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어제 내가 잘못 들은 거야?

22.02.12(토)

by 어깨아빠

주말 아침에 종종 고민에 빠진다. 소변의 욕구가 애매하게 느껴지는 것과 동시에 서윤이가 깬 것도 느껴질 때, 누워서 한참 고민한다. 차라리 참을 수 없을 만큼 마려우면 고민도 안 할 텐데. 화장실을 다녀오는 소리에 분명히 서윤이가 깰 것 같다는 불안감에 쉽게 일어나지 못한다. 오늘도 그랬다. 게다가 오늘은 서윤이가 우는소리에 잠에서 깼는데 화장실이 가고 싶었다. 바로 다시 자는 것 같아서 얼른 다녀왔다. 자리에 누워서 이불까지 덮었는데 서윤이가 벌떡 일어났다.


“아빠아? 아빠아”

“어, 서윤아. 이리 와”


그나마 순순히 옆으로 와서 다행이었다. 거실로 나가자고 했으면 꼼짝없이 따라 나갔어야 했을 텐데. 그 뒤로는 소윤이도 깨고 시윤이도 깨고 그랬다. 언니와 오빠를 따라서 거실로 나갔다가 방에 들어왔다가를 반복했다. 어제 자기 전에 나에게 늦잠을 자라고 했던 아내는 일어나지 않았다.


‘어제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자기가 무조건 낮잠 잔다고 한 건가? 이럴 때일수록 자기라도 건강해야 한다면서? 왜 안 일어나지?’


다행히 나의 몸 상태는 완전하게 정상이었다.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도 조금의 두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수포가 터지고 딱지가 생기기 시작한 곳이 가렵긴 했지만 참을 만했다.


아내도 늦게 일어났고 나도 잔 건 아니지만 계속 아내 옆에 붙어 있다 보니 활동 개시 시간이 늦어졌다. 아이들 첫 끼를 차린 시간이 11시였네.


“이 정도면 아점이 아니라 그냥 점심이네”


계란밥에 어제 산 아보카도를 함께 줬다. 껍질 색깔만 보고 다 익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속이 덜 익어서 아내가 프라이팬에 구웠다. 아보카도는 소윤이도 좋아한다. 서윤이도 좋아하고. 나는 안 좋아한다. 샌드위치에 들어간 거나 과카몰레는 괜찮은데 밥과 함께는 못 먹겠다. 치즈나 요거트 수준으로, 맛을 보는 것도 싫다.


보통 주말에는 아이들만 아침을 주고 아내와 나는 아침 대용을 빙자한 쾌락식(빵, 냉동실 비축식량, 쿠키 등)에 커피를 곁들여 먹지만 오늘은 아내가 토스트를 해 줬다(물론 이것도 빵이지만). 저녁까지 아무것도 안 먹기에는 너무 배가 고플 테니까(아무것도 안 먹을 리 없지만).


소윤이와 시윤이는 오늘 목욕을 하기로 했다. 지인이 준 입욕제가 있었는데 아이들이 그걸 얼른 해 보고 싶다고 그걸 받아온 날부터, 그러니까 거의 한 달 전부터 말했다. 서윤이도 함께 목욕을 시켜 주면 좋을 테지만 일단 그러기에는 욕조가 너무 좁다. 셋이 들어가면 들어가겠지만 그럼 행복 지수가 떨어질 거다. 특히 소윤이와 시윤이의 만족도가. 게다가 서윤이가 욕조에 들어가면 아내나 내가 자리를 지켜야 한다. 소윤이와 시윤이만 있으면 둘이 두고 나와도 되고.


