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성비 좋은 밤 산책

20.09.23(수)

by 어깨아빠

출근하기 직전에 아내와 서윤이가 방에서 나왔다. 아내는 나오긴 했지만 여전히 자는 거나 마찬가지였고, 서윤이는 그럭저럭 기분이 괜찮았다. 잠깐 안아주고 바닥에 내려놨다. 잠깐이었지만 동태를 살폈고, 바로 울지는 않았다. 잠과 사투를 벌이는 아내에게 인사를 건네고 출근했다. 바닥에 엎드려 강아지처럼 현관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윤아. 안녕”


아직 대답은 못해도 팔딱거릴 줄은 안다.


낮에 집에 잠깐 손님이 온다고 했다. 오후에 온다고 했는데, 오후에 바깥에서 산 김밥을 먹는 소윤이, 시윤이 사진이 도착했다. 아직 손님이 온 건 아닌 것 같았고. 손님 맞을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을 텐데 밖에 나갔다 온 건가 궁금했는데, 답은 듣지 못했다. 아내는 하루 종일 내 카톡과 통화를 잘근잘근 씹어 먹었다. 아내와 아이들의 자세한 일정은 퇴근하고 소윤이에게 들었다.


손님이 가고 나서는 자연드림에 갔다며 전화가 왔다.


“여보. 자연드림인데 오늘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나? 아무거나 괜찮은데”

“아니야. 있는 게 더 좋다니까”

“글쎄. 진짜 아무거나 다 좋은데”


저녁 식탁에 뭘 올릴지 고민하는 주부의 일상이다. 나에게 항상 먹고 싶은 게 없냐고 묻고, 가리는 게 없는 난 뭐든 괜찮다고 하고. 진심으로 식탁에 뭐가 올라오든 만족스럽다.


오늘도 퇴근 후 풍경은 비슷했다. 아내는 부지런히 저녁 준비, 서윤이는 아내의 등 뒤에, 소윤이와 시윤이는 거실에서 블럭 놀이.


“여보. 왔어? 오늘 저녁 준비가 좀 늦었어”


평소에는 보통 내가 집에 가면 저녁 준비가 끝날 무렵이었는데 오늘은 막 시작한 느낌이었다.


“여보. 몇 분이나 걸려?”

“글쎄. 한 20분?”

“그래? 그럼 한 30분 걸리겠군”


혼자 1분 정도 고민하다가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얘기했다.


“소윤아, 시윤아. 우리 산책하고 올까?”

“아빠아. 도아여어. 나가다여어”


시윤이는 바로 박차고 일어섰는데 의외로 소윤이는 앉아서 하던 걸 계속했다. 블럭으로 뭘 만들고 있었는데 그걸 완성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름 심취하기도 했고. 물론 그렇다고 산책을 마다할 정도는 아니었다. 언젠가 그런 날(특히 처음으로)이 온다면, 꽤 슬플지도 모르겠다.


서윤이도 데리고 나왔다. 아기띠로 안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킥보드나 자전거를 타지 않고 걸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날씨, 온도였다. 바람이 선선하게 불고, 여름 옷차림으로 가만히 있으면 조금 쌀쌀한 정도.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는 얇은 겉옷을 입히고 서윤이는 다리를 얇은 싸개로 덮어줬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는 내일 먹을 간식도 사 줬다. 한살림에 가서 먹고 싶은 걸 하나씩 고르라고 했더니 시윤이는 단호박 요거트를 골랐다.


“소윤아. 소윤이는 이거 안 좋아해?”

“저는 블루베리는 좋아하는데 단호박은 안 좋아해여”


식성이 나랑 비슷하다. 단호박 싫어하고, 아보카도 싫어하고, 기름진 고기 좋아하고. 소윤이는 다른 매대로 가더니 날 불렀다.


“아빠. 저는 이거여”

“아, 팝콘 먹을래? 알았어. 그럼 이거 내일 시윤이랑 나눠 먹어”


소윤이 얼굴에 ‘이게 뭐지’하는 의아한 표정이 스쳤다. 시윤이가 산 건 시윤이만 먹는데, 자기가 산 건 왜 나눠 먹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인 듯했다. 그런 걸 얘기하면 또 아빠가 뭐라고 할까 봐 말은 못 하고.


“소윤아. 소윤이도 마실 거 하나 골라. 팝콘은 나눠 먹고 마실 건 하나씩 먹으면 되겠다. 그치?”


소윤이는 우다다다 달려가더니 사과 감귤 즙을 골랐다.


아기띠에 안긴 서윤이는 여기저기 두리번거리고 내 얼굴 올려다보고, 눈 마주치면 웃고 아니면 다시 두리번거리고. 그러다 또 나 쳐다보고, 눈 마주치면 웃고 아니면 두리번거리고. 서윤이도 기분이 좋았다.


“소윤아. 엄마 오늘 낮에 자연드림에서 빵 사셨나?”

“자연드림에서여? 아, 아빠 자연드림에서는 안 샀어여”

“그럼?”

“아빠. 제가 얘기해 줄게여. 점심때 엄마랑 키오에 갔어여. 키오에 가서는 우리가 먹을 걸 샀어여. 그런데 배가 너무 고파서 주먹밥도 샀어여”

“어디서?”

“소윤이네(가게 이름)여”

“아, 그래서?”

“아, 소윤이네서 주먹밥을 사고 라본느에 가서 이모랑 먹을 빵을 샀어여. 그리고 집에 가서 이모랑 같이 빵을 먹고 이야기를 하다가 이모가 가고 나서 병원에 갔다가 자연드림에 간 거에여”

“아, 그랬구나”


소윤이는 글로 기록한 것보다 훨씬 자세하고,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특유의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소윤이의 낭랑한 목소리, 시윤이의 거칠지만 혀 짧은 목소리와 함께한, 짧지만 기분 좋은 산책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만족도가 높아 보였다.


서윤이는 낮에 병원에 다녀왔다. 오른쪽 볼에 침독이 심하게 올랐는데 이게 나아지지 않아서 아내가 걱정이 많았다. 병원에 가도 새로운 진단이나 특별한 처방이 없을 거라는 건 알았지만, 그래도 아내는 정확한 설명을 듣고 싶어 했다. 역시 특별한 방법은 없었다. 최대한 마찰을 줄이고 바세린처럼 꾸덕꾸덕한 제형의 크림을 수시로 발라주라고 하셨다.


서윤이는 그것 때문에 불편하거나 아프지는 않은가 보다. 오늘은 다른 날보다 훨씬 기분이 좋았다. 자기를 뺀 나머지 식구가 밥을 먹는 동안 혼자 바닥에 누워서 놀았고, 자기 전까지 계속 그렇게 있었는데 한 번도 울지 않았다. 물론 밥 먹고 나서는 나, 소윤이, 시윤이가 열심히 재롱을 떨긴 했다. 거기에 마지막 수유하고 바로 자기까지 하고. 새벽에만 안 깨면 딱인데.


애들을 모두 재우고 나온 아내가 낮의 이야기를 전해주다가 이렇게 말했다.


“아, 애들 이제 라우겐도 잘 먹어서 아쉬웠어”


순간 뇌가 버벅거렸다. ‘이게 무슨 말이지. 어떤 의미지’ 5초 뒤에 이해했다. 이런 의미였다. 라우겐이라는 빵은 버터가 잔뜩인데 원래는 애들이 그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덕분에 라우겐은 아내가 애들한테 나눠주지 않고 홀로 온전히 즐기는 빵이었는데, 이제 애들도 그걸 잘 먹으니 그럴 수 없어서 아쉽다는 말이었다.


아내의 말이 유머나 개그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진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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