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수도는 한성으로 오늘의 서울이죠. 이곳을 관할하는 관청은 한성부지만 중앙 관청인 육조와 동등한 권한과 책임이 주어졌어요. 이것은 나라를 운영하는 국왕이 사는 수도라는 상징적 의미도 있지만, 한성이 국가의 안위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에요.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인 한성과 왕의 안위를 책임져야 한다는 점에서 한성부가 국가의 안전을 책임지는 최전방에 있다고 본 거죠.
한성부는 1395년부터 1910년까지 515년간 존속했습니다. 그렇다면 한성부에서 하는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한성부는 육조처럼 육방 제도가 있어서 업무를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어요. 이방吏房은 관원의 근무 성적을 평가하여 승진시키거나 처벌하는 인사 업무를 담당하고, 호방은 서울인구와 가구 수를 조사하여 세금을 징수하고 시전을 관리하는업무를 담당했어요. 예방은 공주 등 왕실의 배우자를 선정하는 간택 절차를 주관하고, 묘지 분쟁 같은 소송을 처리했습니다. 형방은 도둑질이나 폭행 등 형사 사건을 담당하면서 시신의 검안까지도 맡아 처리했죠. 병방兵房은 궁궐과 도성을 순찰하고, 화재 예방과 진화를 담당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공방은 도로, 하천, 교량, 성곽 등을 보수하고 건설하는 일을 했어요.
그렇다면 한성부가 관할했던 구역은 어디일까요? 흥인지문-숭례문-돈의문-숙정문으로 이어지는 사대문의 한성 안쪽과 함께 도성 바깥 10리까지가 한성부 관할 지역이었어요. 오늘날 지명으로 보면 동쪽으로는 우의동·장위동·이문동·전농동, 남쪽으로는 중랑천에서 흐르는 물이 합류하는 지점에서 시작하여 한강을 경계선으로 했어요. 서쪽으로는 망원동·남가좌동·대조동에서 북한산 비봉으로 연결되는 선으로 하였고, 북쪽으로는 비봉에서 북한산 동쪽 능선이 되겠네요. 한성부가 담당했던 인구수를 보면 조선 전기에는 10만여 명, 조선 후기에는 20만여 명이에요. 당시로서는 한성부가 관리해야 할 면적과 사람이 너무 크고 많다 보니 5구역으로 나누고, 그 밑으로 52개의 방으로 세분화하여 관리했답니다. 지금의 행정 구역인 ‘구’, ‘동’으로 이해하면 되겠죠.
비록 지금의 서울과 비교하면 관할하는 면적과 인구의 수가 적지만, 조선 시대 한성부가 가진 역할과 권한은 현재보다 더 컸어요. 그것을 보여 주는 것이 한성부의 수장인 한성 판윤의 품계예요. 정2품이 되어야 임명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육조에 비견되는 관청임을 보여 주죠. 그 밑으로 종2품 좌·우윤 각 1명이 있었어요. 판윤은 지금의 서울특별시장이 되고, 좌윤과 우윤은 부시장이 되겠죠. 그 아래로도 판윤을 보좌하는 종4품 서윤, 행정 실무를 담당하는 종5품 판관, 군직을 담당하는 정7품 참군이 있죠. 여기서 끝이 아니라 그 밑으로 더 많은 인원이 한성부에서 근무했어요. 문서를 작성하거나 기록하는 서리 41명, 호적을 담당하는 서원 11명, 글자를 베껴 쓰는 서사 1명, 소송문을 담당하는 소차서리 3명, 행정 업무를 수행하는 대령서리 1명, 창고 등 관청의 자산을 관리하는 고직 1명 등 58명과 심부름하는 사령 47명, 관료를 모시는 관노인 구종 14명, 군사 7
명 등 총 130여 명이 한성부에서 근무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