서윤이에게 미안했지만 서윤이는 먼저 재우기로 했다. 욕조를 꺼내기 전에 아내가 서윤이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일찍 일어나서 졸렸는지 금방 소리가 끊겼다. 그 사이 나는 욕조를 꺼내서 입욕제를 넣고 물을 받았다. 사실 소윤이는 이제 목욕을 별로 재밌어하지 않는다. 시시하다고 했다. 내가 같이 화장실에 들어가서 물장난을 치면 모를까 시윤이와 둘이 노는 건 별로 재미가 없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욕조가 좁으니 가만히 앉아서 놀아야 한다. 오늘은 입욕제 덕분에 기대가 한가득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를 욕조에 넣어 두고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다. 아내도 서윤이를 재우고 금방 나왔다. 아내는 눈에 보이는 집안일을 아주 여유롭게 하면서, 나는 그런 아내와 대화를 나누며 소파에 앉아서 쉬었다. 휴식의 분위기가 한창 달아오르려고 하는데 갑자기 방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한 30분이나 됐을까. 서윤이가 털레털레 걸어 나왔다. 발갛게 상기된 두 볼을 가지고.


“여보. 얘 왜 이렇게 조금 자?”

“그러니까. 아니 뭐 이거 자고 일어나?”


황당했다. 진짜 피는 못 속이나 보다. 누가 언니, 오빠 동생 아니랄까 봐.


서윤이는 화장실에서 들리는 언니와 오빠의 웃음소리를 듣더니 곧장 화장실로 가서 문을 열었다.


“어찌 오빠아. 무해에에?”


라고 물어보고는 바로 아내와 나에게 와서 자기도 하겠다고 울먹이며 말했다. 안 된다고 한 것도 아닌데 울먹이긴 왜 울먹이는지. 서윤이도 옷을 벗기고 욕조에 넣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급격히 높아진 인구 밀도에 볼멘소리를 냈다. 소윤이와 시윤이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했지만 그렇다고 동생만 배척하는 건 부적절한 일이었다. 두 명이 더 행복하고 한 명만 불행한 것보다는 세 명 다 덜 행복한 게, 우리 집이 따르고자 하는 가치다. 소윤이와 시윤이의 마음을 이해해 주면서도 불평과 불만이 계속되면 목욕은 종료될 것이라는 걸 고지했다(내 입장에서는 선공감 후훈육이었겠지만, 소윤이와 시윤이는 무공감 선훈육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아직은 가르치는 대로 배울 줄 아는 시기다. 서로 좁아서 움직이지 못하는 와중에도 깔깔거리며 놀았다. 오히려 더 재밌게 놀았다. 덕분에 나도 변기에 앉아 그걸 다 지켜봤다.


하루 일과를 늦게 시작한 덕분에 체감 시간보다 실제 시간이 훨씬 빠르게 흘렀다.


“어?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아내는 화들짝 놀랐다. 저녁에는 처치홈스쿨 모임이 있었다. 집안일하고 아이들 옷 챙기고 하다 보니 오늘도 아내가 가장 늦었다. 아내는 겨우 머리만 감고 나와서는 5분 만에 옷을 갈아입더니 준비를 마쳤다고 했다. 별것 아니지만 약간 안쓰러웠다. 아내가 준비 시간을 충분히 가지려면 내가 뭘 해야 하나 생각해 봤다. 일단 옷을 내가 알아서 다 챙겨야 한다. 적절한 상, 하의 조합부터 구상해야 하고, 구상이 끝나면 실제로 찾는 것도 해야 한다. 막막했다. 일단 조합을 하려면 뭐가 있는지 알아야 하는데 그것도 잘 모르고, 어디 있는지도 잘 모르고.


‘정리가 편한 옷장을 사면 할 수 있을 텐데’


라는 비겁한 생각을 하며 집에서 나왔다. 채 말리지도 못한 아내의 젖은 머리카락을 보면서.


모임은 매우 늦게 끝났다. 집에 와서 아이들을 눕히니 10시 30분이었다.


“맙소사. 10시 30분이라니”


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오늘은 어제보다 몸 상태가 더 좋았으니, 놀고 싶은 생각도 더 많이 나는 게 인지상정이었다. 안타깝게도 내일 엄청 일찍 교회를 가야 해서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도 뭔가 대상포진이 마무리되는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시작도 미약했고 끝도 미약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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