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 담담함

체호프 단편선을 읽고

by ㅇㄷㅌㅌ

그리고...죽었다.


체호프 단편집의 첫번째 에피소드를 주욱 읽어나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주인공이 죽어버리더니 끝났다. <관리의 죽음>이라는 타이틀에서 어느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지만 이건 너무 갑작스러웠다. 내용을 짧게 요약하면 이렇다. 회계공무원인 주인공이 오페라를 보다가 재채기를 했는데 앞에 앉아잇던 고위직 장군 머리에 튀어버렸다. 주인공은 놀라 너무 죄송한 나머지 몇번이고 죄송하단말을 했지만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다음날 장군의 사무실에 찾아가 제대로 사과를 한다. 하지만 쉬원찮은 대답을 들은 주인공은 다음날도 찾아가지만, 장군으로부터 대뜸 꺼져버려!라는 말을 듣곤 집에와서 털썩 쓰러져 죽는다.

삶을 마감하는 그 순간에 대해 과연 이보다 더 단순하고 담담하게 묘사할 수가 있을까. 집에서 키우던 선인장이 메말라 죽었을때도 난 이렇게 담담하지 못했다. 누구나 언젠가 죽는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런.데 갑.자.기 그렇게 죽어버리면 너무 허무하지 않은가. 작가는 마치 이런 독자의 당혹스러움을 예상이라도 한듯 첫페이지에 주인공이 재채기하는 순간, 괄호하고 이렇게 써놨다. "소설에서는 이 <그런데 갑자기>와 자주 마주치게 마련인데, 작가들이 그러는 것도 당연하다. 인생이란 그처럼 예기치 못한 일로 가득 차 있으니까!"


단편집의 구성이 절묘했던 부분은 이러한 체홉의 죽음에 대한 담담한 묘사가 마지막 편인 <주교>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살아생전 정신적 지도자로 추앙받던 주교가 죽고 새로운 대리 주교가 왔다, "...그리고 사람들은 완전히 그를 잊어버렸다. 시골의 늙은 어머니만이 동네사람들에게 자신에게는 주교인 아들이 있었다고 말하곤 했다. 그리고 사실 모두가 그녀의 얘기를 믿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 누구나 죽고, 죽으면 쉽게 잊혀진다. 존재의 흔적은 언젠가 믿거나 말거나 정도로 희미해진다. 죽음의 관점에서 보면 삶이란 그렇게 사무치게 허무한거다. 의사이기도 했던 체홉은 이것을 진즉에 깨닫고 극적 절정의 순간에서도 흥분하지 않았나보다. <공포>에서 한 남자는 친구가 자신의 아내와 바람을 핀 순간을 목격하고도 인생이라는 이해할수 없는 두려움에 대해서만 골몰한다. 소설 곳곳에서 사랑과 경멸, 허무와 환희가 소용돌이 치는 상황들이 매우 사실적으로 느껴지는데, 그 이유를 가만 생각해보니 작가의 담담함이 오히려 독자를 애타게 만들어서 자발적으로 다가가도록 만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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