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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호 Dec 14. 2019

태극기는 대한민국이다.

진관사 태극기

20세기에는 국경일에 태극기를 집에 게양하도록 가르쳤고, 모든 집마다 태극기는 어김없이 바람에 펄럭였다. 그러나 21세기인 지금은 태극기를 집에 게양하는 모습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오히려 운동경기나 집회에서 옷과 수건 등에서 다양한 태극기를 만나게 된다. 이것이 가능해진 것은 2002년 태극기의 품위를 손상할 수 있는 속옷과 양말과 같은 일회용품이 아니라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법이 제정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태극기의 무늬와 모양을 분리해 사용 가능해지면서 온전한 모양이 아니라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기성세대들에게 있어 태극기의 분리된 모양은 아직까지 적응이 잘 안 된다.


이처럼 일상에서 우리와 늘 함께하는 태극기를 누가 만들었고 사용했는지 정확하게 알려져있지 않다. 1949년 10월 15일 『국기시정위원회』에서 국기제정법을 발표하기 전까지 우리 선조들은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모양이 다른 태극기가 제작하고 사용하였다. 그렇다 보니 지금도 태극기의 시작에 대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1876년 일제가 조선을 침략하던 운요호 사건 당시 국기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논의가 이루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태극기가 처음으로 사용된 것은 1882년 미국과의 수교를 맺을 당시로 태극기의 모습은 지금의 건곤감리를 뜻하는 4괘가 아닌 8괘로 이루어져 있었다. 지금과 같은 4괘의 모습을 갖춘 것은 대체로 박영효가 수신사로 일본으로 갈 때 배 안에서 디자인했다고 이야기한다.(박영효가 태극기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논쟁이 있다.) 태극 문양과 4괘로 이루어진 태극기는 1883년 조선의 국기로 정식 채택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태극기

태극기가 우리의 국기가 되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일본에 맞서 조선을 속국으로 만들려는 청(淸)은 조선의 국기를 만드는데 많은 간섭을 했다. 청은 자신들의 국기였던 용기(龍旗)를 변형하여 사용할 것을 강요하였다. 조선이 청의 속국이라는 사실을 국기로 통해 세상에 알리고, 영원히 청의 뜻대로 움직이기를 바랐다. 그러나 조선은 청의 요구에 따르지 않았다. 조선은 500년 동안 실질적인 내정간섭을 받지 않는 자주국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오랜 고심 끝에 우리의 역사와 철학을 모두 담은 태극기를 만들어냈다. 특별히 예쁘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태극기에 담긴 의미를 살펴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태극기의 바탕인 흰색은 순수하고 밝은 성품을 가진 백의민족인 우리를 표현한다. 중앙에 있는 태극은 음과 양이 조화를 이루려는 모습으로 만물이 조화를 이루는 세상을 나타낸다. 그리고 4괘는 건곤감리로 하늘(건), 땅(곤), 감(물), 리(불)로 만물을 의미한다. 건곤감리를 구성하는 긴 선(─)은 양을, 짧은 선(‒)은 음으로 이 세상 만물이 변화하면서 조화를 이루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 세상에 자연의 이치를 모두 담은 국기는 태극기만이 유일하다.

태극기에 담긴 내용이 너무 완벽해서일까? 태극 모양이 중국의 것을 가져다 사용한 것이 아니냐는 논쟁도 있다. 중국보다 우리가 먼저 태극을 사용해왔다는 주장도 있지만, 현재 누구를 상징하는 문양이 되었는지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현재 대한민국을 중국의 속국으로 알고 있는 세계인이 얼마나 될까? 아마도 일부 중국인들밖에는 없을 것이다. 즉 태극과 건곤감리는 대한민국이고,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문양이다. 


오히려 태극기를 제대로 그릴 줄 아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싶다. 간단하게 태극기를 그릴 수 있을 것 같지만, 막상 그리려면 주저하게 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는 태극의 의미와 역사를 제대로 모르기 때문이다. 더불어 최근 태극기가 분열의 상징이 되어가는 것에서 벗어나 민족이 하나가 되는 단합의 상징이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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