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2.11(금)
밤새 잠을 깊게 못 자고 설쳤다. 나도 모르게 신음 소리를 낼 정도로 머리가 아팠다. 자면서도 혹시나 좀 나아진 건 아닌지 확인하려고 고개를 흔들어 봤는데, 똑같았다.
‘더 아파지면 안 되는데’
라고 생각하면서 잤다. 일부러 알람 시간도 평소보다 좀 늦췄다. 출근하려면 아무리 늦어도 일어나야 하는 시간까지 늦춰서 맞췄다. 알람 시간은 별 의미가 없었다. 아이들이 아주 이른 시간부터 깼다. 특히 시윤이는 아내 옆에 딱 붙어서 끈질기게 아내에게 귓속말을 하며 깨웠다. 귓속말이 그렇게 잠을 방해한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 차라리 큰 목소리로 말하는 게 나았다.
그래도 알람이 울릴 때까지 누워 있다가 일어났다. 머리가 아픈 것에 비하면 몸은 생각보다 무겁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화장실로 가면서 출근이 가능한 상태인지 파악했는데, 출근을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토요일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가 이내 생각이 바뀌었다.
‘아니지. 주말에 아프면 더 속상하지. 애들이랑 놀아야 하는데’
시윤이는 없어야 할 시간에 눈에 보이는 아빠를 보며 ‘오늘 아빠 출근 안 하는 거냐’며 기대 어린 질문을 했다. 시윤이의 기대를 뒤로하고 부디 두통이 좀 나아지길 바라면서 출근했지만 두통은 비슷했다. 심해지지 않는 걸 감사하게 여기며 일했다. 그러다 늦은 오후쯤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셨는데 이것 또한 우연의 일치인지 그때부터 조금씩 통증이 사라졌다.
아내는 장모님께 다녀왔다고 했다. 나의 퇴근과 비슷하게 집에 돌아왔다. 아내가 저녁을 밖에서 먹자고 했다. 아내가 좋아하는 샤브 칼국수를 먹기로 했다. 아내와 아이들을 만났을 때는 거의 두통의 흔적만 남은 정도였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만나서 함께 걸어갔다. 이제 서윤이는 유모차에 잘 앉지 않으려고 한다. 엄청 가냘픈 목소리로
“아빠아. 아나 두데여어”
라고 말하면 감히 안아 주지 않을 수 없다. 그때부터 극기훈련이 시작된다. 어찌나 여기저기 한 눈을 많이 파는지 1미터 전진에 1분이 걸릴 지경이다. 그렇다고 안고 가기에는 너무 힘들다. 예전에 소윤이 데리고 다닐 때도 이랬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금방 힘들다. 어쩔 수 없이 걷게 해야 하는데 이것도 보통 힘든 게 아니다. 전진을 위해서 마지막에는 결국 안긴 해야 한다. 그러고도 좋다고 막내딸의 볼에 볼을 비비며 시시덕 거리는 나의 모습이란.
애들 먹을 음식은 딱 한 가지뿐이라 좀 미안한 마음이 드는 곳이었는데, 앞으로는 그러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먹는 볶음밥을 소윤이와 시윤이 모두 엄청 잘 먹었다. 더 먹고 싶다는 걸 겨우 자제시켰다(아내가 거길 가는 이유는 그 볶음밥 먹으러 가는 거라, 아내가 먹을 것도 지켜 줘야 했다). 다음부터는 밥을 세 개 볶아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밥을 다 먹고 나서는 잠시 마트에 들렀다. 이번 주 내내 ‘퇴근하면서 아보카도 하나 사 가야지’라고 생각했는데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일정이 바쁘기도 했고 대상포진까지 겹쳐서 퇴근 시간에 여유가 없었다. 아보카도는 시윤이가 아주 좋아하는 식재료다. 시윤이가 얼마 전에
“엄마. 근데 아보카도 먹은 지 엄청 오래됐져?”
라고 말하는 걸 듣고 ‘퇴근하는 아빠의 작은 선물’로 꼭 주고 싶었다. 깜짝 선물로는 못 줬지만 함께 가서 사기로 했다. 그럼 또 소윤이가 신경이 쓰이니까 소윤이에게도 가장 좋아하는 식재료를 하나 고르라고 했다. 소윤이는 소시지를 골랐다. 서윤이는 여기서도 내려 달라고 난리였지만 못 들은 척하고 무사히 넘겼다.
몸이 많이 나아졌다고는 해도 혹시 모르니 오늘 같은 날, 일찍 자고 많이 자야 했다. 그걸 머리로는 아는데 몸과 마음은 안 따라왔다. 금요일이 되니 또 놀고 싶었고 영화가 보고 싶었다. 애들 얼른 재우고 영화라도 한 편 볼까 싶었는데, 대충 수습과 정리를 마치고 나니 거의 자정이었다. 집에 들어온 게 그렇게 늦은 건 아니었지만 어영부영하다 보니 그랬다.
아쉬운 마음에 아까 사 온 과자를 먹으며 유퀴즈라도 보려고 했는데 그마저도 보다가 졸았다. 둘 다. 아내야 그렇다 쳐도 내가 예능보다 졸 정도면 말 다 한 거다. 아직 몸에서 잠을 원한다는 뜻이었다. 바로 자리를 정리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아내는 나에게 얘기했다.
“여보. 내일은 무조건 늦잠 자. 내가 애들 데리고 거실로 나갈게. 방 문 잠그고 나갈 게”
이런 게 진짜 사랑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