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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Jan 15. 2019

너 분명 후회할 거야

내 시험지에 빨간 펜을 쥐고 채점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다

 

 "이거 답 3번이지?"

 "아냐. 너 빼고 다 5번 했어."

 "아 뭐야, 또 틀렸어."


 학창 시절, 50분 시험이 끝날 때마다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답을 맞춰 보았다. 정답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는 다수가 선택한 게 곧 답이 됐다. 진짜 답은 모든 시험이 끝나야 나온다는 걸 알면서도 주변과 다른 답을 선택했을 때의 그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다. 시험이 끝나면 대충 답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진짜 답안지와 비교해 본다. 모두 답이 5번이라고 말해서 빨간 색연필로 찌익 사선을 그어 놓은 문제가 사실은 정답이 3번이었을 때 나는 기분 좋은 반쪽짜리 동그라미를 그렸다.


 만약 이 시험을 혼자 보는 게 아니라면 어땠을까. 대화 없이 다른 사람들의 답안을 보여주고 답을 바꿀 기회를 줬다면 나는 그래도 3번을 선택했을까? 아마 3번은 고르기 어려웠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답안지를 보여줘야 할 경우 더 그렇다. 나의 풀이와 해답보다 주변의 답에 눈을 돌리게 된다. 수많은 5번 사이에서 3번을 선택한다는 건 용기가 필요하다. 물론 항상 다수의 답이 정답이 아니란 건 안다. 그냥 많은 사람들이 선택한 답. 그 이상의 의미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눈치를 보게 된다.








 결정이 어려울수록 오히려 터무늬 없는 것에 판단을 맡기고 싶어 진다. 누군가는 동전을 던져 앞 뒷면을 살폈고 신앙을 믿는 자는 초월적 존재에게 물었으며 또 다른 사람은 자신의 사주팔자에 의존했다. 모두 방법은 다르지만 책임회피를 한다. 제발 누구라도 좋으니 지금 닥친 문제에 정답을 내려주길 바라는 마음. 내 인생이라는 시험지에 빨갛고 예쁜 동그라미만 가득했으면 하기에 우리는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한다. 다수의 판단은 혼자 내린 판단보다 정확할 거라고 믿고 있다. 또 일이 잘못된다 하더라도 장난으로 '그러게 그때 나를 말리지 그랬어!'라고 어깨를 툭 치며 책임을 떠넘길 수 있다.


 하지만 내 의지로 고르지 못한 선택지는 '혹시 그게 답이지 않았을까.'라고 생각되며 추억 속에서 한없이 미화된다. 해보면 '별게 아니었네.' 할 수 있는 것도 해보지 않아서 별거였는지 아니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때 걔 말을 듣지 말았어야 해.' 결국 남의 결정에 의존하게 되면 후회까지 남 탓을 한다. 그렇게 나를 평가하는 것도 남, 책임도 남에게 묻는다면 어떻게 그게 내 인생이 될 수 있는가. 자신을 마음껏 후회하는 것 또한 온전히 자기 뜻대로 결정한 사람만의 특별한 권리다.


 우리가 마주치는 모든 문제에서 찍지 못한 다른 답은 매력적이게 보일 것이고 항상 눈앞에 아른거릴지 모른다. 그렇기에 모든 걸 후회하지 않는 완전한 삶이란 없다. 하지만 후회를 받아들이는 삶은 있다. '그래, 그때 이 선택지를 골랐으면 조금 다른 삶이 있었겠지. 하지만 나는 내가 고른 삶을 살고 있어.' 조언은 감사히 듣되 내 선택을 존중하고 용기를 가질 것. 내 삶에 어떤 것을 오답으로 매기고 어떤 것을 정답으로 매기느냐는 나만이 판단할 수 있는 문제다. 누군가 '그건 틀렸어!'라고 말하더라도 내가 선택한 답에 동그라미를 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우리는 스스로에게 만점짜리 시험지를 안겨줄 수 있다.






글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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