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운한 참모
토사구팽 당한 중국의 사례를 보면 수많은 참모들이 있지만 그중 한신이 가장 안타깝고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한신은 유방이 한(漢)나라로 통일을 이루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소하나 장량도 그 역할을 충실히 했지만 한신이 아니었다면 아마 한나라를 건설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이런 한신이 팽(烹)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 이유는, 그 자신의 능력이 출중한 것도 원인이겠지만, 지나친 자만심으로 유방 앞에서 항상 자신을 뽐내고 은근히 유방을 무시하는 행동을 함으로써 유방의 의심을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통일 후 초나라 왕으로 봉해졌지만 후에 유방에 의해 모든 권력을 잃고 죽임까지 당하게 됐다. 한신은 군사적으로는 뛰어난 판단력과 위기상황에서 돌파할 줄 아는 능력을 지닌 장수이자 참모였지만 정작 명예욕 때문에 2인자의 처신을 제대로 하지 못한 비운의 참모라고 할 수 있다.
한신은 통일 과정에서 장량과 함께 책략의 쌍벽을 이루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책사인 괴통의 계책을 따르지 않았다. 한신이 괴통의 계책에 따라 천하를 삼분했다면 중국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괴통은 한신이 제나라를 정복하고 제나라 왕으로 등극했을 때, 한신에게 제나라를 기반으로 천하삼분지계를 설파하였다. 그 근거로 지금 상황이 한신이 항우나 유방 중 어느 한쪽의 편을 들면 승리할 수 있는 상황이므로 두 사람의 목숨을 바로 한신이 쥐고 있다고 한 것이다. 따라서 제왕의 꿈을 갖고 천하를 삼분하여 덕으로 다스리면 한신도 제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한신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마도 유방처럼 제왕의 그릇은 되지 않았던 거 같다. 그의 말처럼 유방은 하늘이 내린 인물이고 자신은 사람이 낸 인물이었다고 생각했던 거 같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다는 것을 한신은 미처 생각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한신은 괴통의 말에 지난날의 의리를 내세워 유방을 배신할 수 없다고 했다.
사실 한신은 군사적으로 뛰어난 판단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처한 상황을 예리하게 분석하고 이를 자신의 목적에 맞게 잘 활용할 줄 아는 전략가였다. 그 대표적인 예가 조나라와 싸움에서의 배수진으로 조나라를 물리친 일이다. 당시 유방이 자신의 정예병을 빼앗아 버리고 시정잡배와 도둑의 무리들로 채워진 군사를 이끌고 싸움을 하는 상황에서 예전과 같은 병법으로 싸운다면 조나라를 물리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즉 병법에 나와 있는 이론적인 전쟁이 아닌, 그때그때 자신의 상황과 적의 상황에 맞는 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병법에 맞게 활용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간 것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상황을 판단 잘하고 이를 바탕으로 움직이는 한신이었지만, 정작 자만심과 공명심이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한신은 자신이 어떤 성과를 내면 거기에 맞는 대우를 해 주길 원했다. 제나라를 정복했을 때에도 가(假) 왕의 자리를 달라는 식으로 해서 유방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것도 화근이 되어 유방의 의심을 끊임없이 받게 되었다.
한신에게는 마지막으로 독립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한나라 건국 후 초나라 왕에 부임할 때였다. 이때도 괴통은 지금이라도 유방을 떠나 독립을 하길 권유했다. 그 이유로 이미 한신의 공이 하늘을 찌르고, 지략이 유방을 능가하는 상황에서 유방의 입장에서 신하의 지위에 있는 한신은 아주 위협적인 존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때도 한신은 유방이 자신을 후하게 대해 주는데 인의(仁義)상 그럴 수 없다고 하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신은 유방처럼 황제라는 큰 꿈을 꾸지 않았다. 하지만 한신 같은 사람은 리더의 입장에서 보면 참모로서 가장 위험한 사람인 것이다. 리더를 능가하는 능력을 지녔다는 것은 리더에게는 항상 큰 위협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유방은 항상 한신을 경계했는데, 한신은 유방이 자신에게 보내는 이런 경계의 메시지도 깨닫지 못했다. 군사적 상황 판단력이 뛰어난 한신이 왜 그랬을까? 그것은 앞서도 얘기했듯이 정무적 판단이 없고 자신을 알아주길 바라는 공명심만 있었기 때문이다. 유방처럼 대업에 대한 꿈이 있었으면 괴통의 말에 따라 독립을 했었을 것이고, 장량이나 소하처럼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었다면 물러나거나 겸손하게 행동했을 것인데 한신은 이 둘 다 아니었다.
