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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Jan 22. 2019

그러게 조심 좀 하지 그랬어

오늘의 속담 : 때린 놈은 펴고 자도 맞은 놈은 오그리고 잔다


 친구와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가 처음 한 회식 자리였다. '참 달리씨는 술을 잘 마시네!'라는 말에 한두 잔 주는 것을 단호히 거부하지 못하고 마신 것이 테이블을 빼곡히 채웠다. 곧 집에 가기 위해 우리는 짐을 챙겼고 친구는 화장실을 잠시 갔었나. 졸려서 고개를 꾸벅이고 있는데 갑자기 앞쪽에서 손이 날아와 내 머리를 홱하고 오른쪽으로 꺾었다. 옆통수가 얼얼해지자 순간 정신이 든다. 뭐지, 나 지금 맞은 거야?


 낮에 인상 좋게 웃었던 상사는 온갖 쌍욕을 퍼부으며 자기를 무시하냐고 소리 질렀다.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또 날아오는 손을 화장실 갔다 온 친구가 다급하게 막았다. 음식집 사장님은 경찰에 신고를 했고 CCTV는 그때의 상황을 소리 없이 지켜봤다. 잠깐 정신이 들었을 때 문으로 들어오는 경찰을 보자 마음이 놓였는지 순간 눈물이 나왔다. 경찰서로 신고 접수하러 가겠냐는 말에 순간 무서워서 당장은 집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친구와 집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나는 아픈 머리를 쥐고 생각했다. 어떻게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났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내가 혹시 무슨 실수 했나요?'라는 연락이 와있었다. 아무래도 때린 사람은 필름이 끊긴 것 같다. 마치 어제 맞은 게 나 혼자만의 일인 것처럼 나를 빼고 주변이 다 멀쩡하게 돌아간다. 굳게 마음먹고 경찰서 앞까지 가면서도 몇 번을 다시 되돌아갔다. '나만 참으면 되지 않을까.', '그래도 내가 이유 없이 맞았잖아.'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번갈아가며 어지럽힌다. 정신없이 걷다 보니 어느새 나는 경찰서에서 몇 개의 서류를 적고 있었다. 이럴수록 나를 지켜야 한다고 굳게 마음을 먹으면서 담당 형사를 만나 어제 사건에 대해 침착하게 이야기했다.


 "그러게 왜 늦게까지 술을 드셨어요."

 "네?"

 "아니 아무리 친구가 옆에 있어도 젊은 여자가 위험하게"


 형사의 말에 나는 어제 맞은 곳 보다 정신이 얼얼해지는 걸 느꼈다. 내가 잘못을 했던가. 엄연히 그 사람이 과음하고 자기 화를 주체하지 못해 날 때렸는데 내가 제정신이면 맞을 일이 없었다는 말일까. 침착하게 어제 일을 얘기할 때도 꾹 참고 있던 눈물이 '그러게 왜 늦게까지 술을 먹어서 맞았냐.'라는 말에 가슴 응어리 아래서 솟구쳐 눈두덩이 밑까지 차올랐다.


 "제가 술을 먹은 게 잘못인가요."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죠. 내 딸 같아서 그러지. 걱정이 되니까."

 "때린 사람이, 때린 사람이 잘못한 거잖아요."

 "……."

 "그 사람이 나쁜 놈이잖아요."






 때린 놈은 다릴 못 뻗고 자도 맞은 놈은 다릴 뻗고 잔다는 말은 생각해보면 아주 틀렸다. 맞은 놈은 자기가 맞은 걸 증명하기 위해 여기저기 많은 사람들을 거쳐야 하지만 때린 놈은? 가만히 있다가 운 좋으면 넘어가는 거고 아니면 처벌받는 거고 딱 거기까지다. 때린 놈은 고소장 날아오기 전까지 아주 잘잔다. 하지만 맞은 놈은 모든 게 불안하다. 이런 일을 겪었기 때문에 또 일어날 수 있다는 불안감,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유난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불안은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맞은 놈은 맞은 데가 아파서가 아니라 불안하고 무서워서 다릴 뻗지 못한다. '내가 그때 조심했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하며 과거의 장면을 리플레이, 다시 리플레이, 또 리플레이한다.


 우리는 살면서 조심하는 법을 참 많이 배운다. '너무 짧은 옷은 입지 말 것.', '밤늦게까지 돌아다니지 말 것.', '아무나 쉽게 믿지 말 것.' 불행을 피하는 방법 참 가지각색이다. 이런 예방법은 피해가 생기지 않기 위함이지만 뻔뻔한 가해자들은 그저 책임 분담의 도구로 사용한다. '짧은 옷을 입었기 때문에', '밤늦게까지 돌아다녔기 때문에', '네가 사람을 그렇게 쉽게 믿었기 때문에'라고 역으로 말한다. 하지만 가해자만 이렇게 말하는가? 실제로 피해자는 가해자보다 제 3자에게 이런 말을 더 많이 듣는다. 걱정이란 이유로 얼기설기 포장해놓은 짱돌은 아픈 사람을 또 쥐어박는다. '그러게 왜 조심을 안 했어?'


 



 하지만 그 제 3자 또한, 아무리 조심히 발을 내딛어도 화장실 바닥이 미끄러워 넘어지는 날이 있다. 또 다시 넘어지지 않으려 화장실 바닥에만 너무 집중한 나머지, 화장실 수납장에 머리를 박고 뒤로 자빠질 수도 있다. 우리는 살면서 아무리 조심해도 10초 뒤의 미래를 몰라서 항상 위험에 노출된다. 모든 미래를 아는 신이 아니라면, 그 누구에게도 '한 치 앞을 모른 죄'를 물을 자격이 없다.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다녀도 뒤통수에는 눈이 달려있지 않아서 뒤로 자빠질 수 있는 것. 이게 바로 현실이다.

 

 때문에 우리가 겪은 불행은 미래를 모른 우리 탓이 아니다. 불행한 일이 닥치면 나를 충분히 연민해야지 왜 피하지 못했냐고 자책하는 건 내가 나를 가해하는 행동이다. 손을 들어 때린 사람, 맞은 사람 중에서 가장 빨리 그 손을 내릴 수 있었던 사람은 때리려고 마음먹은 사람뿐이다. 당신이 아픈 건 미래를 모른 당신 잘못이 아니기에 아프다면 충분히 아파하고 위로받아야 한다. 훌훌 털고 일어나는 것은 상처가 아문 뒤, 나중의 일이다.







글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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