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또한 영범이 엄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by 록록록

아기와 보내는 하루는 대체로 혹여나 부서질까, 잘못될까 늘 전전긍긍했다. 내가 없으면 아기는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았고, 떨어지는 시간만큼 잘못(?)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이론에 따르면 분리불안이 격정적으로 치닫는 13개월에 복직 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하지만 나의 깊은 걱정과는 달리, 아기는 생각보다 내가 없는 시간에 잘 살아가고 있다. 퇴근 후 칼치기 운전까지 해가며 집으로 달려갔던 내 모습이 의미가 없어질만큼 아기는 아빠와 잘 놀고, 잘 자고, 잘 먹는다. 예상외의 아기의 대처 능력에 감탄스러우면서 놀랍다. 이렇게 빨리 적응하다니?

첫째 주는 고통스러웠고, 둘째 주는 고통이 사그러들었으나 지속됐고, 셋째 주는 내 모습이 불쑥 나타나 혼란스럽다. [일을 좋아하고 재밌어 하던 나.] 어디가지 않고, 고스란히 숨어있다 툭 하고 존재를 드러낸다.

1년을 쉬었으나, 어제도 출근한듯 자연스러운 하루의 루틴. 일에 집중하고 있다가도 불쑥 아빠와 있을 아기의 모습에 가슴 한 켠이 울컥한다. 내가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하지만 걱정은 아무런 효능이 없다. 아기에게 갈 수도 없고, 일에 집중할 수도 없다. 나는 그저 내 시간에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할 뿐이다.

Do my best, as always.

시간이 지날수록 슬슬 아기에게 갇혀 있었던 내 시야가 조금씩 확장된다. 일의 감각이 오르는 느낌이 싫지 않다. 아기만 보고, 아기에게 모든 것이 집중되어 있었던 나의 감각이 조금씩 확장한다.

고통스럽지만 일과 육아의 교집합을 그리는 일을 지금 해보지 않으면 아마 나는 다른 일을 찾아가더라도 아마 포기해버릴 것 같다. 언제나 1순위는 ‘아기’니깐. 어렵고, 힘들다. 끝내 교집합을 그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일과 가정, 팽팽한 줄다리기를 계속한다는 것은 아마 영원히 끝나지 않을 일이겠지.

일을 포기하고 육아에 전념하는 것도 가치있다. 하지만 아마 나는 그렇게 되면 내 100%를 아기에게 쏟게 될테고, 어느 날..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라며 내 맘대로 되지 않을 때 아기에게 원망하는 날이 생길 것 같은 것이다. 아마도 널 위해 내 모든걸 포기한 배신감, 지나간 시간에 대한 후회 등이 버무려진 감정 따위가 아닐까.

나는 온순하게 내 말을 잘 듣는 아이로 키우고 싶지 않다. 아닌 것은 아니고, 아니다 싶으면 밥상을 엎을 줄 아는 금명이처럼 자신을 스스로 지킬 줄 아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싶다. 그렇다면.. 나부터 아기를 내려놓을 수 있어야겠지. 붙든다고 붙들릴게 자식이었다면 나또한 이렇게 자랐을 것인가?

결국, 부모님께 감사로 회귀하는 하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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