최소한 유방이 자신의 인수와 정애 군사를 빼앗아 가고, 제나라 왕위를 빼앗는 등의 행동을 보였을 때, 한신이 자신의 상황과 주변 상황을 파악하고 처신을 했더라면 그렇게 허무하게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초나라 왕으로 있을 때 항우의 장수 종리매를 보호해 준 일이었다. 이 일로 유방은 한신을 더욱 의심하게 되었다. 한신은 종리매에게 자살을 권유했다. 그러자 종리매는 한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유방이 지금 한신을 공격하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있기 때문이요. 만약 내가 죽고 나면 다음 차례는 한신 자신이 될 것이오."
그리고 종리매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신은 다른 사람들이 아는 자신에 대해서 정작 자신은 모르고 있었다. 아니 그보다는 세상 물정을 몰랐다고 해야 맞을 거 같다. 자신의 존재 자체가 권력에 얼마나 위협적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참모는 자신의 지위와 본분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항상 리더를 위협하지 않는 선에서 자신의 행동을 살펴야 하며, 자신의 공이 아무리 빼어나다 할지라도 리더에게 도전하거나 그의 권위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리더는 언제든 참모를 내칠 수 있다.
한국 영화 ‘사도’에서 영조가 사도세자에게 '존재 자체가 역모다'라고 하듯이 한(漢)왕조를 건국한 이후부터 유방의 입장에서는 한신이란 존재 자체가 역모일 수 도 있었다.
한신은 공명심을 앞세워 유방에게 충성과 의리를 받쳤지만, 그 공명심이 그를 결국 죽음으로 몰아갔으며, 결과적으로 충성과 의리는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었다. 차라리 그 공명심이 천하를 얻기 위한 것이었다면 아마도 한신은 자신만의 왕조를 건설했을 것인데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한 것이다.
스스로의 한계를 알고 처신을 잘했던 소하나 장량에 비하면 한신은 자신과 세상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몰랐던 것이다. 군사적으로는 뛰어난 지략가 일지는 몰라도 세상을 살아가는 처세에 있어서는 너무 순진무구했던 것이다. 시대 상황에 맞게 자신을 변화시키고 발전시켜야 함에도 한신은 한때의 공명심에 사로잡혀 한왕조 건설 이후에는 사실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일례로 초나라 왕으로 갔을 때 그가 제일 먼저 했던 것은 과거 자신을 보살펴 줬던 사람들에게 은덕을 베푸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치욕을 줬던 사람에게까지 후한 대접을 하였다. 유방이 초나라 왕으로 보낸 것은 금의환향(錦衣還鄕)하여 허세를 부리라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안정시키고 번영시키라는 의미였는데 그런 것에는 게을리하고 이제까지의 업적에 대한 보상으로만 생각하고 안이하게 나라를 이끌었다는 데 있다.
한신에게 조금이라도 전체적으로 세상을 바라볼 줄 아는 정무적 능력이 있었다면, 아니면 유방처럼 아랫사람들의 말을 귀 담아 듣고 이를 받아들이는 능력이라도 있었다면 한신의 마지막은 장량이나 소하보다 더 아름다웠을 것이다. 한신을 보면서 참모라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부분이 정무적 판단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게 기본이 된 상태에서 자신의 전문적 지식을 갖고 리더를 보좌할 때 아름다운 결말을 맺을 수 있다.
PS : 누구의 말을 듣지 않아서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되나요?