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의 시간과 최고의 해독제

22.02.27(주일)

by 어깨아빠

아내와 아이들은 교회에 가지 않고 집에서 예배를 드렸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각자 자기 부서 예배를, 아내는 어른 예배를 드렸다고 했다. 아내는 이렇게 요약했다.


“이렇게는 못 드리겠더라”


난 혼자 예배를 드리니 신경 쓸 게 없어서 편하긴 했는데 영 어색하기도 했다. 꼭 무슨 사연 있는 남자가 된 느낌이었다. 아무튼 매우 가볍긴 했다. 예배를 가는 발걸음도 끝나고 돌아오는 발걸음도. 휘리릭 휘리릭 움직이는 느낌이랄까. 예배를 마치고 커피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은 늦은 아침을 먹었지만 아내와 나는 아침을 굶어서 배가 고팠다. 아이들 점심은 조금 더 지나서 주기로 하고 아내와 나의 점심을 준비했다. 장모님이 해 주신 잡채를 비롯해 집에 있던 반찬과 더불어 아이들과 함께 먹을 때는 등장하지 않는 반찬도 조합했다. 스팸을 구웠다. 평소에 보기 어려운 반찬의 등장에 소윤이와 시윤이도 관심을 보였다.


“아빠. 이건 뭐에여?”

“아, 이거 스팸이야. 햄”

“맛있어여?”

“어, 맛은 있는데 몸에 안 좋아”

“근데 아빠는 왜 먹어여?”

“아빠는 이미 좀 안 좋아졌으니까. 어른이니까”


밥 먹고 나서는 서윤이를 재웠다. 역시나 낮에는 내가 재워도 거부가 강하지 않다. 처음에는 조금 울고, 들어가자마자


“엄마 보보디따아”


라면서 엄마를 찾긴 하지만 금방 누워서 손가락을 입에 넣는다. 그러고 나면 금방 잠들고. 서윤이가 깊이 잠들기를 기다리는데 밖에서 그릇 치우는 소리가 들렸다. 아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여보. 설거지 내가 할게. 좀 쉬어. 아니면 여보가 들어와서 좀 잘래?”

“아니. 괜찮아요. 앉아서 커피 마시고 있을게”


서윤이를 완전히 재우고 다시 거실로 나왔더니 아내는 나에게 ‘눈 좀 붙이고 나오지 바로 나오냐’고 얘기를 했다. 이렇게 우애 좋은 부부라니.


소윤이와 시윤이는 슬라임을 가지고 놀았다. 아내와 내가 사준 것도 아니고 예전에 누가 준 거였다. 아주 적은, 한 주먹도 안 될 만한 양을. 소윤이와 시윤이는 그것만으로도 재밌게 놀았다. 아내와 나에게 정확한 이유는 없지만 슬라임을 사 준 적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예정이다. 그러다 보니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는 굉장히 소중한 장난감이 되었다. 게다가 서윤이가 깨어 있을 때는 가지고 놀기가 어려우니까 기회도 별로 없다.


아내가 원래 오후에 잠시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약속이 잡혀 있었다. 아내는 약속을 잊었고 나는 들은 기억이 없었다(아내가 얘기해 줬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아내가 약속을 잊은 이유가 있었다. 소윤이 때문에 ‘당연히’ 못 나간다고 생각했던 거다. 아내에게 약속이 있었다는 걸 알고 나서, 아내에게 친구들을 만나고 오라고 얘기했다. 아내는 한사코 괜찮다고 했다. 너무 갑작스럽게 나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나가게 되는 게 미안해서 그랬을까, 단순히 아이들을 맡기는 게 아니라 축구를 나가지 못하게 되는 게 미안해서 그랬을까. 아무튼 아내는 괜찮다고 했다. 어쩌면 나도, 무의식적으로 끝까지 더 강력하게 권유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내가 그걸 느꼈을지도 모르고. 아무튼 아내는


“오늘은 그냥 내가 애들이랑 같이 있고 싶다”


면서 나가지 않겠다고 했다. 아픈 소윤이를 향한 안타까운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못 이기는 척(…이 아니라 애초에 이길 생각이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나왔다. 축구를 하고 오면서도 뭔가 마음이 찝찝했다.


‘어떻게든 끝까지 나갔다 오라고 했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막상 만난 친구들도 한 시간 반 만에 헤어졌다는 얘기를 들으니 그나마 덜 미안했다.


아내가 애들을 재우고 나와서 이런 얘기를 했다.


“아까 엄마랑 통화했는데 괜히 울컥해서 울 뻔했잖아. 엄마가 반찬이라도 해서 갖다주겠다고 하시는데, 아무래도 00(조카)도 만나셔야 되니까 걱정도 되고 힘들기도 하시고 그러니까 오지 말라고 했거든. 괜찮다고. 근데 그 얘기를 하는데 갑자기 막 눈물이 나려고 하더라. 겨우 참았어”


왜 눈물이 났냐고 물었더니


“모르겠어. 이유는 모르겠는데 그냥 그 상황이 서러웠어”


라고 대답했다. ‘아까’의 일을 얘기하면서도 아내는 또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내의 그 감정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잠깐 솟았다 사라졌다. 여운은 좀 길게 남았다. 내가 심리 전문가도 아니고 상담 전문가도 아니고 정신과 전문가도 아니지만, 이런 생각이 든다.


육아에 깊이 발을 담근 사람의 우울은 뭐 어떤 거대한 일로 증폭되는 게 아니다. 아내 말처럼 어제까지 수백 번도 넘게 반복했던 ‘식탁 밑에 떨어진 밥풀 줍기’를 하다가, 싸는 것도 씻는 것도 어느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 그럴싸한 여행도 아니고 그저 집 앞에 몇 분 나가서 바깥바람을 쐬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이럴 때 극대화되는 게 아닌가 싶다. 우울'함'과 우울'증'은 그리 다르지 않을 거다. 과연 이런 과정에서 남편인 나는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 항상 민감해야 한다. 그래야 하는데, 나는 오히려 아내가 이런 걸 너무 잘 극복(?) 하는 사람이다 보니 신경을 못 쓸 때도 많은 거 같고. 말은 ‘당연하면 안 된다’고 하는데 당연하게 생각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감사하게도 아내는, 하루를 마무리하기 전에 보는 아이들 사진과 영상으로 몸과 마음을 해독했다. 사실 이것만한 해독제가 없기도 하고. 아내가 자가 치료가 가능한 수준이고, 또 그럴 만한 능력을 보유한 사람이라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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