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밤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동안에는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 황동규, 『즐거운 편지』
내가 이 시를 처음 만났던 건, 시라고는 거들떠도 보지 않던 시절,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를 통해서였다. 지금도 좋아하는 시를 꼽으라면, 세 손가락 안에는 꼭 들어갈 만큼 사랑하는 시다. 나도 나를 잘 모르겠어, 의 대표적인 표본인 혈기왕성한 남고생들 사이에서도 이 시만큼은 가슴에 품고 다니던 친구들이 많았다.
이 시를 처음 본 순간, 나는 가슴이 지잉 하는 걸 느꼈다. 그 순간만큼은, 연신 밑줄을 그어가며 판서를 빠짐없이 필기하던 짝이나, 칠판에 분필을 집어던져가면서까지 나른한 5교시 수업에 열심이던 선생님이 내 안중에서 사라졌다.
머릿속에서는 갑자기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하고 뭉툭한 통나무집이 그려지고, 실내의 어스름한 노란 불빛 아래 하염없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내가 있었다.
여자의 눈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던 시절, 사랑이라고는 부모에게서 밖에 받아보지 못했던 시절이지만, 내 가슴에는 애틋하게 사모하는 누군가가 생겨났고, 나는 하염없이 그녀를 기다리게 되었다. 단지 수업 시간이 지루했던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러면 어떠랴. 얼마나 이 시가 잘 쓰였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나는 편지 그 자체를 좋아한다. 받을 때도 좋지만 쓸 때에도 좋다. 꼭 멀리 있는 누군가가 아니더라도,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관계에서도, 나는 편지로 이중적인 연결고리를 만들어 두는 걸 좋아한다. 그러면 혹여나 어느 하나가 흔들리더라도, 그걸 바로잡아줄 다른 하나가 있어 안심이 된다.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누군가에게 편지를 받았다. 조금 웃음이 나기도 하지만 나는 이 따뜻한 낯간지러움을 사랑한다.
온종일 집안에만 있었더니 받은 편지만 여러 번 읽게 된다. 애정 하는 마음이 하늘에 닿아 비가 되어, 정말 바다로 다시 흘러드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온몸을 다해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