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26(주일)
서윤이가 내 가슴 위에 와서 앉았다. 물론 아내의 조종을 받아서. 소윤이와 시윤이도 내 옆을 둘러쌌다. 그렇게 꽤 한참을 뒹굴거리며 놀았다. 그랬는데도 평소에 가끔 늦잠을 잤을 때보다는 빠른 시간이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밥을 먹고, 난 커피를 마셨다.
"아빠. 아빠는 왜 아침 안 먹어여?"
"어, 아빠는 그냥 커피를 아침 대신 마시려고"
"커피를 아침 대신 마신다구여? 그때 선교사님 말씀 못 들었어여? 커피를 줄이라고 하셨잖아여"
애들이 크면 클수록 실시간으로 언행불일치, 혹은 교육 내용 미이행을 적발 당한다. 옆에서 누나가 그러니까 시윤이도 덩달아서.
"아빠아. 꺼삐를 마지믄 오또케여어"
아빠의 몇 안 되는 취미(?) 생활이다. 봐 줘라.
서윤이는 오늘도 교회에 도착하자마자 강력한 수면 유도 효능을 지닌 모유를 먹고 잠들었다. 덕분에 아주 편하게 예배를 드렸다. 서윤이는 예배 끝나고 바깥 식당에 가서 밥 먹을 때도 잤다. 중간에 깨긴 했지만 거의 다 먹었을 때라 크게 방해가 되지는 않았다. 교회에서 차로, 차에서 다시 식당으로. 자리를 몇 번을 옮겼는데도 그렇게 자다니. 효녀 같으니라고.
오랜만에 원래의 주일 일상으로 돌아왔다. 중단되었던 목장 모임이 재개되었고 (혹시나, 일기를 읽는 불특정 다수도 계시니까 남기자면 방역 수칙은 철저히 지키고, 밀집/밀폐된 공간은 피해서 진행됩니다) 큰 구장에서의 축구도 다시 시작됐다. (고양시에서 운동장 대관을 일제 중지했는데, 오늘부터 다시 풀린 거다. ) 밥 먹고 나서 아내가 날 다시 교회에 데려다줬다.
"여보. 괜찮겠어?"
"뭐가?"
"여보가 애들 데리고 왔다 갔다 하는 거"
"어, 괜찮지"
아내는 내가 목장 모임을 하는 동안 잠시 집에 들렀다가 (아내는 그 사이 청소도 하고 빨래도 했다) 끝나는 시간에 맞춰 다시 교회로 왔다. 그다음 나와 소윤이, 시윤이를 축구장에 데려다주고 서윤이와 함께 떠났다. 어디로 가는지는 몰랐다. 아무튼 집에는 안 가고 어딘가를 갈 거라고 했다.
축구장에서의 시간은 총 3시간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좀 지겨워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매우 신나게 놀았다. 둘이 붙어서 자전거도 타고 킥보드도 타고. 여러 집사님들이 주신 간식도 먹고. 내가 쉴 때는 나랑도 놀고. 계속 표정이 밝았다. 둘 다 잔뜩 신이 나서 계속 방방 뛰고, 웃고, 조잘대고 그랬다. 축구도 축구였지만 소윤이, 시윤이랑 밖에 나와서 웃고 떠드는 게 오랜만이 아닐 텐데 오랜만인 듯 반가웠다.
"소윤아, 시윤아. 재밌어? 안 지겨워?"
"재밌져"
"뭐가 재밌어?"
"그냥 아빠랑 노는 것도 재밌고. 맛있는 것도 먹으니까 좋고"
"다음에 또 따라 올 거야?"
"그럼여"
"시윤이도?"
"아빠아. 더는 아빠양 쭈꾸장 오는 게 엄쩡 도아여어"
진짜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이기도 하지만 혹시라도 지루함을 느끼고 다음부터는 안 온다고 하면 긴급조치에 들어가야 하니 묻는 것도 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나를 따라오지 않겠다고 하면 나의 축구에도 지장이 생기거나 지장은 안 생겨도 굉장히 마음이 불편해야 한다. 축구를 핑계 삼아 소윤이와 시윤이를 잠시 아내에게서 떼어내는 시간이기도 하다.
"어디 갔다 왔어?"
"(속삭이듯) 여보. 쉿. 엄마, 아빠 만나고 왔어. 대화동에서. 오빠네도 오고"
"아, 그랬어?"
"애들한테는 말 안 하려고. 서운해할까 봐"
"그래, 알았어"
괜히 말했다가 '자기도 가고 싶었다'느니, '다음에는 엄마 따라갈 거'라느니. 안 좋은 전개로 이어질지도 모르고, 또 실제로 소윤이와 시윤이는 매우 아쉬웠을 거다. 잠들 때까지도 엄마와 동생의 동선을 알려주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고.
언니와 오빠가 없는 틈을 타 서윤이는 첫째 손주 코스프레를 하며 오랜만에 모두의 관심과 집중을 독점했다. 시선을 주는 이들은 소윤이와 시윤이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껏 예뻐할 수 있는 자유를. 시선을 받는 서윤이는 언니와 오빠에게 나눠줘야만 했던 사랑을 잠시나마 독점할 수 있는 권한을 누렸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씻기고 밥을 먹였다. 아내가 오는 길에 김밥을 사서 그걸 먹였다. 아내는 친정 식구들과 먹고 왔고, 난 애들 재우고 편히 먹으려고 잠시 미뤄뒀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집에 와서도 끊임없이 종알댔다. 너무 작위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애들이랑 같이 있다 보면 문득 당시 순간이 갑자기 한눈에 들어오면서 '진짜 행복한 순간이다'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특히 서윤이까지 낳고 셋이 되니 더 많아졌다. 아, 이걸 뭐라 설명을 못하겠네. 아무튼 오늘은 순간순간도 그렇고 하루 전체가 그런 느낌이었다.
애들 재우고 나왔다가 다시 자러 들어가서 소윤이와 시윤이 사이에 누워 두 녀석의 손을 양손으로 각각 잡았을 때. 이때의 기분이 일품이다. 자는 게 불편하기도 하고 아내 옆이 그리우니까 매트리스 위로 가서 잘까 싶다가도, 이 맛을 못 잊어서 서윤이 수유 핑계를 대며 계속 바닥에서 잔다(서윤이는 요 며칠, 연속으로 밤-아침 통잠을 잤다. 아내가 새벽에 깨서 수유할 일이 없다는 건 내가 매트리스에서 자도 무방하다는 뜻이다).
이른 아침, 아니 새벽부터 깨우고 소란을 피울 때는 '애들 방' 생각이 절실하다가도, 밤에 누우면 이렇게 옹기종기 한곳에 모여서 자는 게 다행이구나 싶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