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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호 Sep 21. 2019

지명에 평야, 하천, 해안이 들어가 있다고?


전국을 여행 다니면 똑같은 지명을 가진 곳을 많이 보게 된다. 예를 들어 가평하면 경기도 가평을 떠올리지만, 실제로 전국적으로 가평을 사용하는 지역이 여러 곳이다. 강원도 양양, 경북 봉화, 충북 단양 그리고 전북 고창에 가평리가 있다. 이들 지역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이 주변 지역보다 넓은 평야를 가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오랜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지명이 등장하지 않는다. 고대에 사용되던 지명이 실전된 것이 많으며, 한자로 지명이 바뀌는 과정에서 원래의 의미가 사라진 경우도 많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때 우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무지한 일본인이 왜곡된 지명을 붙이거나, 민족의 정기를 무너뜨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바꾸어놓은 곳도 많다. 또한 광복이후 빠르게 바뀌는 행정구역도 지명을 사라지는데 한 몫 했다.



제주도 대평리




그러나 지명을 통해 어떤 마을이었는지를 추측할 수 있는 지역도 아직 많이 남아있다. 그중에서도 지명을 통해 평야, 하천 그리고 해안가 마을인지 구분할 수 있다. 우선 평야를 가진 마을은 평(坪)과 원(原)을 많이 사용한다. 평과 원은 평야 또는 벌판이라는 의미하는 한자다. 대표적인 지역으로 가평, 부평, 철원, 수원 등이 있다. 이곳은 예로부터 넓은 평야 지대로 많은 곡식이 생산되던 주요 농경지이자 교통의 요충지였다. 제주도에 가면 멋진 자연경관을 가진 대평리가 있다. 산방산과 중문관광단지에 가까우면서도 아직까지 많은 이들의 발길이 닿지 않아 제주도의 옛 모습이 많이 남아있는 곳이다. 과거 이곳은 고려시대 제주도의 말을 중국으로 실어가기 위한 포구였다. 당시 수많은 말을 수용할 정도로 넓은 지역이라는 의미로 대평(大坪)이 되었다. 수원의 경우도 조선 정조 때 이 지역을 경제 도시로 발전시키기 위해 수원화성을 건설하고 전국의 소가 매매되는 우시장을 열었다. 전국에서 찾아오는 사람과 소를 수용할 정도로 넓은 평야를 가졌던 수원(水原)은 지금도 행궁과 수원화성 그리고 갈비가 유명하다.



곡성을 가로지르는 섬진강




지명에 山(산), 谷(곡), 峴(현), 川(천)이 들어가는 곳은 산과 골짜기가 있는 지역을 의미한다. 전라도 곡성(谷城)의 경우 넓은 평야도 있지만 섬진강이 곡성을 가로질러 간다. 그래서 곡성에 위치한 섬진강기차마을에 가면 옛 증기기관차를 타고 섬진강 협곡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충청남도 서천은 금강이 흘러가다 서해와 만나는 자리에 위치하고 있어, 여러 하천들이 서천을 가로질러 금강과 만난다. 서천의 한산모시가 유명한 것은 삼국시대부터 야생 모시로 옷감을 짠 것도 있지만, 모시가 자라기에 적당한 자연기후도 한 몫 한다. 모시의 경우 기온이 높고 연강우량 1,000㎜ 이상 되어야 성장에 제약이 없다. 큰 하천이 흘러 풍부한 수량을 갖춘 서천은 모시가 잘 자랄 수 최적의 장소다.



포항 구룡포




마지막으로 해안 지역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지명에는 곶(串), 두(頭), 량(梁), 항(項) 등이 있다. 경상도 포항(浦項)은 동해바다와 마주하고 있는 지역으로 새해가 밝으면 많은 이들이 한반도 호랑이의 꼬리 지점인 호미곶(虎尾串)을 찾는다. 또한 포항은 과메기가 매우 유명하여 겨울철이 되면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경남 거제시에는 칠천량(漆川梁) 해전공원이 있다. 이곳은 왜군의 계략에 넘어간 선조와 조정대신들이 이순신 장군의 목숨을 뺏으려 할 때, 원균이 당대 최고의 전투력을 가졌던 조선 수군 전부를 잃어버린 가슴 아픈 장소다.

이 외에도 지명이 만들어지는데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이 많다. 우리나라의 지명에 얽힌 이야기를 담아놓은 책도 나오기는 했지만, 아직은 연구가 많이 부족한 상황이다. 지명에 자연환경과 인문환경 모두가 들어가 있는 만큼, 우리가 조금만 신경을 기울인다면 살고 있는 지역의 역사를 이해하고 애향심을 키울 수 있다. 또한 여행에서 무엇을 먹고, 어디로 가야할지에 대한 고민도 줄일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의 옛 지명이 사라지기전에 지금보다 많은 연구결과가 나오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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