하고 대화를 하는 상황이지요. 그러면 이 상황에서 영어가 잘 될까요 안 될까요? 당연히 안되죠. 회사 업무를 할 때도 중요한 미팅이나 긴장되는 상황이면 떨리는 마음에 영어가 꼬일 때가 많은데, 이런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영어가 술술 나오겠습니까? 당연히 버벅거리면서, 도로 공사 표지를 보지 못해서 차를 제시간에 못 옮겼다, 벌금은 낼 테니 견인하는 거 멈추면 안 되냐 이렇게 읍소를 해 봤지만 단칼에 거절하더군요.
(교훈 2) 그래도 계속 시도는 해야 한다 – 경찰은 그렇게 자기 할 말만 하고 다른 차 쪽으로 가서 자기 할 일을 계속하더군요. 그날 도로 공사하는 라인에 주차된 차가 제차 말고도 몇 대 더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번에는 견인차 운전사한테, 벌금은 낼 테니 차 그냥 풀어주면 안 되겠냐고 시도를 해 봤는데, 자기는 절차에 따라서 하는 거고, 견인 회사는 따로 있기 때문에 자기가 어떻게 결정을 할 수가 없다면서 하던 일을 계속하더군요. 하지만 보람이 아주 없지는 않았습니다. 그 친구 통해서 정확한 견인 회사 주소를 맵에 입력하고, 확인까지 받고 나서, 바로 집사람 차로 따라갔거든요. 물론 견인 공지나 이런 거를 보면 주소가 나오겠지만, 그래도 견인 기사가 알려주는 것이 제일 확실할 테니까요.
(교훈 3) 당황스러운 상황일수록 바로 행동하기보다 잠깐만~ 뜸을 들이고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 어제는 첫 미팅이 9시에 있는 날입니다. 회사까지 대략 35분 정도 걸리니까, 8시 좀 전에 여유 있게 출발했던 겁니다. 그런데 이런 사단이 벌어진 거죠. 9시 미팅은 우리 내부 미팅인데 그 후에 9시 반 미팅은 제가 주관하는 고객 미팅이거든요. 9시 미팅은 못해도 고객 미팅은 빨리 서둘러서 차 받아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바로 견인차를 따라갔습니다. 그래서 견인 회사에 도착했더니, 아뿔싸, 준비 서류 리스트가 쫙 적혀있는데 그중에 필수가 차량 등록증이더군요. 조금만 생각을 해 봤으면, 차가 견인된 후에 그 차를 찾으러 갈 때 당연히 신분증 말고 차량의 소유를 증명할 서류가 필요하다는 것이 떠올랐을 텐데,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서둘러서 차를 찾으러 간 겁니다. 다행히 차 글로브 박스에 등록증이 있는 것이 떠올라서, 집으로 다시 가는 헛짓거리를 면하게 되었습니다.
