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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남 Mar 31. 2017

[소설]내려놓음 118 2cycleⅢ

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118 2cycle Ⅲ





 원래 첫날은 힘든 것일까?


 저번의 경험을 살려 Temodal을 먹을 때 항구토제도 같이 먹었건만 구역감은 지난번과 별 차이가 없다. 늘어난 양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재빨리 잠들면 힘든지도 모르고 밤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일부러 낮잠도 자지 않고 몸을 굴렸었다. 그런데 지금 그걸 뛰어넘는 구역감이 잠을 방해하고 있다. 피곤한데 잠은 잘 수 없으니 더 괴롭다.


 한참을 누워서 헤매다가 지금쯤이면 토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 시계를 보았다. 1시 20분. 11시 반에 약을 먹었으니 2시간 정도 지난 셈. 또다시 시간과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첫날이 가장 힘들다는 당연한 이치를 까맣게 잊을 만큼 그동안 나는 환자가 아닌 일반인으로 살았다. 이번에는 침 안 놓냐는 아버지의 말씀에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냐며 웃어 넘겼던 것이 후회가 된다. 첫날에는 모든 수단을 강구해야한다는 걸 1cycle 때 느껴놓고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그나마 다행은 물 마시는 실수를 범하지 않았다는 것. 몸은 구토를 유발하여 속이 편해지고 싶은 듯 타는 목마름을 호소하며 물을 마시도록 유도하고 있지만 오늘은 결코 이 유혹에 넘어가지 않겠다.



 몸은 치밀어 오르는 구역질을 이겨낼 수 없다고 판단한 게 분명하다. 수없이 침을 쏟아내며, 토사물의 산(酸)이 식도를 녹이지 못하도록 열심히 코팅하고 있다. 일어나 침(鍼)을 찾았다. 급하니 잘 안 보인다. 눈에 띈 건 굵은 침 뿐. 놓아야 할 혈 자리들이 굉장히 아픈 곳에 위치해있기에, 고작 1.5배의 굵기라도 통증은 이를 훨씬 상회할 것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안 토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침을 놓고 나니 구역기가 좀 가신다. 그러나 그 사이 항암제와 나의 힘겨루기가 내는 소음에 온 가족이 깨버렸다. 다 쓴 침을 버릴 통과 여분의 침, 소독 솜을 마련해주고 각자 방으로 돌아갔다. 나 때문에 잠 못 자고 걱정하는 가족들을 바라보며 죄책감을 느끼는 나를 위한 배려임이 분명하다. 그래도 나는 알고 있다. 그들 모두 방 안에서 편히 잠들지 못한 채 숨죽이고 나의 기척을 살피고 있음을. 아마 그들은 내가 화장실 문이라도 여는 순간 생기를 불꽃처럼 태우며 달려 나올 것이다. 그 모습, 보고 싶지 않다.



 15분 정도 유침 시켜놓은 침을 뺐다.

 좀 낫다.


 아, 다시 구역감이 온다. 아까보다 더 침이 쏟아진다. EFT를 꺼내들었다. 혹시나 싶어서 신체 증상에 대해 사용하는 EFT 사용법을 숙지해두고 잤는데 결국 쓰게 되었다. 구체적인 위치와 특징 그리고 강도를 이야기해야 한다.


 ‘나는 비록 Temodal로 구역감이 목구멍까지 차오른 것 같아 힘들지만, 나는 나 자신을 깊이 그리고 완전히 사랑하고 받아들입니다.’ 라 이야기하며 경혈들을 두드렸다.

 그러니까 구역감이 조금 내려갔다.


 ‘나는 비록 구역감이 윗가슴까지 차오른 것 같아 힘들지만,’

 ‘나는 비록 구역감이 명치부근까지 차오른 것 같아 힘들지만,’

 느낌의 변화에 따라 어구를 수정해가며 실시했다. 구역감이 싹 가라앉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좀 괜찮아진 것 같아 멈추었더니 명치부근까지 밀렸던 구역감이 곧장 목구멍까지 치달았다. EFT의 놀라운 효과와 한계를 동시에 경험하고 있다. 정신적 문제를 넘어선 신체적 증상도 완화 가능하지만 일시적이라는 문제.



 그래도 괜찮다. 약 먹고 3시간, 그 시간만 버티면 시원하게 구토해도 된다. 나에겐 그 시간을 버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결국 치료도 시간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복구 불능 지점까지만 내몰리지 않는다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능력을 가진 게 생명 아니겠는가? 내부나 외부의 문제로 흔들릴 때, 원래의 질서를 되찾을 시간을 벌어주는 것만으로도 그건 훌륭한 치료다. 그 게 대증(對症)치료의 의미이기도 하고.



 지금 시간은 2시 10분. 글을 쓰며 50분이나 버텼다. 이제 20분 만 더 보내면 된다. 지금 이렇게 힘들면서도 종군기자처럼 기록으로 남기는 내가 신기하다. 힘드니까 글도 잘 써진다.


 야속한 몸은 대변신호를 보내며 가스를 내뿜는다. 지금 화장실 가면 걷잡을 수 없는 구역감을 이기지 못하고 토할 거 같다. 참아야 한다. 이 와중에 절로 지어지는 습관적인 미소는 무엇일까. 거지같은 현실에 대한 한탄인가, 내가 나에게 보내는 격려인가. 격려라 믿겠다.



 2시 17분.

 나는 구토했다.

 약 먹은 지 2시간 47분만이다.


 저번에는 2시간 20분, 교수님은 2시간 20분이면 괜찮다며 넘어갔었다. 그것보다 더 버티었으니 괜찮다. 이제는 물 마셔도 된다. 이미 토해버린 이상 구토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구토로 손실된 수분을 보충하고 앞으로 나올 구역질을 대비하여 산(酸)의 농도도 묽게 할 겸 물 마시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물을 마셔도 구역감이 오르지 않을 때가 오면, ‘이제 괜찮구나.’ 하며 안심하고 잘 수도 있을 테니 그냥 마셔야겠다.


속이 시원하다. 좋다.



 몸에 무언가가 들어가도 괜찮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새벽 6시까지 구토했다. 신기하게도 잠들 때까지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한바탕 쏟아낸 뒤 화장실 변기에 버리고 물로 헹구면서도 웃음이 났다. 기뻤다.


 ‘효과가 들어가고 있구나.’

 ‘내가 지금 허깨비가 아닌 살아있는 존재구나.’


 양이 320mg에서 450mg으로 늘었던 탓인지, 이틀을 토했던 지난 번과 달리 이번에는 사흘을 토했다. 그 후부터는 밤잠을 뒤척이는 정도의 부작용이 찾아왔고 덕분에 어머니의 아침출근길을 덜 방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2cycle도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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