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2.13(주일)
주일이었는데, 평일처럼 일어났다. 오히려 평일보다 더 빠른 시간에 알람을 맞추고 일어났다. 1부 예배 때 반주를 부탁받아서, 가야 했다. 그래도 감사히 일어났다. 원래대로라면 오늘 출근을 해야 했다. 대상포진 때문에 감사하게도 배려를 받아서 출근을 안 하게 됐다. 출근에는 무엇을 갖다 대도 감사가 넘친다.
1부 예배를 마치고 다시 집에 왔다. 아내와 아이들은 일어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소윤이 빼고 모두 눈이 부었다. 4부 예배 때도 반주를 해야 했다. 평소에 우리가 가는 예배는 3부 예배였고 소윤이와 시윤이도 4부 예배 시간에 맞춰 움직이려고 했다. 소윤이 부서는 4부 시간에도 따로 아동부 예배를 드렸는데 시윤이 부서는 3부 시간에만 예배가 있었다.
금요일에 미리 시윤이에게 양해를 구하려고 얘기했는데, 시윤이는 오히려 좋아했다.
“그건 조금 좋은 일이에여”
혼자 예배를 드리러 가는 것보다 엄마, 아빠와 함께 예배를 드리는 게 더 좋다고 했다. 시윤이에게는 지겨울지도 모르는 어른 예배라고 해도.
평소보다 늦은 시간에 나가도 되니 한껏 여유롭게 시간을 보냈다. 소윤이 선생님에게도 오늘은 3부가 아니라 4부 예배에 간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4부에는 다른 선생님이 계신다고 했다. 선생님이 바뀌는 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사실 크게 상관은 없었지만 그래도 3부 예배에 보내기로 했다. 내가 소윤이를 교회에 데려다주고 오기로 했다. 3부 예배가 끝날 시간쯤에 교회에 가서 소윤이를 만나고 함께 4부 예배를 드리기로 했다. 그래도 아직 시간이 좀 남아서 급히 준비할 필요는 없었다.
“매주 이렇게 하면 좋을 텐데. 그치 소윤아? 소윤이한테만 집중해서 옷 입혀 주고 머리 묶어 주고”
아내 말처럼, 정말 오랜만에 오롯이 소윤이를 준비 시키는 데만 집중했다. 머리도 엄청 공들여서 묶어 줬다.
소윤이를 차에 태우고 아파트 정문을 나왔는데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생각해 보니, 그럼 시윤이도 3부 예배를 드리라고 하면 되는 거 아니냐는 내용이었다. 맞는 말이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시윤이도 태우기로 했다. 아내가 또 전화를 했다.
“여보. 그럼 여보가 서윤이도 데리고 갈래요?”
“서윤이? 왜?”
“아, 그동안 나 준비도 좀 하고 그러게”
“아, 그럴까?”
결국 세 녀석을 모두 태워서 교회로 갔다. 소윤이와 시윤이를 예배실로 올려 보내고 서윤이와 함께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아빠아. 어찌 오빠느은?”
“아, 언니랑 오빠는 예배드리러 갔어”
“엄마느은?”
“엄마는 집에 계시고”
아내는 누구의 방해도 없는 여유로운 시간을 설거지와 청소하는데 썼다. 결국 어제처럼, 자기 정비(?)는 순식간에 끝냈다. 아내와 서윤이와 함께 다시 교회로 갔다. 하루에 세 번, 교회를 왔다 갔다 했다. 아동부 예배를 마친 소윤이와 시윤이를 만나서 다 함께 본당으로 내려갔다. 난 반주를 하러 나가고 아내와 아이들은 맨 뒷자리에 앉았다. 다행히 서윤이는 이미 잠들었다. 서윤이만 데리고 예배를 드려도 깨어 있으면 세 명과 함께하는 것처럼 힘이 들고, 세 명 모두 데리고 있어도 서윤이가 자면 한 명을 돌보는 것보다 덜 힘이 든다.
오늘은 축구에 안 가기로 했다. 내 욕망은 ‘가도 된다’고 말했지만, 꾹 참고 자제하기로 했다. 대신 소윤이의 신발을 구경하러 가기로 했다. 지난 성탄절에 (내) 엄마가 소윤이 필요한 거 사라고 용돈을 주셨나 보다(사실 난 기억도 안 난다). 얼마 전에 소윤이가 불현듯
“엄마. 할머니가 주신 용돈으로 저 신발 사 주세요”
라고 아내에게 말했다고 했다. 마침 신발이 필요하기도 했다.
