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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Apr 05. 2023

간병의 삶

23.01.16(월)

출근을 안 했다. 하루 종일 간병인의 역할을 감당했다. 다행히 아내와 시윤이 모두 어제보다는 훨씬 좋아졌다. 시윤이는 아침에 머리가 아프다고 했는데 아침에 잠깐이었고 그 뒤에는 괜찮았다. 아내와 시윤이 둘 다 조금씩 정상을 향해 가는 느낌이었다.


아내와 시윤이는 여전히 격리 생활을 했다. 밥도 따로 차려서 안방에 갖다 주고 간식도 따로 넣어줬다. 어제보다 느슨해지기도 했다. 시윤이는 잠깐씩이기는 했지만 마스크를 쓰고 밖에 나와서 소윤이, 서윤이와 놀기도 했다. 아내는 아직 안 나가길 바라는 마음이었지만, 철저하게 막기가 어려웠다. 몸이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방 안에만 있어야 하는 답답함도 커졌다. 시윤이에게는 오히려 좋기도 했을 거다. 놀 때는 놀고, 방에 있을 때는 여전히 엄마를 독점했고. 서윤이는 오늘도 안방에 들어가고 싶다면서 기웃거렸다. 아내는 그것만은 철저히 막았다. 시윤이가 나가는 거야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소윤이나 서윤이가 방 안으로는 못 오게 했다. 바이러스가 득실득실 할 지도 모른다고 하면서.


난 간병인 보다는 가사도우미 아니 가사전담인에 가까웠다. 일단 세 끼 차려 먹이는 게 엄청난 과업이었다. 새삼 느꼈다. ‘돌아서면 밥 때’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걸. 차려서 먹이고 치우고 나면 다음 끼니가 고민이고, 고민과 동시에 준비를 시작해야 하고. 이 과정의 반복이었다. 아침은 계란밥으로 이렇게 저렇게 때웠는데 점심이 문제였다. 아내와 시윤이는 많이 회복되긴 했어도 여전히 방에 있는 시간이 길긴 했다. 방에서 할 건 없다. 침대에 누워서 쉬다 보면 금세 잠이 든다. 아내에게 ‘어떤 재료가 있는지’를 묻는 것조차 아내의 휴식을 방해하는 것 같아서 냉장고를 열고 뭐가 있는지 살폈다. 완전히 본연 상태의 식재료를 가지고 요리를 하는 건 너무 부담스러웠다. 이럴 때는 냉동실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 장모님이 싸 주신 잡채와 아내가 사 놓은 치킨텐더가 있었다. 두 개를 점심 반찬으로 정했다. 잡채는 커다란 지퍼백에 통째로 들어있었는데 딱 봐도 엄청 많았다. 반으로 나누면 딱 좋을 듯했다. 바닥에다 쿵쿵 내리 찍었다. 아래 층에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의 장점을 이런 식으로도 느낀다. 잡채는 딱 적당하게, 3분의 1.5 정도로 쪼개졌다.


“소윤아, 서윤아 밥 먹어”


착한 소윤이와 서윤이는 없는 반찬에도 맛있게 먹어줬다. 아내와 시윤이에게도 같은 걸 줬다. 시윤이는 평소 먹는 양과 비교하면 당연히 엄청 줄었지만 그래도 준 건 다 먹었다. 먹는 게 좋아지니 자연스럽게 기력도 따라왔다. 아내도 비슷했다.


점심을 먹이고 나서는 서윤이를 재웠다. 사실 나도 좀 자고 싶었다. 하루 종일 쉴 틈이 없었다. 졸리기도 했지만 잠시 사라지고 싶었다. 애초에 작정하고 들어갔다. 내가 먼저 코를 골았다. 내 코골이 소리를 들으며 잠들었다. 그러다 화들짝 놀라서 깼는데 한 20분 정도가 지난 뒤였다. 서윤이는 나를 말똥말똥 쳐다 보면서 손을 빨고 있었다.


“서윤아. 얼른 자. 왜 일어났어”


서윤이는 꽤 한참 동안 잠들지 않았다. 잠드는 데 거의 한 시간이 걸렸고, 한 시간 동안 잤다. 나도 서윤이와 함께. 두 시간 정도를 서윤이와 방에 있었다. 소윤이는 하루 종일 혼자였다. 내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아내와 시윤이도 대부분 방에 있었고. 혼자 방에서 계속 뭔가를 만들었다. 내가 지난 번에 사다 준 보석자수도 한참을 했다.


“소윤아. 뭐 해?”

“아, 뭐 만들어여”

“괜찮아? 안 심심해?”

“네, 괜찮아여”


그나마 소윤이가 만들기를 좋아하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더 미안했을 거다. 서윤이와 낮잠을 잘 때도 사실 소윤이가 걸렸다. 낮잠을 자려고 마음을 먹고 들어가면서도 혹시나 서윤이가 금방 잠들면 그냥 나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어림없는 생각이었다. 그때는 아내와 시윤이도 안방에 있을 때라 소윤이가 많이 힘들어 했다(나중에 아내가 말해줬다).


이런 상황과 반대로 소윤이는 엄청 큰 도움이 됐다. 어쩔 수 없이 소윤이에게 뭔가를 부탁하거나 시킬 일이 많았는데 소윤이는 조금의 불만도 없이, 모든 일을 탁월하게 수행했다. 구체적인 부탁이나 지시가 없어도 스스로 해결하는 능력도 있었다. 아무튼 소윤이가 없었으면 몇 배는 더 힘들었을 거다.


내일은 출근을 해야 했다. 새로 생산되는 집안일이야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이미 생산된 집안일은 모두 해결하고 싶었다. 마침(?) 낮에 시윤이가 이불에 토를 해서 거대한 이불 빨래까지 생긴 상황이었다. 이불 빨래하고 건조기에 있는 빨래 꺼내서 개고 다시 이불 빨래 꺼내서 건조기로 옮기고 빨래통에 있는 빨래는 세탁기에 넣어서 돌리고. 설거지옥과 빨래지옥의 대향연이었다.


소윤이는 잠깐이라도 나가고 싶다고 했다. 확답을 하기는 어려워서 ‘상황 봐서’라고 답했다. 낮잠을 자고 나와서는 소윤이에게 너무 미안해서 몇 시가 됐든 잠깐이라도 나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장모님이 보내 주신 곶감을 K네 집에 전달해야 했다. 저녁도 다 먹고, 바로 자러 들어가도 될 단계까지 마친 다음 옷을 입혔다. 당연히 시윤이는 열외였다. 소윤이와 서윤이만 데리고 갔다. 밤바람이 꽤 찼지만 걸어갔다. 서윤이는 유모차에 태웠다. 왕복 30분 정도 걸렸나 보다. 하루 종일 간병인이자 가사전담인으로 살다가 잠시 ‘아빠’가 된 30분이었다.


“소윤아. 오늘 아빠가 소윤이한테 너무 고맙고 미안해서 일부러 나온 거야. 늦었어도”

“왜 미안해여?”

“그냥. 소윤이 하루 종일 혼자 있었으니까”


잠자리에 누울 무렵에는, 시윤이도 아내도 아침보다 훨씬 좋았다. 증거가 분명했다. 시윤이는 소윤이나 서윤이에게 짜증을 냈다. 기운이 없을 때는 짜증도 못 내더니 기운을 좀 차렸는지 바로 증상(?)이 나타났다. 아내는 아이들 재우고 거실에 나와서 빵을 찾았다.


“여보. 이제 좀 살 만한 가 보네? 빵 찾는 거 보니까?”


다행이다. 내일은 내가 없을 테니, 좋아져도 한참 더 좋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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