(교훈 4) 해야 할 일을 제때 하지 않으면 생각지 못했을 때 당하는 수가 있다 – 등록증을 차에서 찾긴 했는데 이미 만기가 지난 것이라 그거로는 차를 내 줄 수가 없다고 하더군요. 제 차의 등록 만기일이 6월 초였습니다. 그것도 계속 미루고 있다가 정말 가까스로 등록 만기날에야 겨우 온라인으로 차량 등록을 연장했고, 등록증이 우편으로 집에 온 것이 불과 며칠 전인데, 그걸 깜빡하고 차에 넣어놓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다시 집에 가서 등록증을 갖고 와야 하는 상황이었으면 멘털이 완전 무너질 뻔한 위기였는데, 다행히 그 여직원이, 사진으로 찍어서 보내줘도 인정해 주겠다고 해서 집사람만 집에 가서 사진으로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추가 교훈이 하나 더 있습니다. 제가 보통은 이렇게 공공 기관에서 서류가 오면, 혹시나 해서 사진을 찍어서 구글 드라이브에 보관을 해 놓거든요. 그런데 최근에 게을러져서 그걸 하지 않았더니, 가장 필요했던 시점에 필요한 서류가 클라우드에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겁니다. 에효... -_-;
(교훈 5) 선의를 갖고 공유하면 선의를 되받을 수도 있다 – 아침에 그 난리를 피우고, 정신없이 하루 업무를 마감하고 저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넥스트 도어 (Nextdoor)라고 이웃들끼리 정보를 공유하는 커뮤니티에, 오늘 아침에 차가 몇 대 견인되어 갔다는 글이 올라오더군요. 그래서 저도 간단히 답글을 달았습니다. 공사 시작하기 전에 7시까지 차를 빼놓았어야 했는데, 내가 좀 늦게 갔더니 내 눈앞에서 차가 견인되어갔다고요. 다른 이웃들도 조심하라는 의미에서 제 경험을 공유한 건데, 생각지도 않게 바로 답글이 하나 달리더군요. 캘리포니아 법에 보면, 견인 과정에서 견인차가 떠나기 전에 차주가 현장에 도착하면 견인비의 50%만 내도 되니, 그쪽에 연락해서 환불을 요구해보고, 안 들어주면 소액 재판을 걸어보라는 조언이었습니다.
(교훈 6) 아는 게 힘이다 – 그래서 오늘 아침에 인터넷 검색을 해 봤더니 정말 그런 조건이 있더군요. 캘리포니아 주법 조항을 자세히 읽어보니 개인 사유지 (Private Property)에 대해서만 설명이 있고, 제 차는 외부의 공공 도로에 추차되어있던 상황이라서 이게 100% 적용이 될지는 확신을 못하겠지만, 제 글에 댓글을 달아준 분의 말씀대로 견인비 50%만 청구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자리에서 바로 차의 견인을 멈춰줄 것을 요구하고, 견인 회사는 그 요청을 조건 없이 들어줄 의무가 있다고 나오더군요. 그러니까, 어제 아침에 제가 이 내용을 알고 있었더라면 경찰과 견인차 운전자에게 아주 당당하게 (물론 제가 잘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차량의 견인을 멈추도록 요구하고, 아침의 그 난리 법석을 피하고, 물론 벌금을 내긴 했겠지만 이 스트레스도 받지 않고, 아마도 9시 미팅에도 들어갈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이 일로 어제 아침 9시랑 9시 반 미팅 둘 다 못 들어갔거든요.
(교훈 7) 이런 일이 무심할 자신 없으면 무심히 살면 안 된다 – 사실 우리 콘도 단지 주변의 도로 재포장 공사를 시작 한지는 몇 주 됐었습니다. 제가 차를 매일 사용하지는 않지만, 지난번의 포장 공사 때는 다행히 공사 공지를 미리 봐서 차를 옮겨놓기도 했었고요. 그런데, 이미 포장 공사를 한번 했었길래 방심한 부분도 있겠지만, 저희 집사람이 차를 타고 지나가는데 거기 뭔가 사인 같은 게 붙어 있다고 했을 때, 뭐 며칠 전에 공사하고 나서 깜빡하고 안 치웠나 보다라면서 그냥 무심히 지나쳤습니다. 그런데 그게 추가 공사 공지였고, 그걸 모르고 있다가 이번 일을 당한 거죠. 미국에 살면서 이런저런 우편물이나 이메일 뭐 이런 것들이 오면, 뭐하고 하는지 용어도 낯설고, 스팸인지 진짜 공지인지 헷갈리기도 하고 해서 무시하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필요하면 자기들이 다시 연락하겠지 하고 무심 타법으로 지내고 있었는데, 이번 일을 겪으면서 그래도 낯선 나라에서 살면서 좀 신경을 쓰면서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이번에야 아침에 한 시간 반과 미팅 두 개 그리고 벌금 몇백 불로 대가를 치렀지만 더 큰일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이번 일로 속이 쓰리긴 합니다만, 덕분에 배운 것도 많습니다. 누가 그랬지요: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고, 실수를 통해 배움이 없는 것을 두려워하라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