근처 쇼핑몰로 구경을 하러 갔다. 소윤이는 엄청 튀는 데다가, 아내와 내가 보기에는 디자인도 별로 예쁘지 않은 신발을 마음에 들어 했다. 아내는 아예 무채색의, 무난함의 극치에 가까운 신발을 마음에 들어 했다. 내 취향이 딱 그 중간이었다. 소윤이가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건 아니더라도 꽤 마음에 들어 하는, 적당한 반짝이와 튀는 색이 들어간 신발은 나도 마음에 들었다. 구경했던 신발 중에 셋 모두의 마음에 흡족한 신발이 하나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소윤이 발에 맞는 크기가 없었다. 아내가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주문은 할 수 있어서 당장 오늘이라도 주문을 하겠다고 했다. 소윤이는 그래도 아쉬워했다. ‘지금 바로 사서 들고 가는 맛’을 기대했는데, 다소 실망한 눈치였다. 물론 아내의 설명에 금방 수긍하긴 했다.
시윤이도 마음에 걸렸다. 시윤이도 소윤이처럼 받은 용돈이 있었다. 살 게 정해지면 빠른 시일 안에 시윤이 선물도 살 계획이었다. 막연한 계획이 아니라 실천을 보장하는 계획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장 자기 선물은 사지 않는 상황에 혹시나 시윤이가 서운할까 봐 계속 살폈다. 의외로 시윤이는 담담했다.
“아주 쪼끔?”
이라고 대답하긴 했지만 아내와 내가 걱정(?)하는 것처럼 상심하고 그러지는 않았다. 아내와 나는 재차 ‘진짜 시윤이 선물도 곧 살 거야. 뭐가 필요한지 생각해 보자’라고 강조했다.
서윤이를 데리고 쇼핑하는 일은 정말 어려웠다. 내려 주면 끝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유모차에 앉혀 놨다. 처음에는 좀 괜찮다가 시간이 지나자 어김없이 내려 달라고 애원했다. 못 들은 척하면서 계속 걸었다. 서윤이에게는 좀 많이 미안했지만 우리 모두의 평화와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버티다 버티다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울 정도로 서윤이의 기분이 나빠졌을 때, 쇼핑을 마쳤다.
집으로 돌아왔는데, 아내가 근처의 또 다른 쇼핑몰에는 재고가 있다는 정보를 모두에게 알렸다. 소윤이에게 여전히 아쉽냐고 물어봤는데, 많이 아쉬운 눈치였다.
“소윤아. 아빠랑 같이 사러 갔다 올까?”
“지금?”
“어. 얼른 갔다 오면 되지”
“좋아여”
시윤이도 따라가겠다고 했다.
“시윤아. 어차피 누나 것만 사는 건데 괜찮아?”
“네. 저도 갈래여”
“시윤이 건 사지도 않는데 괜히 속상한 거 아니야?”
“저만 집에 있는 것보다 같이 나가는 게 더 좋아여”
“그래. 그럼 시윤이도 다시 옷 입어”
서윤이도 따라나서겠다며 기저귀 바람으로 현관에 나와 신발을 신었다. 오늘은 서윤이에게 여러모로 미안한 날이네.
아내가 미리 전화를 해서 따로 보관해 달라고 요청을 했다. 혹시 모르니 가서도 한 번 더 신어 봤다. 다행히 아주 딱 맞았다. 시윤이는, 실착을 하고 매장을 한 바퀴 돌아보는 누나를 졸졸 따라다녔다. 정말 누나 좋아한다. 좋아하는 만큼 말도 정말 안 듣고.
신발만 사서 바로 돌아왔다. 서윤이는 자기 신발을 사 온 것처럼 반겼다. 그러더니 자기 발에도 넣고 좋아했다. 그래도 소윤이가 훨씬 더 좋아했다. 아내와 나도 뿌듯했다. 사실 이렇게 직접 매장에서 산 건 드문 일이었다. 새로 사더라도 온라인으로 주문해서 받는 게 대부분이라, 소윤이도 기분이 좋았을 거다. 다시 한번 시윤이에게도 곧 비슷한 일이 생길 거라는 걸 강조했다.
아까 쇼핑몰에 갔을 때 소윤이가 갑자기 얘기했다. 정말 갑자기. 불현듯. 툭.
“아빠. 저는 아빠가 너무 좋아요”
“갑자기?”
“저는 아빠가 아빠라서 너무너무 좋아요”
“아빠도 소윤이가 아빠 딸이어서 너무 좋아. 그리고 우리 시윤이도 아빠 아들이어서 너무 좋고”
소윤이는 평소에 애교가 많지도 않고 주로 선물이나 편지로 표현하는 편이다. 이렇게 직접 말로, 진하게 마음을 표현하는 일이 흔하지는 않다. 그래서 너무 반갑고 좋았다. 그 뒤로 계속 생각이 났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몇 번이나 교회를 왔다갔다 하고 바쁘게 많은 일을 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소윤이의 그 고백이었다. 자녀들에게 그런 고백을 들을 때마다 나의 육아 인생 전체를 보상 받는 느낌이다. 내가 나라서 너무 좋다니. 내가 어디 가서 이런 극진한 대접을 받을까.
(시윤아, 옆에 너도 있어서 혹시나 괜히 서운해할까 봐 끼워 넣듯 이야기했지만 당연히 너도 마찬가지야. 진심으로. 넌 아들이지만 표현 많이 하는 아들로 자라 거라. 아빠 닮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