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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달리 May 29. 2019

애매한 재능으로 뭘 할 수 있겠어

다 죽은 그루터기를 핥아봐도, 거기서 열릴 사과 맛은 알 수가 없다


 애매하다는 평은 재능에 대한 사망선고다. 모든 사람의 재능을 1등부터 100등까지 줄 세울 수 있다면, 애매함은 50등이나 60등 정도지만 체감 상으로는 더 하찮게 여겨진다. 심지어 범접할 수 없게 잘하는 사람이 주변에 있을 시 그 가치는 0. 평범하다는 말은 꼭 쓸모없다는 말 같다.


 대학을 다닐 때, 타과생에게도 존경받는 학생이 있었다. 통칭 다 잘하는 애. 싹수가 없어도 인간미라 부를 수 있었을 텐데 성격까지 좋았다. 천재인데 노력도 완벽해서 교내에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 애와 나는 과가 다르니까 평생 마주칠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어쩌다 보니 수업을 같이 듣게 되었다. 솔직히 그 수업은 걔의 전공이 아니었고, 그래서 ‘설마 이것까지 잘하겠어?’ 싶었다. 응, 걔는 그것까지 잘했다. 만약 인생이 게임이라면 혼자만 치트키를 쓰거나 불법 핵, 아니면 버그인 게 분명했다. 신은 나에게 애매한 스탯과 더러운 성격까지 줬는데 쟤는 안 갖춘 게 없었다. 천재는 존재만으로도 인생 게임 내 밸런스를 붕괴시켜 버렸고, 매 수업마다 그 애를 보면 눈이 깨이는 경외스러움과 멘탈이 깨지는 열등감을 동시에 느꼈다. 아, 수업 가기 더럽게 싫다. 적당히 잘하면 경쟁상대겠지만 천상계가 옆에 있다면 달랐다. 이 게임, 그냥 삭제시켜 버리고 싶었다.


 “나 철회하려고.”

 “그 수업 들어보고 싶었다며? 왜?”

 “이쪽으로는 재능이 없는 것 같아.”


 그래서 중도포기를 했다. 쟤랑 비교했을 때 내 재능은 애매해 보였다. 나는 그 수업에 소질이 없는 게 확실해. 겉으로는 천재의 비범함을 탓했지만, 실은 나의 애매함에 의욕을 잃었다. 그렇게 모든 걸 내 재능 탓으로 돌렸다. 애매한 재능은 가치가 없으니까, 이건 해봤자 내가 지는 싸움이다.






 탁월한 재능은 무엇일까? 손가락 튕기듯 쉽게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거나, 항상 누구와 경쟁해도 1등이거나, 다수가 내 결과를 우러러볼 때쯤 되어야 그 재능을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을까? 나는 평생 이것저것 건드리고 여기저기 쏘다녔지만, 아직도 내가 제일 잘하는 게 뭔지는 모르겠다. 공부도 중간, 운동도 중간, 뭘 하든 어중간 인생을 살았다. 그러니 중도 포기한 것들도 많았다. 끝을 예상해봐도 남보다 못한 결과가 이미 내 눈에 훤히 보여서, 지레 겁을 먹고 뒷걸음질 쳤다.


 스스로 결단하여 돌아선 길은 후회하지 않는다. 하지만 남이 너무 잘나고, 내가 너무 못나보여서 포기한 길은 가끔 눈 앞에 아른거린다. 항상 내 결과물은 엉성하고 못생겨 보였고, 기한을 넘겨 준비한 것조차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와 달리 남들은 문제없이 잘만 해내는 거 같았다. 어차피 이 경기의 결말이 뻔해 보여서, 나는 끝은커녕, 중턱을 넘기도 전에 백기를 들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내 재능이 애매했어.


 그런데 가끔 뒤늦게 꽃 피운 사람이나, 어떻게든 버티면서 그 길을 당당히 걷는 사람을 보면 의문이 싹튼다. 사실 나도 저럴 수 있지 않았을까. 나는 내가 가진 것보다 남이 가진 재능을 보느라 바빴고, 1분짜리 예고편을 보며 끝나지도 않은 영화의 결말을 단정 지었다. 생각해보면 그 시절, 애매했던 건 재능이 아니라 자존감이었다. 어쩌면 나는 괜찮은 재능을 애매한 자존감으로 깎아내렸을지도 모른다. 역사는 시간이 흐르고 한참 지난 후에야 결말을 알 수 있는데, 나는 무엇이 그렇게 급해서 설익은 사과를 따먹더니, 떫다고 욕하며 나무를 잘라버렸을까. 곱게 키웠다면 특품까진 아니어도 그럭저럭 먹을만한 게 열렸을지도 모르는데. 맛있는 사과든, 맛없는 사과든 덜 익은 것들은 다 떫은맛이 난다.


 애매한 자존감으로 인해 포기한 벌은 간단하다. 사과나무를 미리 베어버렸으니, 나는 거기에 열릴 잘 익은 사과의 맛은 평생 모르고 살 것이다. 그러자 중도 이탈했던 수많은 과거의 내가 야속해졌다. 그 과육이 맛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한 번이라도 제대로 맛보았어야 했는데. 맛없는 사과도 한 번은 베어 물고 팩 뱉었다면 속이 후련했을까? 오래전부터 내 등쌀을 떠밀었던 게 애매한 재능이었는지, 아니면 애매한 자존감이었는지 지나간 시간에 물어본다. 하지만, 그루터기만 남은 나무는 아무 답도 해줄 수가 없다.




글쓴이의 말

꼭 1등만 먹고사는 건 아닌데 말이죠. 아무튼 그 나무의 과육 맛은 몰라도, 후회가 쓰다는 건 알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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