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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깨아빠 May 30. 2023

빵의 위력

23.01.28(주일)

새벽같이 일어나서 축구를 하러 갔다가 오전 일정을 소화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축구를 마치고 씻기 위해서 목욕탕에 갔다. 몇 년 만이었다. 원래 목욕탕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욕구나 아쉬움을 느끼지 않았는데, 오늘 가 보고 깜짝 놀랐다. 너무 좋았다. 시간이 별로 없을 줄 알고 샤워만 하고 나오려고 했는데, 시간이 조금 남아서 탕에도 들어갔다. 뜨끈한 물 속에 몸을 담그는 느낌이 꽤 황홀했다. 나중에 시윤이와 함께 목욕탕에 꼭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내는 점심을 만들고 있었다. 오후에는 내일 점심을 준비하러 교회에 가야 했다. 아내만 가면 되긴 했는데 아이들이 함께 가고 싶다고 했다. 다른 친구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대부분 안 온다고 얘기를 했는데도 가고 싶다고 했다. 어차피 친구가 없으면 집에서 노나 교회에서 노나 똑같은 거 아니냐고 물었지만, 역시나 그래도 가고 싶다고 했다.


아내는 점심을 먹고 먼저 출발했다. 난 아이들과 함께 걸어가기로 했다. 나가기 전에 집 정리(이자 주로 주방 정리)를 싹 했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식구가 많다 보니 하루만 지나도 꽤 많은 양의 결과물(?)이 적체된다. 아이들은 열심히 방 정리를 했다. 소윤이가 조금 불쌍하긴 하다. 막 어지르는 건 주로 서윤이와 시윤이인데 치울 때는 아무래도 소윤이의 능력치가 월등하다 보니 가장 많은 걸 한다. 안쓰러우면서도 당연히 져야 할 짐이라는 생각도 들고.


날씨가 그렇게 춥지 않아서 걷기에 무리는 없었지만, 은근히 쌀쌀하긴 했다. 시윤이는 외투를 바꿔 입으러 다시 들어가기도 했다. ‘별로 안 춥겠지’ 싶었는데 ‘그래도 춥긴 춥네’ 라는 생각이 드는 날씨였다. 서윤이는 유모차에 태워서 재웠다. 거의 바로 잠들었다. 그렇게까지 졸려 보이지는 않았는데 꽤 피곤했나 보다. 눕힌 지 얼마 안 돼서 엄지손가락이 스르륵 빠졌다.


역시나 교회에 아이들 또래의 친구는 거의 없었다. 딱 한 명 있었다. 아이들이야 자기들끼리 놀면 되지만 나도 할 게 마땅히 없었다. 아내와 함께 식당에 가서 준비를 도왔다. 크게 한 일은 없었다. 계란 지단을 썰고, 뒷정리에 조금 손을 보탰다. 금방 끝났다.


시윤이는 자기보다 한 살 많은 형과 탱탱볼로 축구를 하고 있었다. 둘이 마주 서서 차고 받기를 했는데 시윤이가 자꾸 어른들이 앉아 있는 쪽을 쳐다봤다. 난 바로 알아차렸다.


‘시윤이가 시선을 의식하고 있구나’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에 시윤이가 입을 열었다.


“아, 내가 너무 못 차서”


특정한 누군가에게 말을 하는 게 아니었고, 거기 있는 모든 사람이 듣도록 하는 혼잣말 아닌 혼잣말이었다.


“시윤아. 뭘 못 차. 잘 하네”

“아니에여. 너무 못 찬다”


쑥스러움과 자신감 없음이 함께 나타났다. 집에서 아내나 누나, 동생에게 바락바락 악을 쓰는 모습을, 절대 상상하지 못 할 순하고 선한 모습이었다. 시윤이는 계속 부끄러워 하면서도 공 차는 건 멈추지 않았다. 그만큼 축구를 좋아하긴 한다.


집으로 돌아오는데 소윤이와 시윤이가 밖에서 밥을 먹자고 했다. 난 선택권을 아내에게 넘겼다. 아내는 잠시 고민하다 집에서 먹는 걸로 결정을 했다. 집에 주차까지 했는데 아내가 새로운 의견을 제시했다.


“아니면 기프티콘 있는 걸로 치킨 시켜 먹을까?”


그러기로 했다. 갑자기 생긴 자투리 시간에 바닷가와 동네 드라이브를 하다가 치킨을 찾아서 집으로 왔다. 오늘은 아이들이 치킨을 잘 먹는 날이었다. 두 마리라 양이 부족하지 않았다. 나도 아이들의 속도와 남은 양을 신경 쓰지 않고 먹어도 될 정도로 충분했지만, 그렇다고 엄청 많은 건 아니었다. 딱 적당했다.


오전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 빵 가게에 들러서 케이크와 빵을 샀다. 아내가 친구에게 줄 케이크를 예약했는데, 간 김에 다른 빵도 사 오라고 했다. 이런 날은 아내의 육아 퇴근 후의 시간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 이런 날은 커피도 잘 안 찾는다.


“그냥 집에 있는 걸로 내려 마시면 되지 뭐”


커피를 향한 만족도도 매우 높다.


“커피도 너무 맛있네”


만족도 높은 빵의 위력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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