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에 갔는데, 낭만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은 없더라고요
"넌 멋진 일로 보람도 얻고 좋겠다."
돈이랑 바꿀 수 없는 가치 있는 일이잖아!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멋지고 가치 있는 일, 예술이 남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는 걸까? 나는 머쓱하게 웃어 보였다. 친구와 헤어지는 길에 오면서 곰곰이 생각해봤다. 멋진 일과 멋지지 않은 일은 뭘까. 가치가 있거나, 없는 일은 있는가. 여러 일을 거쳐 어쩌다가 다시 그림을 그리고 있지만, 이것도 먹고살려고 하는 일이었다. 나는 누군가의 존경을 받거나, 역사적으로 대단한 획을 긋기 위해 사는 게 아닌데, 창작이나 예술은 남들 눈에 그렇게 보이는 걸까. 좋은 말을 듣고도 텁텁하고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는 조형대학 건물을 지나쳐야 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조형예술학과가 있는 7층은 학생들의 야간작업으로 한낮같이 밝게 빛났다. 나는 잠시 멈춰 서서, 밤에도 밝은 그 건물을 바라봤다. 7층의 작업실은 오전의 햇빛을 가리려고 현수막으로 창문을 가렸는데, 낮에는 잘 보이지 않던 현수막 속의 문구가 밤이 되니 내 눈 안으로 들어왔다. 명조체의 커다랗고 두꺼운 획이, 작업실의 불빛으로 인해서 한자씩 힘주어 빛났다.
"예술가도 노동자다."
어두운 밤에 그 문장을 볼 수 있다는 건, 누군가 밤늦게까지 불을 켜놓고 있기 때문이다. 잠시 멈춰 글을 곱씹는데, 친구의 별 의도 없는 칭찬이 왜 머쓱했는지 깨달았다. 보람이라느니, 멋지다느니 그런 건 일전에는 들어본 적 없는 말이었다. 내가 했던 많은 일 중에서 예술만 꼭 형이상학적인 가치가 대단한 듯 말하니까 어색했던 것이다. 뭐든지 돈을 벌려고 하는 일인데, 이것도 그저 노동일뿐인데. 돈이랑 바꿀 수 없는 가치라니 참 고마운 말이지만, 고맙지 않은 말이다. 말의 맛이 씹을수록 영 씁쓸하다. 남의 눈에 멋지지 않아도 되니, 나는 그냥 일하는 만큼이나 받았으면 좋겠다. 칭찬이 고래를 춤추게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걸로 라면을 사지는 못한다. ‘멋지다.’라는 말만으로는, 아무것도 살 수가 없다.
나는 미래의 노동자들로 발광하는 문구를 뒤로하고, 내일의 노동을 위해 집으로 걸어갔다. 예술가도 노동자다. 예술가도 노동자다. 나는 말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한참을 곱씹었다. 차라리 멋지다는 칭찬보다, 이 말이 더 달달한 것 같아서.
일은 시키고 싶은데 페이는 주기 싫을 때, 사람들은 돈 대신 보람만 쥐어준다. 그 일은 험하고 네가 하는 것에 비해 돈은 적게 벌지만, 사회적 가치가 어마어마해서 세상을 바꿀 거야. 비록 (네 월급의) 시작은 초라할지 몰라도 그 끝은 창대할 거야. 넌 내게 노하우를 배우고 있잖아? 이건 돈을 주고도 못할 경험이야. 어차피 네가 아니어도 쓸 사람은 수두룩 빽빽이니까, 불만이면 네가 나가던지! 이런 말들을 당연하게 지껄인다. 심지어 스스로를 선생으로 우리는 학생으로 취급하면서, 젊은이들에게 일이 아니라 위계를 가르치고, 언제 해도 힘든 도전을 청춘에게는 꿈과 낭만이라고 포장한다. 아주 신고 없이 하는 불법과외가 따로 없다.
아이러니하다. 노동으로 교환할 수 있는 정당한 가치는 임금이라 배웠는데, 돈을 달랬더니 경험이나 보람, 낭만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낭만으로는 식당에서 밥 한 끼도 얻어먹을 수가 없고, 옷 한 벌도 입을 수가 없다. 낭만으로 은행에 가서 적금을 든다고 하면 미친 사람 취급받을 게 뻔하다. 이렇게 낭만은 십 년을 넘게 모아도 집 한 채의 전세 값도 되지 않는다. 노동이란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한 일이라던데, 낭만으로는 의식주 어느 하나도 해결할 수가 없다. 노오력과 열정을 물리쳤더니, 이제는 낭만으로 직군 자체를 미화시켜버린다.
실컷 뼈 빠지게 일했더니, 낭만 따위를 페이로 주는 건 이런 느낌이다. 힘겹게 동료를 모아 보물을 찾아서 마왕을 물리치고 죽을 고비를 넘겼더니, 조력자 롤인 백발의 할아버지가 비어 있는 보물 상자 위에 앉아서 수염을 쓰다듬으며 이런 말을 한다.
"사실 보물은 너희들의 여정 그 자체란다! 노력과 땀, 바로 옆에 있는 전우와 동료애가 보물이다!"
하지만, 할아버지? 그건 당신이 준 게 아니라 제가 찾은 건데요. 왜 제걸로 생색을 내시는 걸까요. 누구든 일을 시키기 전에 보물을 약속했으면, 보물을 주는 게 맞다. 냄새나는 땀방울 가지고는 빵조각 하나도 살 수가 없고, 보물 없이 경험만 얻으려 했으면 봉사를 했을 것이다. 누군가 내게 7살도 속지 않을 거짓말을 천연덕스럽게 해댄다면, 어떻게 그를 내 삶의 조력자라고 할 수 있을까? 아마, 옛날 만화영화에서 청춘을 바쳐 마왕을 무찌른 영웅들이 꼭 했어야 할 말은 '낭만은 내가 알아서 챙길 테니, 당신은 보수를 주셨으면 좋겠습니다.'였을지도 모른다.
글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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