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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남 Dec 09. 2016

[소설] 내려놓음 56 일상으로의 초대Ⅷ

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56 일상으로의 초대Ⅷ




 1년차 때는 읍내에 있는 고령군 보건소에서 근무했고 관사는 대부분의 건물이 김해로 떠나고 없는 가야대의 옛 원룸촌에 있었다. 읍내의 보건소와 구(舊) 대학가에 자리한 관사. 벌레가 무진장 많다는 것 말고는 도시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그 사이는 달랐다.

 덕경이 형이 본가가 아닌 관사에서 출근하는 날에는 형의 차를 얻어 타고 편하게 출퇴근했지만 아닌 날은 30분을 넘게 걸어 출퇴근했다. 보건소와 관사를 잇는 버스노선이 하나 있기는 했지만 한 시간이 넘는 배차간격 때문에 통근용 버스로는 무리였다.


 아파트 단지에서 길가로 5분 정도 내려오면 왕복 4차선의 아스팔트길이 잘 닦여 있었고 그 옆에는 인도와 자전거도로가 마련되어 있었다. 그 동네에서 읍내로 가는 길은 그 하나뿐이었는데 그 길에 자전거도로가 있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꼭대기에서 썰매 타듯이 브레이크도 엑셀도 밟지 않고 내려오면 50km/h이던 차가 70km/h를 너끈히 돌파해버리는 가파른 언덕이 그 사이에 떡하니 있었기 때문이다. 그 언덕을 자전거로 올라가려면 허벅지가 터질 것이고, 내려오면 속력을 주체하지 못하고 가드레일을 넘어 굴러 떨어질 것이 자명했다.


 그런 능선을 따라 헉헉대며 걸어 올라가면 한쪽에는 논이 다른 쪽에는 넓디넓은 들판과 푸른 산이 보였고 조금만 지나면 이제는 관광지 티가 제법 나는 대가야 테마 파크가 있어 잘 꾸며 놓은 꽃들을 사시사철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걷다보면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강아지들이 하나둘 나의 뒤를 따라붙었고 보건소에 도착할 무렵이면 열댓 마리로 불어나 있었다. 주택가 골목으로 접어들면 친구 보러 뿔뿔이 흩어졌지만, 피리 부는 사나이가 된 기분은 자칫 지루하고 힘들 수 있는 출근길을 즐겁게 해주었다.


 2년차 때는 운수면 보건지소로 자리를 옮겼다. 지소 남쪽에는 논이 넓게 펼쳐져 있어 주변을 산책하면 왜가리 한두 마리 구경하는 것은 예사였고, 가끔 비오는 날이면 비를 피하러 개구리들이 지소 문을 두드렸다. 지소 동쪽에는 수박밭이 있어 여름이면 밤마다 수박을 수확하느라 꽤나 시끌시끌한 곳이었다. 재작년에 근무했던 의사 형이 실수로 주말에 불 켜놓고 창문을 살짝 열어놓고 갔더니 벌레가 2cm 두께로 쌓여있었다는 에피소드가 있을 정도로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는 곳에 나는 살았었다. 거기에서 1년 더 지낼 수 있다는 생각에 늘 기뻐했었는데 느닷없이 빼앗겨버렸다. 상으로 받은 막대사탕 껍질을 급히 뜯다 떨어뜨린 아이처럼 마냥 슬프다.



 한참 상념에 젖어있을 때, 지소에 도착했다. 김 여사님이 알아봐 주신 이사 업체 사람들은 미리 이야기 해둔대로 책과 이불, 옷과 컴퓨터, 실내 자전거를 모두 챙겨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사님께 얼른 인사를 드리고 다른 챙길만한 물건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2층 관사로 올라갔다. 마지막 내 방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지만 이미 초토화된 방은 이미 내 것이 아니었다. 다시는 여기서 잘 수 없음을 상기하며 방을 둘러보았다.

 술 먹고 거하게 파전 부치고 뒹굴었던 현관. 아침은 굶고 점심은 군청 구내식당, 저녁은 사먹거나 과일로 때우느라 라면조차 몇 번 끓인 적 없는 부엌. 소주와 맥주로만 가득 찼던 냉장고. 직접 설치한 찍찍이 방충망이 붙어있는 창문. 얼마 전까지 나의 잠자리였던 푹신한 침대. 읽다가 만 책들이 잔뜩 쌓여져 있었던 책상. 하나하나가 많이 아쉽다. 나중에 몰래 찾아와 한 번 자고 싶은 마음이 든다.


