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치도 어딘가에는 도착한다
인터넷에서 길치들의 특징을 정리해놓은 글을 봤다.
1. 지름길 말고 자기가 아는 길로 간다.
2. 낯선 곳에선 무조건 택시를 탄다.
3. 오른쪽, 왼쪽이 헷갈린다.
4. 낮에 갔던 길을 밤에는 못 간다.
5. 지도를 봐도 길을 모른다.
6. 내 위치를 설명 못한다.
7. 길을 잃은 걸 알아도 안 멈춘다.
전부 다 맞지는 않지만, 나도 어느 정도는 해당된다. 일단 지도가 있지만 잘 볼 줄 모르고, 몇 번을 왔던 길도 매번 새로워 보인다. 길을 잃어도 계속 걷는데, 그러다 보면 이상한 곳에 도착해서 택시를 타고 돌아가거나 ― 처음부터 택시를 타지는 않는다. 금방 찾을 것만 같아서. ― 한 번 골목길로 빠져서 그 길에 꽂히면 지름길이 아니어도 그 루트로만 간다. 똑바로 길을 가다가도 샛길로 빠지는 편이고, 모르겠으면 일단 직진한다. 직진하는 이유는 혹시나 잘못 가더라도 뒤돌아서 반대로 가기만 하면 원래 있던 곳에 도착하기 때문이다. ― 하지만, 8할 정도는 왔던 길을 까먹어서 유턴을 해도 영 다른 곳에 도착한다. ―
그래도 같은 장소를 자주 가면 여러 번의 경험으로 목적지까지 가는 다양한 루트를 발견하게 된다. 대게는 큰길보다는 샛길이 많다. 자취방으로 이사 가던 첫날에 나는 부지런히 헤매다가 지하철역에서 집까지 가는 길을 최소 다섯 가지는 알게 됐고, 모든 루트는 풍경과 소요시간, 용도가 제각각 달랐다. 어떤 길은 경찰서를 끼고 도니까 밤에 오기 안전했고, 다른 길은 테이크 아웃하기 좋은 카페와 공원이 있어서 아침에 애용했으며, 또 다른 길은 버스 정류장까지 가장 빨리 갈 수 있었다. 뭐, 당장 급한 약속이 없을 때는 길을 잃어보는 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다. 한 곳으로 향하는 여러 가지 길을 알고 있으면 이렇게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살면서도 딱히 지름길만 걷진 않았다. 큰 조류를 따르다가도 오만가지 딴짓에 눈을 돌렸고, 남들이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걸을 때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한참을 방황했다. 대신 대부분의 길치들이 그렇듯 발 가는 대로, 마이웨이로 걸었다.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면, 길을 헤매는 게 꼭 최악은 아니었다. 반대로 생각하면 지름길만 아는 사람보다 더 많은 풍경을 수집할 수 있고, 계속 걷다가 발견한 특별한 장소에서 정착할 수도 있었다. 나는 항상 길을 잃어도 어딘가에는 도착했다. ― 물론, 내가 의도한 장소는 아니지만. ― 다행히 인생은 친구와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가 없으며 내 삶의 목적지도 스스로 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방황하는 건 길을 잃은 게 아니라 찾는 게 아닐까. 어쩌면 길을 잃은 모두는 삶의 종착점을 향하는 여러 플랜을 만들어가는 중일지도 모른다. 생에 다양한 플랜을 가진 사람은 플랜 A만 가진 사람보다 더 나은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누구도 뛰어난 준비성을 비난할 자격은 없다.
그러니까 누군가 우리에게 ‘너 길을 잘못 든 것 같은데, 바보야 그거 아니야.’라고 면박을 주더라도 ‘나 원래 여기로 오려고 했거든?’이라고 받아치는 뻔뻔함을 기르도록 하자. ― 어차피, 내 목적지를 걔는 모른다. 내가 아니라는데 어쩔 거야. ― 사는 것은 어디든 확신을 갖고 떠나는 길치의 당당함과 잘못 들어선 길도 마음에만 든다면 편히 앉아 쉴 수 있는 무던함이 필요하다. 그래서 당장 내가 길을 잃은 것 같더라도 주눅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발 닿는 모든 곳이 길이기에, 다행히 우리는 길을 잃은 순간에도 길이 아닌 곳을 걸은 적은 없다. 결국 인생은 남들 눈에 그럴싸한 목적지로 가는 게 아니라, 내 맘에 드는 풍경을 찾는 것이다.
글쓴이의 말
어느 문제든 어려울수록 풀이 과정이 길고, 푸는 방법은 여러 가지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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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쓴 <나다운 건 내가 정한다>가 출간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