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어떡하든 그가 그의 20등, 30등을 우습고 불쌍하다고 느껴지지 말아야지 느끼기만 하면 그는 당장 주저앉게 돼 있었다. 그는 지금 그가 괴롭고 고독하지만 위대하다는 걸 알아야 했다.
나는 용감하게 인도에서 차도로 뛰어내리며 그를 향해 열렬한 박수를 보내며 환성을 질렀다.
나는 그가 주저앉는 걸 보면 안되었다. 나는 그가 주저앉는 걸 봄으로써 내가 주저앉고 말 듯한 어떤 미신적인 연대감마저 느끼며 실로 열렬하고도 우렁찬 환영을 했다.
(박완서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153p)
지난여름 리우 올림픽 당시,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둔 마라톤 선수들에 대한 비난 여론이 잠시 있었다. 흔히 사람들은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한다. 비난을 하는 그들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그들은 자신의 마라톤에서 어디쯤 서있을까를.
육체로 하는 일에서 무엇 하나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없는 인생을 살아서 그런지, 못한다고 운동선수에게 나쁜 소리하는 일이 잘 없다. 가끔 나온 어처구니없는 실수에 욱하다가도 곧바로 후회한다. 특히 아픈 이후로는 더 그러하다.
내가 무어라고 그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인생의 마라톤에서 몇 걸음 뛰다가 엎어져가지고는 치료받느라 트랙에서 빠져있는 내가, 얼마나 뒤쳐질지 몰라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내가 어떻게.
이제 마지막 치료가 끝나면 나는 다시 트랙 위에 올라선다. 그리고 내가 만들어낸 수많은 환영(幻影) 속에서 마라톤을 다시 시작할 것이다. 예컨대 내가 닮고자 했던 누군가의 모습을 한 나, 아프지 않았을 때의 나, 수많은 나 속에서 경쟁을 하게 될 것이다.
아무래도 1등은 힘들다. 그 생각을 하면 주저앉고 싶어진다. 못하는 건 하기 싫은 요상한 승부욕이 나를 자꾸 주저앉힌다. 하지만 달려야 한다. 그게 사는 것이기에.
다행이라면, 뒤쳐진 나에게 작가님처럼 환성을 질러주는 이가 있다. 부모님, 동생, 그리고 주위의 많은 사람들. 얼굴 한 번 본 적 없고, 이야기 한 번 나눈 적 없어도 나의 사연을 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나를 응원하고 박수쳐주는 이가 있다.
“이만하면 꼴찌라도 달릴만하지 않니?”
나에게 슬쩍 말을 건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