 책상 위의 잡동사니들을 정리했다, 가져갈 것 버릴 것 구분하다 옛 연인의 흔적도 발견했다. 직접 쓴 손 편지와 음악 CD, 아마 업체 직원이 미리 챙겨둔 침구류에는 그녀가 사준 배게도 들어있을 것이다. 헤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이 벌어진 터라 그리워할 여유조차 없었다.

 내 모든 것에 쓰나미가 몰아쳤음을 느낀다. 어떤 것은 사라졌고, 어떤 것은 흔적만 남아있고, 어떤 것은 되찾기도 하고, 어떤 것은 기적처럼 살아있다. 잘 추스를 수 있을까? 지난날의 모습들을 모두 되찾고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마음을 알듯 말듯 복잡 미묘하다. 고민을 하다 버리기로 하고 쓰레기통으로 넣자, 나를 지켜보던 사촌 매형은 나중에 후회할 거라며 다시 주워 내 주머니에 찔러 넣으셨다.


 동행해준 매형 덕에 2층 관사는 수월하게 정리되었다. 마지막은 진료실. 진료실 컴퓨터를 켜 내 개인정보들은 지우고 개인 문서들은 USB에 담았다. 2박스가량 되는 진료실에 쌓아둔 책들도 챙겼다. 이것들을 머리에 넣어두었다면 더 좋은 진료를 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무엇하나 아쉽지 않은 것이 없다.

 오전에는 할머니들의 안식처, 오후에는 공보의들의 놀이터가 되어준 베드를 보았다. 따듯한 온돌침대에 누우면 잠이 잘 온다고 하던 할머니들이 떠오른다. 병무청의 느린 일처리 때문에 한동안은 옆 지소의 한의사가 출장 와서 진료하게 될 것이다. 그럼 일주일에 많아봐야 이틀 정도 진료할까 말까. 어제와 다른 하루를 구분 짓게 하는 건 TV연속극 밖에 없는 분들이라 요일 분간 못하여 휴가 때도 찾아와 허탕 치시고 가시는 분들이 부지기수인 지소였다. 힘들게 걸어온 길을 별 수확 없이 돌아서야 할 분들이 눈에 선하다. 이미 내가 아픈 바람에 지난 한 달간 헛걸음 하신 분들이 많았을 것이다. 특히 매일 먼 길을 걸어와 침 맞고 가는 김계화 할머니가 생각난다. 운수에서 한 번이라도 근무한 사람은 모두 기억하는 그 분은 나 없는 새에 얼마나 많이 허탕 치셨을까?


 한 달 가까이 켜진 적 없이 차게 식어버린 베드에 한 번 누웠다 가볼까 하다 마음을 거두었다. 병자의 기운을 남겨서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여사님께 마지막 인사를 전하고 지소 밖으로 나왔다. 종종 찾아뵙겠노라고, 3달 정도 밖에 같이 못 있어서 아쉽다고 내 마음을 전했다. 열쇠를 돌려드려야 했지만 그냥 도로 들고 나왔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아직은 내 집이라고 믿고 싶은 마음에, 금방이라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지소 문을 열고 관사에서 자고 아침에 일어나 진료하고 그럴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에 부적처럼이라도 간직하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이미 이사 업체 직원은 와있었다. 아버지와 매형이 짐을 집으로 옮기면 나는 방 안에서 책들을 정리했다. 도서관처럼 구역을 정해놓고 전공서적, 교양서적, 다이어트 및 정신건강 서적, 소설책들을 배치했다. 이리 넣었다 저리 넣었다 하며 꽤 바빴다. 생각보다 책이 더 많아 또 많은 책들이 안에 담긴 지적 재산이 소비되지 못한 채 재활용 쓰레기로 버려져야 했다. 일은 끝이 없어 저녁 먹고 나서도 한참 지나 잘 때쯤이 돼서야 비로소 마무리 할 수 있었다.




57 일상으로의 초대Ⅸ 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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