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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이것이 왕릉의 품격이다

신라 제33대 성덕왕(691년 추정~737년)

by 작가의숲

성덕왕릉에는 나만의 추억이 있다. 그건 바로 초등학교 때 찍은 한 장의 사진이다. 사진 찍는 걸 유난히 싫어하는 내가 어떻게 사진을 찍었을까 싶었다. 모르긴 해도 아마도 단체사진이라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내 표정을 봐도 그렇다. 촌스럽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흑역사도 역사이듯이 그렇게라도 기록이 남아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그 당시 성덕왕릉에 대해 제대로 알았을 리 만무하지만 그래도 왕릉 바로 앞에서 찍은 사진 덕분에 다시 한번 찾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으니 어찌 되었든 고마운 일이다.


효소왕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사람은 김흥광, 효소왕의 동생이자 신문왕의 둘째 아들인 제33대 성덕왕(재위 701∼737)이다. 성덕왕은 효소왕의 친동생으로 형제의 능은 나란히 있다.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부터가 효소왕릉과는 사뭇 다르다. 효소왕릉이 소박하다면 성덕왕릉은 화려하고 웅장하다. 무덤의 크기뿐 아니라 정교하게 조각된 둘레석부터가 왕의 무덤답다.


성덕왕릉은 한마디로 완벽하다. 둘레석과 돌사자상과 석인상까지 모두 갖춘 왕릉이다. 입구에는 무인상, 네 모서리에는 사자상이 자리 잡고 있다. 요즘으로 말하면 왕릉이란 모름지기 이렇게 만들어야 한다는 하나의 표준모델에 가까운 곳이다.


사실 성덕왕이 36년 동안 나라를 잘 다스린 성군으로 인정받으며 신라의 최대 전성기를 이끌었다는 걸 생각하면 ‘성덕대왕’이라 부르는 이유가 짐작이 간다. 그럼에도 경주를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 성덕왕릉은 낯설기만 하다. 동해남부선 기차가 다닐 때는 기찻길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경고문 때문에 접근이 까다로운 땅이었다. 1999년 인근의 내동초등학교가 폐교되고 난 이후 한국광고영상박물관이 들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이 제법 오가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문을 닫은 후에는 초입부터가 폐허 같아 망설여지는 그런 곳이다. 거기에 왕릉이 있는 줄 아예 모르는 경우가 더 많다. 그 안에 신라 천년의 역사가 숨어 있는 줄 미처 상상하지도 못한 채 말이다.


성덕왕릉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단연 12 지신상이다. 12지는 땅을 지키는 신으로 얼굴은 동물이지만 몸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중국에서 만들어져 동아시아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그런데 놀라운 건 왕릉에 12 지신상을 배치한 것은 신라인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라는 점이다.


여기에 성덕왕릉의 12 지신상은 한 발 더 앞서간다. 경주에 있는 고분 중에 성덕왕릉, 원성왕릉, 경덕왕릉, 진덕왕릉, 헌덕왕릉, 흥덕왕릉에 12 지신상이 있고 어느 왕의 무덤인지 확실하지 않은 구정동 방형분, 그리고 왕릉은 아니지만 김유신장군묘, 능지탑에도 있다. 이들 12 지신상은 모두 돋을새김(부조)으로 돼 있고 성덕왕릉만 유일하게 입체적인 두리새김(환조)으로 돼 있기 때문이다.


왕릉을 지키는 무인의 복장으로 배치한 것도 무척 흥미롭다. 다만 12종류의 동물 대부분의 머리가 없다는 점은 조금 아쉽다. 조각상의 섬세했던 원래 모습도 많이 퇴색되어 있다. 온전한 모습을 하고 있는 건 원숭이와 닭 지신상 정도이다. 그마저도 훼손이 우려됐는지 그중 원숭이상은 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긴 상태이다. 어떤 모습인지 조만간 직접 한번 보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실제 원숭이 지신상을 만나러 국립경주박물관을 찾았다. 박물관의 중심에 놓인 신라역사관에 있다는 걸 확인한 다음 가장 궁금한 것은 어디쯤 전시되어 있을까 하는 거였다. 그런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빛나는 자리에 있었다. 화려한 조명 아래 아주 높은 좌대 위에 우뚝 서 있었다.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약 1,3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늠름하고 위풍당당해 보였다.


성덕왕릉의 12 지신상은 각각의 동물에 어울리는 손 모양을 하고 있다는 게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두 손을 아래위로 둔 것도 있고 불끈 주먹을 쥔 것도 있고 칼을 뽑으려는 동작도 있다. 그런데 원숭이 지신상은 손을 가지런히 중앙에 모으고 오른손으로 칼자루를 잡고 있다. 무엇보다 다른 지신상과 달리 방어적이거나 공격적이지도 않는 그런 자세가 무척이나 내 맘에 들었다. 원숭이 특유의 재치와 여유까지 표현했다는 게 놀라웠다.


옷차림 또한 흐트러짐 없이 단정하다. 옷자락은 바람이 불면 금방이라도 찰랑거릴 것만 같았다. 전체적으로는 멋스럽고 흘러내림이 자연스럽다. 특히 어깨선에서 팔로 이어지는 부분의 옷소매는 바람에 날리는 그 순간을 담은 것처럼 섬세하게 조각돼 있었을 뿐 아니라 왕에 대한 최고의 예를 갖춘 원숭이 지신상에는 장인의 위대한 손길이 그대로 느껴졌다. 지금은 비록 박물관에서 박제된 유물처럼 서 있지만 언젠가 왕을 지키기 위해 보란 듯이 달려 나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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