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11(화)
"여보. 나 오늘은 저녁까지 있다 올게"
아침에 미리 나의 장기 부재를 알렸다. 조금 신경 써서 급히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아침을 먹고 짐을 챙겨서 나오려는데 아내가 아이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오늘 아빠 늦게 오셔"
"왜여?"
"그냥 일이 있으셔서. 지금 인사하면 오늘 못 볼지도 몰라"
정말 그게 마지막이었다. 미술 수업을 마치고 잠시 전화 통화를 해서 아내의 상황을 파악했다. 혹시라도 아내가 더는 버티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면 계획을 전면 수정하고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아내의 목소리에는 의외로 힘이 있었다.
도서관에 가서 할 일을 하는데 아내가 사진을 보냈다. 저녁을 먹으려고 식탁에 앉아서 환하게 웃고 있는 소윤이와 시윤이 모습이었다. 이렇게 아침부터 밤까지 집에서 나와 있는 건 참 오랜만이었다. 환하게 웃는 소윤이와 시윤이를 보며 문득 참 좋은 시절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빠른 시일 안에 반드시 끝나야 하는 시절이면서도 너무 좋은. 아내는 늘 함께하던 남편과의 육아에서 남편이 빠지니 생각보다 고전하고 있다면서 나랑 같은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한 시간쯤 뒤에는 자려고 방에 들어간 소윤이와 시윤이의 동영상이 왔다. 아빠가 보고싶다는 내용, 사랑한다는 내용, 시윤이는 저녁을 열심히 안 먹어서 내일 점심전까지 간식을 못 먹는다는 내용등이 담겨 있었다. 동영상을 보고 나서는 전화도 또 왔다. 자기 직전 마지막으로 아빠 목소리가 듣고 싶다며 건 전화였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그리움과 보고싶음이었다. 반대로 아내는 육아의 진한 쓴맛을 모처럼 느꼈고.
"하아. 너무 힘들다. 여보"
"고생했어"
잘 웃는 아이들의 사진, 애틋함을 폭발시키는 동영상, 아내의 활기 '넘쳤던' 목소리만 떠올리고 '오늘 수월했겠구나'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아내의 활기는 살아서 움직이는 생물과 같아서 언제든 흔적도 없이 사라질지도 모르고, 사진과 동영상은 수 시간 중에 찰나 혹은 고작해야 1분 남짓한 시간을 포착한 것뿐이니까.
최근 몇 달을 통틀어서 가장 완벽하게, 오랫동안 육아에서 이탈한 하루였는데 묘한 기분이었다. 원래 이게 일상이었는데 어느덧 우리의 새로운 일상이 된, 하루하루 아이들과 정신없이 뒹굴고 진을 빼고 있는 이 시기가 나중에 보면 왜 이렇게 그리울 거 같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