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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션 SEAN Sep 14. 2020

[일상] 칸트 같은 사람들

오전 07시, 매일 아침 수영을 마치고 나면 변함없이 이 풍경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그렇게 예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왠지 보고 있으면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이 기분을 함께 나누고 싶어 가까운 사람에게 문자를 보낸다. 역시 이 시간에는 답장이 없다. 적어도 한두 시간은 지나야 올 것이다.


오전 07시 05분, 아직 어스름이 가시지 않은 거리에서 매번 마주치는 여자가 있다. 패딩 후드와 마스크로 꽁꽁 싸맨 탓에 나이는 알 수 없다. 항상 무언가를 손에 들고 스쳐가지만, 그게 무엇인지 그다지 궁금해해 본 적은 없다. 만약 수영가방이라면 내 다음 시간에 수영을 하겠거니 하고 넘겨짚을 뿐이다. 사람은 역시 자기에 비추어 세상을 바라보기 마련이다.


오전 07시 08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잘 가지 않던 편의점에 들린다. 수영을 다니면서 갖게 된 버릇이다. 딱히 뭔가가 필요해서 가는 건 아니다. 단지 그 시간에 일하시는 점장님이 인상 깊어서 자꾸 찾게 된다. 점장님의 생김새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어디 IT업계에서 엔지니어로 한 십 년 종사하다, 에라 이렇게는 못 살겠다 하며 때려치우고는 나와 편의점을 차린 것처럼 보인다. 언제나 지쳐 있는 얼굴로 인사만큼은 커다랗게 해 주신다. 시선은 아래를 바라보고 있는 게 포인트다. 우유 하나를 사도 맛있게 드십시요, 하고 큰 소리로 말하며 노란 빨대 하나를 슬그머니 함께 놓아준다. 그래서 아침마다 우유를 마시게 되었다.


오전 07시 12분, 한 손에 우유를 들고 길모퉁이를 돌면 이차, 하며 오르막에서 아저씨 한 분이 내려온다. 옆에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는 진돗개 한 마리가 함께다. 진돗개인데도 어쩜 이렇게 예쁘게 생겼을까는 생각이 들만큼 예쁘다. 새하얀 털에 빨간 옷이 꽤나 잘 어울린다. 아저씨는 언제나 이 시간에 개와 산책한다. 매번 걷지 않고 뛰는 걸 보면 본인 건강도 생각하시는 모양이다.


오전 07시 13분, 내가 사는 이곳은 대학가지만 24시간 여는 카페는 엔제리너스 하나뿐이다. 그 탓에 한 곳으로 몰리는 손님들에 치여 야간 알바생들은 늘 뾰로통해 있다. 이 친구들에게 교대 전 청소까지 시킨다면 아마 쟁의가 일어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다행히도 사장도 그 고충을 아는지, 따로 청소해주시는 아줌마를 쓰고 있다. 이 시간이면 아주머니가 거의 청소를 마치고 나와 담배를 한 대 피우신다. 꽤 매장이 넓어 쓸고 닦는 게 여간 보통 일은 아닐 것 같다.


그리고 오전 07시 15분, 내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와 헤어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린다. 수영장 샤워실에도 드라이어가 있지만 동전을 넣고 써야 한다. 이런 불만을 동생에게 토로했더니 여자들은 원래 다 그렇게 쓴단다. 하지만 나는 지금껏 한 번도 동전을 넣고 머리 말리는 남자는 본 적 없다. 이게 진정 성 평등으로 나아가는 것인가는 생각을 하며 이 포스트를 쓰고 있다.


이제 아침을 먹고, 정말 하루를 시작해야 하는데, 벌써부터 너무 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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