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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남 Mar 28. 2017

[소설] 내려놓음 105 신호등, 켜지다.Ⅲ

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105 신호등, 켜지다.Ⅲ






 찬바람을 쐬며 걷다 보니 마음이 좀 진정되었다. 대신 그동안의 마음고생이 참으로 쓰잘데기 없었다는 생각과 기쁨 섞인 허탈감, 그렇다고 해서 마냥 창창하다고 말할 수 없는 잠시의 평화로움에서 오는 아쉬움들이 몰려와 머리를 잔뜩 채웠다.


 할 말씀이 많을 것만 같았던 방사선 종양학과 선생님은 별 말씀이 없으셨다. 신경외과 교수님에게 어떤 소견을 들었는지 물은 뒤, 종양의 크기가 많이 줄어들고, 뇌부종이 많이 해소되었다는 나의 대답에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셨다. 자신이 계획한 치료의 성과를 알고 싶었던 걸까, 힘들었을지도 모를 방사선 치료를 무리 없이 잘 견딘 자신의 환자의 결말을 보고 싶었던 걸까. 모든 이야기를 들은 선생님은 나의 등을 토닥이며 수고했다고 고생 많았다고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그때 깨달았다. 나쁜 결과가 나올까 두려워하느라, 또 좋은 결과에 기뻐하느라 잊고 있었던 사실 하나를. 당분간 한 달에 한두 번, 일만 잘 풀린다면 3개월마다 한 번, 더 잘 풀리면 6개월에 한 번씩 신경외과 교수님을 만날 것이다. 그러나 이제 방사선 종양학과 선생님은 다시 볼 일이 없다. 아니 없어야만 한다. 만약 우리가 다시 만나는 일이 있다면 그건 상황이 매우 좋지 않음을 의미하기에. 개인적인 용무가 아닌 이상 다시는 보면 안 된다. 오늘이 정말 마지막이다. 무척 따뜻한 분이셨기에 이런 관계가 더욱 아쉽다. 교모세포종이라는 진단명에 절망하고 있을 때 급히 신경외과 교수님을 불러주신 일, 중이염 오해 사건 때 불안에 떠는 나를 안심시켜주신 일 등등 많은 에피소드들이 떠오른다.


 ‘한 번쯤 커피라도 사들고 찾아뵈고 싶네. 병원에 올 때마다 가볼까? 아니다. 앞으로 월요일 오전에 올 텐데 그때는 선생님 외래 시간이 아니야. 나중에, 치료 다 끝나고 그 뒤에 f/u도 괜찮다고 나오면 그때 깜짝 방문하자. 이제는 한 시름 놓게 되었다고, 선생님 덕분이라고, 기쁜 소식을 전해드리는 거지. 자신이 치료한 환자의 행복한 결말만큼 의사에게 보람을 줄 수 있는 일이 또 없으니 그게 좋겠다. 꼭 완쾌한 모습으로 나타나야지.’



 면담을 마치고 아버지는 병원 근처 약국으로, 어머니는 원무과에 수납하러 가셨다. 나는 병원 로비에 남아 기다리기로 했다. 두 분이 자리를 비우자마자 아까 메시지를 남겨놓으셨던 여사님에게 연락을 드렸다. 꽤 긴 통화 끝에 여사님과 승현이 형, 나기 형까지 간만에 4명이서 저녁 식사를 하기로 약속을 잡았다. 전화를 마무리했지만 아직 두 분은 일이 덜 끝난 듯 오시지 않았다.


 5월 중순, 따뜻한 봄도 이제 여름에게 자리를 비켜주기 위해 슬슬 떠날 준비를 하는 시기이련만 병원은 왠지 춥고 스산했다. 내가 앉은 주위로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은 마치 바람을 몰고 다니는 것만 같았고, 그 바람에 머리에 쓴 비니 모자가 벗겨져 반쯤 날아간 내 머리가 공개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까지 들었다. 모자를 다시 꾹꾹 눌러쓰고 가방을 열었다. 아까 아무렇게나 집어넣은 필기구들을 다시 가지런히 필통에 담고, 메모지도 순서대로 정리했다. 그래도 부모님은 오시지 않으셨다. 지갑을 꺼냈다. 지폐를 액수 순서대로, 방향도 맞추어 다시 집어넣었다. 카드도 모조리 빼내어 쓰기 편하도록 재배치하였다. 그래도 아직 혼자. 가방에서 메모지를 꺼내어 읽었다. 운명의 신호등 앞에서 벌벌 떨며 열심히 끄적거리던 내 모습이 보인다. 한심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다. 고작 이 정도 관문도 꿋꿋하게 지나가지 못하는 내가 앞으로 남은 과업을 완수할 수 있을까?


 돌이켜 생각해본다. 이번 일 중에서 나에게 이렇다 할 쓴 맛이 있었는가를. 고생, 고난, 고통 무엇 하나 제대로 감당해본 적이 있었는가를. 다른 종양 환자들이 항암치료로 인해 속이 너무 울렁거려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조금 먹은 것조차 토하며 말라갈 때, 나는 도리어 살까지 쪘다. 소화기 증상도 일부 있기는 했지만 침으로 해결했고, 항암제 투여할 때 발생하는 면역력 저하도 한약이랑 한방차(茶)로 무난하게 넘겼다. 정신적인 문제도 낭창한 멘탈과 전에 배워둔 심리치유기법으로 별 탈 없이 지나갔다. 삶의 질 하나 끝내주게 좋은 환자였다. 이렇게 쉽게 쉽게 지나쳐놓고, 되려 별 거 아닌 문제로는 끙끙 앓고 힘들어 해놓고 내가 과연 종양 환자를 대표한다며 글을 쓴다는 것이 말이 될까? 게다가 난 20대라서 다른 환자들이 놓인 상황과는 많이 다를 텐데, 내가 그리고 있는 지도가 과연 다른 누군가에게도 가치가 있을까?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나고, 자신이 없어진다.


동완아, 많이 기다렸지. 약국에 약이 없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좀 늦었어.
보험사에 제출할 서류 같은 거 검토하느라고 시간이 좀 걸렸네.
어떻게 엄마랑 아빠랑 같이 왔어?
오다가 만났지. 이제 집에 가자.
응.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차창 밖으로 보이는 놀이공원으로 들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며, 롤러코스터에서 쏟아지는 비명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모르겠다. 어떤 행동이나 이야기가 남에게도 의미가 있어야 할 필요는 없어. 별 이유 없이 라면이 땡겨서 먹는 것처럼 그냥 쓰는 거지. 그냥 나는 이 시간을 잊지 않기 위해, 이 시간에서 무언가를 얻어내기 위해, 이 시간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내기 위해 적을 거야. 나의 경험이 다른 이에게는 반면교사조차 될 수 없을지라도 그냥 나를 위해서 적을 거야. 내 이야기의 효용가치가 중요한 게 아니야. 다만 이야기가 있다는 것, 그리고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것, 그것이 중요하지. 그만 생각하자. 머리 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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